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군 테니스 대회 가는 날 먹는 김밥

코난군 테니스 대회 가는 날 먹는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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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은 타주에서 열리는 테니스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여름 방학 동안에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다녔고 학기 중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주말에 대회를 간다.
참가하면 최소 하룻밤, 어떨 때는 2박 3일 동안 집을 떠나 있기 때문에 잠은 호텔에서 자고 식사는 사먹게 된다. 보잘것 없는 햄버거 셋트를 사먹어도 한 사람 당 10달러 이상 돈을 지불해야 하고 매 끼니 연달아 먹으면 물리기도 해서 집에서 김밥을 싸준다. 즉석국이나 컵라면을 가지고 가면 호텔 방에서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고, 다음날에도 한 끼는 더 먹을 수 있다. 어떤 대회 장소는 차를 타고 대회장을 나가서 점심을 사먹기가 힘들 정도로 외딴 곳에 있기도 해서 김밥 도시락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김밥 속재료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코난군이 좋아하는 쇠고기는 항상 넣는다.

코난군이 좋아하는 불고기를 넣고 정성껏 김밥을 만들어서 들려보내면 나도 멀리서 코난군을 응원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코난군의 테니스 뒷바라지는 남편이 다 알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고마운 남편에게 정성 담긴 음식으로 보답한다는 마음도 있다. 남편도 김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은 길쭉한 방향이 세로가 되게 놓아야 옆구리가 터지지 않는다.
속재료는 단무지처럼 단단한 것을 가장자리에 놓고 고기나 당근 등 잘 부스러지는 것을 가운데 넣는 것이 나만의 비법

코난군이 아빠의 노력과 정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남편의 기대치가 높은 것인지,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나보다. 이기고 지는 것이야 실력 차이 때문이니 코난군을 탓할 일이 아니지만, 어이없는 실책을 하거나, 그렇게 지고도 다음에는 실수를 줄여서 꼭 이겨야겠다는 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 남편을 속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김발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단단하게 잘 감아지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시작부터 코난군이 테니스 스타가 되기를 바라거나 선수로 뽑혀서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도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보다 나은 경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운이 좋으면 그 노력이 빛을 발해서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습관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그 어떤 일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좋아하는 테니스 연습과 대회를 다니려면 학교 과제나 시험 공부를 미리 미리 해두어서 성적 관리를 할 동기 부여가 되는 점도 좋다고 생각한다.

계란을 속에 넣지 않고 겉에 두르면 더 많은 양의 계란을 먹을 수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집을 떠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온 부자에게서 무언의 실망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어보니 그럴만도 했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코난군이 상대한 아이가 백핸드가 무척 약해서 공을 백핸드로 쳐야 하도록 보내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그 아이가 백핸드 실책을 할 때 마다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일부러 공을 그리로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게 무슨 운동 경기 대회에 참가한 선수의 마음인가 말이다…
예전에도 가끔씩 상대방이 너무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져주다시피 한 경기가 자주 있었다. 운동 경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코난군에게는 있을 법한 일이다.

사각팬이 아니어도 김밥을 밀면서 계란을 추가로 부어주면서 말면 전체가 다 잘 말아진다.

코난군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깊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있는 아이이다. 이 아이가 더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은, 그 배려와 이해심을 발휘해야 할 때와 애써 무시해야만 할 때를 구분하고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그에 맞게 통제하는 일이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속상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사과하고 위로해야겠지만, 운동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속상해하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오히려 비열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약점을 파고들어 이용해야만 한다. 상대방을 밟지 않으면 내가 지고 마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왼쪽은 불이 너무 강했고 약한 불에 인내심을 가지고 조심해서 구우면 오른쪽 성공작이 된다.

바보같이 상대방에게 져주는 모습을 보는 남편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자면 우리 코난군은 그만큼 마음씨가 착한 아이이다 🙂
앞으로 계속해서 시합을 하다보면 착한 마음씨를 발휘해야 할 때와 감추어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겠지… 어른이 되어서 사기꾼에게 당하고 못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며 사는 것을 예방하려면, 지금 테니스 대회에서 마음의 굳은살을 만들어내야 한다.

후라이팬에 익히면 색이 나빠질까봐 아보카도를 넣지 않았더니 색감이 좀 아쉽다.

바보같은 착함은, 사고력이 덜 발달한 아동기에는 흔한 일이다. 내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가 아니고 국민학교 4학년 🙂 새 학기가 시작하는 시기에 학급 반장과 부반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그 옛날 지방 도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무척이나 고루해서 반장은 반드시 남자 아이가 되어야 하고 부반장은 남자 여자 한 명씩을 두는 것이 우리 학교 규칙이었다. 남자 아이 하나가 반장으로 뽑혔고 차점자는 남자 부반장이 되었고, 그 다음은 여자 부반장을 뽑을 차례였다.
나와 다른 여자 아이 한 명이 후보였는데, 나는 어쩐지 내 이름을 내가 쓰면, 즉 내가 나에게 투표를 하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 후보의 이름을 써냈다. 겸손이 미덕이던 사회 분위기와, 나는 경쟁에 연연하지 않아! 하는 듯한 모습이 멋져보인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김밥 속재료는 다양한 색이 보여야 화려하고 맛있어 보인다.

결과는 단 한 표 차이로 내가 부반장이 되지 못했다.
내가 내자신에게 표를 주었더라면 한 표 차이로 내가 이겼을 결과였다. 그 패배는 오로지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마음속으로 큰 후회를 했다.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나에게 투표하는 것은 오히려 공정하고 지당한 일이었다. (상대 후보 아이는 역시나 자신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부반장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는 것이 맞는 일이니 말이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한 학기 내내 패배의 쓴맛을 남몰래 느껴야 했다. 칠판에 아침 자습 문제를 적어 두는 일, 반장과 번갈아가며 ‘차렷, 선생님께 경례’ 라고 말하는 일, 자습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 이름을 칠판에 적는 일, 학급 회의 시간에 회의록을 적는 일… 등등을 할 수 없을 때마다 그 때 내 이름을 적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 다음 학기에는 이미 1학기 부반장으로서 인지도를 높힌 그 아이가 다시 부반장이 되었고 나는 형편없는 표차로 당선되지 못했다. 한 번의 실수가 1년 동안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니, 그 한 번의 실수가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웃집 매디가 놀러와서 함께 먹었다.
매디는 김밥도 좋아하고 젓가락질도 제법 잘 하는 미국 소녀이다.

국민학교 4학년 부반장 선거 사건은 내게 공정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정말로 연연하지 않는 것과 속으로는 연연해 하면서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내가 정말로 부반장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면 그렇게 1년 내내 속상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부반장이 되었던 나보다 키가 조금 작고 야무지게 땋은 머리를 했던 아이, 최미화…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꼼꼼하고 똑똑한 그 아이가 정말로 나보다 더 나은 부반장 후보였던 것 같다.

오빠 덕분에 김밥을 자주 얻어먹는 둘리양

우리집 코난군이 수많은 경기를 통해서 테니스 실력도 향상하고, 감정과 태스크 (Chat GPT에게 물어보니 일, 과제, 직무, 업무 등으로 번역해주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아닌 것 같아서 영어로 쓴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게 되기를 바란다. 이기고 지는 결과는 말 그대로 결과일 뿐,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냉철하고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 테니스가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2024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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