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둘리양은 마칭 밴드 연습을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 가서 하고 있다. 8월 중순 개학을 하자마자 시작되는 미식축구 경기에서 공연을 하려면 지금부터 맹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칭 밴드는 악기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하면서 줄을 맞추어 걸어다니거나 밴드의 대형을 바꾸는 등의 동작을 함께 해야 하고, 백 명이 넘는 밴드 멤버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학교 밴드실에서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이른 아침이나 해가 기울어진 저녁 시간에는 넓은 학교 주차장에 나와서 연습을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연습을 하니 몸이 피곤한 것은 당연하다. 아침마다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서 제 할 일을 하는 둘리양도 요즘은 피곤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자러 가기 전에 아침 7시에 모닝콜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다음날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났다는 문자를 내게 먼저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날인 어제 저녁, “내일 아침에도 깨우는 전화를 해줄까?” 하고 물었는데 둘리양은 딱히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역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확실치 않았다. 여느 아이들이라면 안전하게 무조건 깨우는 것이 좋겠지만, 둘리양은 이미 일어났는데 깨우는 전화를 하면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역시 매일 출근해서 개강 준비를 하느라 피곤해서 늦잠을 잤다. 남편은 새벽같이 자동차 타이어 로테이션을 하기 위해 집을 나갔고, 방학인 코난군은 마음놓고 아침잠을 즐기니, 온집안이 조용해서 나도 일찍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7시 35분에 눈을 떴는데 둘리양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굿모닝” 문자를 보냈는데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얼른 일어나!” 또는 “일어났니?” 하고 문자를 보내면 둘리마마의 심기를 거스리기 때문에 깨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아침 인사인 척 문자를 보내는 것이 12년간 둘리양을 키우면서 터득한 노하우이다 ㅎㅎㅎ ㅠ.ㅠ

문자에 답이 없어서 전화를 하니 방금 깬 목소리로 둘리양이 전화를 받았고 “지금 7시 38분이야” 라고 말하자 그 때 부터 둘리양의 투정이 시작되었다. 재난상황 시작이다!
어젯밤에 “응, 깨워줘” 라고 확답을 받았더라면 내가 알람을 맞춰놓았을텐데…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알람을 맞춰놓고 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부랴부랴 등교 준비를 하면서도 둘리양은 내게 문자로 징징거렸다. 아무 내용 없는 문자를 보내는 것이 그녀의 온라인 투정이다, 오프라인 투정은 “응~~~” 하는 모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저음으로 낮게 “응~” 하다가 누가 한 마디 말이라도 얹으면 알피엠이 올라가서 한 톤 높고 한 단계 더 큰 “응~”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우습기도 하지만, 내 신경을 자극하기도 해서 내게는 공포스러운 소리이다.

옷 갈아입고 머리빗고 하느라 바쁠텐데 그 와중에도 빈 문자를 보내는 둘리마마…
마침내 차에 탔는데 (그렇다, 마마께옵서 피곤하신지라 걸어가면 3분이 걸리는 거리를 4분 걸려 운전해서 모셔다 드리고 있다.) 오프라인 투정, 즉 “응~” 하는 엔진 소리가 시작되었다. 지금 출발하면 8시 전에 학교에 도착하기 때문에 지각도 아니고, 얼음물 등의 준비물도 다 잘 챙겨서 더이상 속상할 일이 없는데도 엔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제 엄마가 물어봤을 때 네가 깨워달라고 확실하게 대답을 안했잖아” 라고 말하니 엔진 알피엠이 확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내가 뭐라고 더 말을 하니 알피엠이 오르다 못해 마침내 둘리양의 입에서 “스탑 잇” 이라는 말이 나왔다. 잔소리를 그치라는 뜻이다. “너도 그 소리 스탑해!” 하고 받아쳐주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마칭밴드 연습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고, 엄마한테 깨워달라고 부탁을 해보았더니 혼자 일어날 수 있었고,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다시 모닝콜을 부탁할지말지 확실치가 않았겠지.
나역시 마칭밴드 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라, 방학인데도 매일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고 아침 저녁으로 라이드를 해주어야 하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둘리양이 평소처럼 아침에 잘 일어날 것인지 도움이 필요한지도 처음 겪는 일이라 잘 몰랐다.

나도 이렇게 서투르고 부족한 엄마인데, 아이한테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잔소리 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느꼈다.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은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잘 모르겠고, 그러다보면 실수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처음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우매한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저녁 가족을 초대해서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실제처럼 하는 공연을 보러갈 예정이다. 고등학생들이 대다수인 마칭밴드에서 가장 어린 연령이지만 제 몫을 잘 해내는 둘리양을 응원해주러 간다.
2024년 8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