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나 생일과 상관없이 필요한 물건이나 원하는 물건을 그때그때 구입하는 습성이 있다. 필요한 때에 구입해서 즉시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미국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사다놓고 생일이 되기를 기다리거나 크리스마스 날 아침까지 며칠 혹은 몇주일을 기다렸다가 개봉해서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몇날몇주를 기다려도 되는 물건이라면 내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은 아예 구입하지 않는 소비습관이 더해져서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는 점점 빈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장난감 선물을 포장해서 트리 아래에 두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는 산타가 주는 선물을 더해서 놓아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이 열어보며 즐거워하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산타도 엘프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평소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다만,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가 너무 휑하니 비어있으면 허전하니, 남편은 한가할 때 읽으려고 산 책을 포장해서 놔두었고, 나는 아이들이 군것질로 먹을 쿠키나 캔디를 포장해서 두었다.
아이들은 트리 아래에 놓인 선물 상자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엄마의 사진 촬영을 위해서 기꺼이 포장을 뜯는 수고를 해주었다 ㅎㅎㅎ
해가 지나갈수록 우리 동네 이웃집들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다. 3년 전에는 꼬마전구만 켜놓더니 2년 전에는 커다란 산타 모형을 세우고, 작년에는 눈사람 모형을 하나 더 사다가 세워놓고, 올해에는 새로운 꼬마전구 셋트를 창문에 더 붙이는 식이다. 덕분에 우리 동네로 들어오면 마치 놀이공원처럼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밤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동네 입구에 위치한 집이 가장 공을 많이 들여서 전구 장식을 하는데, 이 집 말고도 몇 몇 집은 아예 사람을 고용해서 지붕에까지 전구를 설치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주는 업체가 있다는 것도 놀랍다.
반면에, 우리집은 점점 크리스마스 장식이 줄어들고 있다. 애들도 다 컸고, 장식을 해야할 12월 초순은 학기말 성적처리로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해서 그런 것이다. 밤이면 온동네가 번쩍거리고 있으니 굳이 우리까지 동참하지 않아도 동네는 충분히 아름답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다시 장식을 치울 일도 없어서 좋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는 코난군의 여자친구를 초대해서 저녁을 먹였다. 며칠 전에 그 집에서 먼저 코난군을 초대해 주어서 답례로 이번에는 우리집으로 부른 것이다. 코난군은 일 년 정도 사귀던 첫번째 여자친구와는 오래전에 결별했고, 얼마전 부터는 테이아 라는 아이와 남친여친 사이가 되었다. 요즘 늘 함께 하는 테니스 친구들 그룹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정작 테이아는 테니스를 안치고 축구를 열심히 한다. 테니스를 잘 치는 다른 여자아이의 가장 절친이어서 테니스 그룹 모임에 항상 따라 나오고 모두와 함께 잘 어울리고 있다.
며칠 전 테이아네 집에 초대받은 코난군을 그 집까지 태워주었는데, 저녁 식사 대접도 잘 받고 둘이서 마카롱을 만들며 놀았다고 한다. 직접 만든 마카롱을 우리집까지 가지고 와서 온가족이 나누어 먹기도 했다. 모양은 부족하지만 맛은 동네 제과점에서 파는 것 만큼이나 좋았다. 우리 아이를 잘 대접해준 것에 대한 답례로 이번에는 우리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테이아는 테니스 그룹 아이들과 함께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몇 번 있어서 피차 낯설지 않은 사이이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코난군의 여친으로 오는 것이니 밥상을 차리는 데에 신경을 조금 더 기울였다.
새우튀김을 얹은 우동과 돈까스를 준비했다. 돈까스는 미리 튀겨서 오븐을 보온 온도로 맞추어 접시째 넣어두면 따뜻함과 바삭함을 꽤 오래도록 유지한다. 접시까지 데워져 있어서 먹을 때도 음식이 빨리 식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테이아네 집은 우리집 보다 훨씬 부자여서 – 어쩌다보니 코난군은 부잣집 딸하고만 남친여친을 한다 🙂 – 그 집 냉장고 문 한 짝이 우리집 냉장고 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아버지가 큰 종합병원의 수술 외과 과장이고 엄마도 그 병원에서 일한다고 하니, 큰 집과 큰 냉장고가 수긍이 된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오빠가 세 명이나 있는 부잣집 늦둥이 고명딸 치고는 테이아는 성격도 좋고 착한 아이인 것 같다. 내게 예의바르게 저녁 식사가 아주 맛있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챙겼다.
둘은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도 교환했는데, 코난군은 이런 선물을 받았다.
겨울에 입기 좋은 외투 외에도 코난군이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컵과 집에서 직접 구운 쿠키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로 주었다. 코난군은 자기 용돈으로 이것저것 몇 가지를 사서 선물한 모양이다.
나는 코난군에게 이 한 상자의 쿠키가 품고 있는 몇 가지 사실에 대해 말해주었다.
가정적인 부모, 풍족한 환경, 세심한 성격을 요구하는 쿠키 굽기 취미생활, 이런 것을 가진 테이아는 참 좋은 아이이고, 그런 아이와 남친여친이 된 것도 좋은 일이다 라고.
사실 아이가 자라면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귈 때가 되면 부모로서 은근히 걱정되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에 은퇴한 동료 교수 한 사람은 아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소개를 했는데, 그 아이로 인해서 일 년이 넘도록 마음 고생을 한 일이 있었다. 남의 사생활을 미주알 고주알 적을 수는 없지만, 여자친구의 가정교육 수준과 최소한의 안정적인 가정환경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코난군은 예의바르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와 친구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2024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