2024-04-16

여자 아이들을 매료시킨 생일파티

Loading

둘리양의 생일 파티 모습은 이미 블로그에 썼다. 그 때는 너무 바빠서 사진만 후다닥 올렸는데, 오늘은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파티 테이블은 처음에는 일곱 명의 자리였으나 아파서 못온다던 친구가 다시 오게 되어서 나중에 한 자리를 더 추가했다.

요즘 세상은 음식이 부족해서 배불리 먹는 것이 최고인 시대는 아니다. 그러니 무슨 음식을 요리할지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차려낼 것인지를 계획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게다가 파티의 주인공과 손님들은 모두 초등학교 최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아닌가! 입과 눈을 모두 만족시키는 파티를 준비했다.

파티의 주인공이 앉을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

깨끗이 세탁한 테이블보를 깔고 달러샵에서 구입한 배너와 장식품을 너무 과하지 않은 정도로 달았다. 모두 여덟 명이 함께 앉는 자리여서 간편하게 종이컵과 종이접시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격조높게(?ㅎㅎ) 글래스 잔과 예쁜 셋트 접시를 준비했다. 나중에 식사할 때 보니, 어디서 주워듣고 본 게 있어서 물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훑어서 윙~ 소리를 내며 와인잔을 굴리는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즐거워했다.

반 친구들이 덕담을 써준 생일 포스터

내가 어렸을 때를 회상해 보아도, 요만한 나이에는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것이 그리도 즐거웠다. 어른들처럼 테이블에 앉아서 유리잔에 담긴 물을 마시고 디너셋트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먹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여덟 명의 여자아이들은 마치 스무살 언니가 된 듯한 기분을 즐겼다고 생각한다.

답례품을 예쁜 바구니에 준비해 두었다.

미국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는 대부분 답례품을 준비하는데, 한국 과자 몇 가지를 봉지에 나눠담고 그걸 다시 예쁜 바구니에 담아서 콘솔 테이블 위에 얹어두니 파티 분위기도 살고, 아이들이 돌아갈 때 잊어버리지 않고 챙겨 보내기도 좋았다. 둘리양이 직접 답례품 봉지를 포장해주어서 무척 편했다.

음식의 이름표는 둘리양이 직접 만들었다.

자기 생일 파티를 스스로 준비하고 돕는 둘리양은 실질적으로 엄마의 일손을 줄여주었고, 손님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둘리양 친구 중에 무슬림 아이가 있어서 돼지고기가 들어간 만두는 먹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치킨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이름표를 써서 두었는데, 아이디어와 제작 모두 둘리양이 도맡아서 한 일이다. 글씨를 입체감이 나도록 참 잘 썼다.

별것 아닌 채소이지만 예쁜 그릇에 담으면 맛있게 여겨진다.

그런 딸의 엄마로서, 나역시 같은 음식이지만 더욱 돋보이도록 센스를 발휘했다. 과일과 채소는 별도로 요리할 필요는 없지만 예쁜 그릇에 색감을 고려해서 담아두니 여자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 우리집에 있는 예쁜 그릇은 대부분 선물로 받은 것인데,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예쁜 딸의 생일 파티에는 아주 안성마춤이었다.

과일도 마찬가지: 예쁘게 담으면 어쩐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일곱 명의 손님 중에서 두 명이 돌아가고 다섯 명은 슬립오버를 했다. 밤늦도록 수다를 떨고 놀다가 다음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아침 식사로는 팬케익을 굽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차피 입맛이 없어서 거한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니 그저 빈 속을 조금 채우라는 의도로 팬케익을 굽고 냉장고에 많이 있던 요거트와 과일을 내었다.

슬립오버 이후 아침 먹을 상차림

아침 식사 테이블에도 역시나 예쁜 그릇과 포크 나이프를 차렸다. 아이들은 각자 먹을 팬케익 위에 과일이나 시럽 또는 생크림을 원하는대로 얹어서 먹었다. 팬케익은 시판 가루를 반죽해서 구운 것이니,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 맛이다. 하지만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서 예쁜 접시에 먹으니 그 맛이 좋게 느껴졌는지 모두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내게 했다.

팬케익 위에 산딸기와 생크림을 잔뜩 얹었다.

요만한 여자 아이들을 매료시키는 법이 아주 잘 통했던 것 같다. 어떤 아이는 살다가 이렇게 맛있고 멋진 음식을 처음 먹어본다고 극찬을 하기까지 했다. ㅎㅎㅎ 네가 맛있게 먹었던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분위기였단다… 하고 속으로만 말했다.

밤늦도록 놀고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는 아이들

아이들은 주로 지하실에서 당구나 탁구를 하고 놀았는데, 목이 마르면 부엌으로 올라와서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고 다시 내려가서 놀기로 규칙을 정했다. 안그러면 지하실 카펫에 음식을 흘릴 수도 있고 나중에 치울 때도 아래윗층을 오가며 빈 잔이나 과자 봉지를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다가 올라와서 물을 마시는데 둘리양이 얼른 테이프를 꺼내서 친구들 이름을 써서 컵에 붙였다. 이렇게 해두니 나중에 다시 물을 마실 때 새 컵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마시던 컵을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둘리양이 야무지게 챙기니, 참 좋다!

컵마다 친구들 이름을 적어붙였던 둘리양

둘리양의 친구들은 아마도 집에 돌아가서 파티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회상했을 것이다. 둘리양은 엄마가 멋진 파티를 준비해주어서 행복했다. 나역시 예쁜 아이들에게 예쁜 상을 차려주면서 즐거웠다.

예쁜 테이블

2023년 3월 9일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