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내가 봐도 잘 만든 여름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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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새 집으로 이사오고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프라이시스 포크 초등학교로 전학을 한 것은 2년 전이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둘리양은 낯선 곳과 낯선 사람들을 무척 싫어하던 때여서,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네 주민으로부터 둘리양과 동갑인 여자 아이가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 집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매디의 엄마는 프라이시스 포크 초등학교의 여러 가지 좋은 면을 많이 이야기해주었고, 전학을 시킨 후 매디와 둘리양이 한 반이 되어서 무척 다행스러웠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매디네 부모가 모두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매디와 둘리양은 수시로 서로의 집을 오가며 같이 놀고, 먹고, 잠을 자기까지 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겨주었다.

우리집에서 매디네 집과 뒷마당이 보인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되면 두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같이 등교하기로 했다고 한다. 부활절 봄방학중인 현재, 매디 덕분에 내가 참 수월해졌다. 두 아이가 수시로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매디가 없었다면 둘리양은 심심함을 느낄 때마다 내게 와서 “What do I do?” 나 뭐해? 하고 질문을 가장해서 놀아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내가 놀아주고 싶어도, 사춘기에 가까워진 이 아이의 취향을 내가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심심해서 입이 부루퉁해진 둘리양은 자기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가버리는 결말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매디 덕분에 이번 봄방학 동안에 단 한 번도 “나 뭐해?” 하는 볼메인 소리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매디네 가족이 둘리양을 데리고 트램폴린 팍이나 버블티 카페에 데리고 가주기까지 했다.

매디에게 줄 선물

버블티 값이나 트램폴린 팍 입장료 같은 비용을 현금으로 돌려주면 어쩐지 그 호의를 돈으로만 세는 것 같아보일까봐 대신에 매디에게 선물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작년에 서투른 솜씨로 처음 떠본 모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매일 쓰고다니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 곧 햇빛이 뜨거워지는 계절이 올테니 작년 것보다 더 예쁜 모자를 떠주기로 했다. 유튜브에는 여러 가지 디자인과 뜨는 법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고 시청하기만 하면 된다.

핀에게 줄 선물

모자와 같은 소품은 금새 완성하기 때문에, 매디의 모자는 이틀에 걸쳐 다 만들었다. 지난 번 저녁 초대에서 매디의 남동생 핀이 내가 뜨개질로 만든 디즈니 담요를 멋있다고 말해준 것이 생각나서, 핀에게도 뜨개질로 모자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런데 남자아이를 위한 모자 디자인은 유튜브에도 구글에도 많지 않았다. 여자 아이를 위한 디자인을 찾아보고 그걸 참고해서 내가 직접 디자인했다.

매디와 핀에게 줄 선물

꽃이 달린 소녀스러운 모자와 돛단배와 항해 휠 (sailing wheel 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 캡틴 박 님이 명칭을 알려주셨다 🙂 타륜 또는 조타륜 이라고 부른다고 하신다. 배의 진행방향을 바꿀 수 있는 키를 조종하는 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을 따로 떠서 붙이니 내가 봐도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다. 손가락이 조금 아프지만 고작 사흘만에 멋진 작품을 완성해서 기쁘다.

꽃와 배의 핸들, 그리고 돛단배를 떠서 붙였다.

뜨개질을 하며 놀고 있는 주말 동안에 둘리양과 매디는 수시로 두 집을 들락날락 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에 우리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차려주기로 했다. 전날 저녁밥은 매디네 집에 가서 얻어먹고 왔으니 오늘은 내 차례이다.

치즈라면을 끓이고 있다.

라면을 끓이고 그 위에 아트 선생님이 나누어준 바베큐 쇠고기를 얹어주기로 했다.

아트 선생님이 나눠전 바베큐 쇠고기 (브리스켓)

메뉴는 소박한 라면이지만, 상차림만은 소녀 취향에 맞추어 차려주기로 했다. 같은 음식이라도 예쁜 그릇에 예쁘게 담아 먹으면 맛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을 아니까.

평소 안쓰고 아끼는 그릇에 담으니 라면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식탁에 차릴 때도 한 번 더 신경썼다.

매디는 입맛이 무던하고 성격이 과감하기도 해서 평소에 내가 해주는 한국음식을 처음 먹어보는데도 잘 먹는다. 조금 서툴지만 젓가락으로 라면을 잘 먹었다.

라면을 먹고 있는 매디
라면을 먹고 있는 둘리양

나중에 내가 만든 모자를 들고 매디네 집에 갖다주러 갔다. 매디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뉴욕주에서 열 시간을 운전해서 다니러 오셨는데 모자가 예쁘다며 내 솜씨를 칭찬해주셨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놓고 보니 작품이 더 돋보였다. 모델이 귀여워서 그런 것 같다.

2023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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