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1일은 할로윈이었다. 발렌타인스 데이, 마덜스 데이, 하는 식으로 무슨 “데이” 라고 이름붙인 날이 있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할로윈, 같은 날은 “데이” 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부른다. 별다른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미국인들 입에 익숙해진 대로 굳어진 결과인 것 같다.

지난 여름 방학부터 주말이나 휴일에 티비를 볼 때 뜨개질 해서 만든 호박모양 설거지 수세미를 만든 것이 75개가 되었다. 아크릴 실 두 타래로 만든 것인데, 한 타래를 더 사서 더 만들까 하다가 똑같은 모양 뜨개질을 계속 하기가 지루해져서 그만두었다. 아크릴 실은 무척 저렴해서 75명에게 나눠줄 캔디를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속담처럼, 마음껏 늘어져 쉬는 주말에 티비를 보면서 뜨개질을 해서 할로윈 트릿을 준비하니 돈과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한 것 같아서 기쁘다. 게다가 이런 수공예품에 대한 존경심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아주 높기 때문에 효용성도 높다.

할로윈 장식도 마쳤고, 트릿 준비도 끝났고, 둘리양의 코스튬도 완성되었다. 코난군은 어린 아이들에게 갈 캔디를 자기가 받아오는 것이 미안하다며 캔디 동냥은 하지 않고, 대신에 친구들과 함께 우리집으로 걸어서 하교해서 동네 산책을 같이 하고 우리집 지하실에서 놀기로 했다. 친구들과도 캔디 동냥은 하지 말자며 의논을 모았다고 한다. 남자아이 열 명이 왁자지껄 놀다가 컴컴한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둘리양은 원래는 주주네 동네로 가서 캔디 동냥을 하기로 했었는데, 학교 친구들이 우리 동네로 와서 함께 캔디 동냥을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동네에 남아 있기로 했다. 나역시 라이드를 위해 왔다갔다 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집에 오는 아이들에게 트릿을 나눠줄 수 있어서 그 편이 더 좋았다. 프라이시스 포크 초등학교에서 친구가 된 콜비와 앤젤리는 우리처럼 주택 단지가 조성된 곳에 살고 있지 않아서 전에도 우리 동네에서 함께 트릭 오얼 트릿 (=캔디 동냥)을 다닌 적이 있다. 앤젤리 엄마는 아이를 데려다주러 오면서 스타벅스에서 핫초콜렛을 사와서 한 잔씩 돌렸다. 여중생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트릿이었다.

우리 동네 트릭 오얼 트릿의 규칙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가 지기 전 이른 시각에 시작을 하고, 일일이 벨을 눌러 캔디를 받지 않고 집주인이 집 앞에 나와서 캔디를 나눠주게 한다. 원래 할로윈은 해가 진 이후 컴컴할 때 시작되는 것이지만,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치기로 한 것이다. 우리 동네 반장 아줌마 격인 제니가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 그룹에 올린 사진을 내가 다운로드 받아서 여기에 올린다.

할로윈 전전날 까지만 해도 날씨가 더워서 에어컨을 켜야 했는데, 할로윈 날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쌀쌀해졌다. 하지만 마녀 모자가 머리를 따뜻하게 보온해주고, 마녀 옷 비슷해 보이는 검정색 패딩코트를 입으니 두 시간 가량 바깥에 서있어도 춥지 않아서 좋았다. 아이들에게 마녀가 손수 만든 호박을 하나씩 따서 가지고 가라고 하니, 무척 즐거워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이걸 직접 만들었냐며 “쿨” 하다고 칭찬의 말을 해주었고, 어린 아이들을 따라온 어른들도 나에게 솜씨가 대단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주 기초적인 뜨개질만 할 줄 알면 쉽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그 기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기술과 정성이 가득 담긴 귀중한 할로윈 트릿으로 여겨지나보다. 75개의 수세미는 금새 동이 나고 혹시나 하고 준비했던 캔디 40여개까지 다 소진하고나니 해도 지고 할로윈 행사도 끝이 났다. 내년에는 120개 정도를 만들어야겠다.

다른 집들은 갖가지 캔디를 준비해서 집앞에 두고 나누어 주거나 이렇게 차려놓고 마음껏 집어가게 해두었다.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캔디 동냥을 함께 해야 하니 무인 캔디 테이블을 차려둔 것이다.

비교적 큰 아이를 둔 집은 어른이 함께 다니지 않아도 되니 집앞에 나와서 캔디를 나눠주었다. 매디네 옆집인 바이올린 선생님 집은 모든 명절마다 집앞 장식을 화려하게 하는데, 할로윈 장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테이블 위에 차린 것을 보니 아마도 캔디 뿐만 아니라 숩이나 커피 등의 따뜻한 간식을 나누어 주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할로윈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행사이다. 좋아하는 캐릭터 복장을 입고 이웃집을 다니며 캔디를 얻어오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부모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어른들도 여러 가지 코스튬을 차려 입기도 한다.



온동네가 마치 놀이공원처럼 재미있는 장식을 하고, 어른과 아이들이 재미있는 복장을 하고 즐겁게 산책을 하며 맛있는 캔디를 얻어오니, 무척 즐거운 가족 행사이다. 이웃끼리 오랜만에 인사도 나누고, 갓난아기였던 이웃집 아이가 이제는 혼자 걸으며 캔디를 얻으러 오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며, 두 시간 가량 즐거웠다. 나는 코난군과 둘리양의 친구들이 모두 집에 있어서 그 뒷바라지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사진을 보니 다른 어른들은 모닥불 가에 서서 즐거운 시간을 더 가진 모양이다. 어느집에선가는 어른들을 위한 음료를 준비한다고 했던 것 같다.

할로윈날 아침에는 내가 지도하는 교생의 실습지를 방문했는데, 같은 학년 교사들끼리 같은 주제로 코스튬을 입고 와서 아이들과 할로윈 파티를 하고 있었다. 나역시 마녀 모자를 쓰고 마녀 코트를 입고 방문을 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할로윈 분위기를 즐겼다.

그리고 그 날 밤에는 둘째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중인 동료 교수가 이런 사진을 보내왔다. 몇 년전에 임용된 젊은 여교수는 재작년에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내가 아기 담요를 뜨개질해서 선물을 한 적이 있고, 이번 둘째 출산에는 첫 아이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셋트로 할로윈 모자를 뜨개질해서 선물했었다. 출산 예정일이 10월 초순이라길래 할로윈에 두 아이가 함께 입으라고 준비한 것이다. 선물을 전달한 것은 9월초순이었는데 마침내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사진을 찍어서 고맙다는 인사로 보내주었다. 내가 코난군과 둘리양을 낳았을 때 선배 교수님이 아기 담요를 퀼트로 만들어서 선물을 해주셨는데, 내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이제 11월이 되었다. 11월은 추수감사절 방학 때문에 짧게 느껴지고, 그렇게 11월이 지나가면 겨울 방학 때문에 더더욱 빨리 지나가는 12월이 된다. 겨울 방학이 되기 전에 해야할 일을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2023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