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이번 학기 마지막 학과 회의가 있었다. 기말 성적 처리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료들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는데, 둘리양이 중학교 밴드와 드라마 클럽 공연이 있다고 말하니, 나와 가깝게 지내는 동료 섀런이 깜짝 놀라며 한 말이다. “둘리양이 무대에??”
ㅎㅎㅎ
둘리양이 아기일 때부터 지켜본 사람이라면 놀랄만한 일이다.
둘리양은 중학생이 된 이후로 날개를 달기라도 한 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라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있다. 아마도 아기다루듯 하던 초등학교의 분위기와 달리 모든 일을 자신이 계획하고 진행하는 중학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인 것 같다.
밴드에 가입해서 난생처음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는데 오로지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실력으로 꽤 좋은 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목요일 저녁에는 블랙스버그 고등학교 강당에서 블랙스버그 중학교와 고등학교 연합 밴드가 겨울 콘서트를 했다. 인원이 무척 많아서 가장 저학년인 둘리양의 그룹이 먼저 공연하고, 그 다음이 7학년, 8학년, 고등학생 그룹의 순서로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했다.
크리스마스 노래의 분위기를 더욱 살리기 위해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도록 했다. 하의는 검정색 바지에 검정색 신발을 착용해야 해서 둘리양과 주말에 쇼핑을 다녔는데, 결국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없어서 내가 입던 바지와 단화를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 ㅎㅎㅎ
미국 중고등학교에서는 밴드와 여러 가지 클럽 활동을 아주 많이 지원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미국의 대부분 학교가 그러한 것 같다.
악기는 자기 것을 구입하거나 렌트하는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지만, 악기 연주를 배우는 수업과 연주에 필요한 다른 모든 장비, 심지어 고학년이 되어 가입할 수 있는 심포닉 밴드나 마칭밴드에서 입어야 하는 연주복까지도 학교와 학부모회에서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악기 연주를 배우고 콘서트를 하려면 무척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비해 미국 아이들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코난군은 관악기 연주에 관심이 없어서 학교 밴드에 가입하지 않고 바이올린 레슨을 받아오면서 로아녹 심포니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6학년 그룹 콘서트 연습을 할 때 어느 자리에 앉을지를 학생들에게 정하도록 했다면서 ‘나는 어디 앉으면 좋을까요?’ 하고 둘리양이 물어보았다. 객석에서 잘 보이고 사진을 찍기 쉽도록 가장 앞줄에 앉으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는데 둘리양은 과연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연주를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의연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큰 감동이 밀려왔다.
그 이후 지난 주말 동안에는 드라마 클럽의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와 뮤지컬을 각색해서 공연했다.
중학교 6, 7, 8학년 학생들이 가입해서 오디션을 보고 선발된 아이들이 연기와 노래를 하는데, 둘리양은 연기보다는 무대 연출에 관심이 많아서 오디션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공연 연습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네 번에 걸친 공연에도 한 시간씩 일찍 가서 준비를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대에서 객석의 주목을 받고 싶어해서 무대가 비좁을 정도로 많은 배역을 더블 캐스팅으로 해서 공연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서이다. 반면에 음향과 무대 연출을 맡은 아이들은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위의 단체 사진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출연진이니 무대가 얼마나 복작거렸는지 알 수 있다.
가끔식 장면이 바뀔 때 둘리양이 아래위로 검정색 옷을 입고 무대 장치나 소품을 들고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주연과 조연을 통털어 봐도 둘리양이 제일 예뻤다, 내 눈에는 ㅎㅎㅎ
오디션으로 뽑힌 주인공이 노래를 어찌 그리 엉성하게 부르는지 음이 처지거나 답답한 발성으로 듣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둘리양이 안해서 그렇지 오디션에 참가했었다면 타고난 목청으로 주인공이 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하지만 둘리양은 연기에 관심이 없고 노래부르기도 좋아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을 꺼내주니 혼자서 장식을 다 하기도 했다.
공연 때문에 바빠서 동네 쿠키 교환 행사 준비는 나혼자서 다 했야만 했다.
쿠키와 트리 덕분에 실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게 되었고, 남편이 종강을 하면 외부 장식도 하려고 한다.
즐거운 겨울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2023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