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블랙스버그에는 다섯 개의 공립 초등학교가 있다. 작은 마을에 몇 개 안되는 학교이지만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은 그 중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주택 구입을 할 지역을 고른다.
교육열이 가장 높은 아시아계 부모들이 특히나 더 초등학교 학군에 관심을 가지는데,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이고 여러 학교를 돌며 교생실습 지도를 해본 경험상,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학교”가 실제로 좋은 학교가 아닌 경우가 많고, 반대로 “안좋은 학교”가 어떤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학교일 수 있다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립학교는 학생이 거주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학교로 보내야 하므로 주택을 구입할 때 그 지역의 학교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블랙스버그의 주택 매물을 보여주는 부동산 사이트] https://www.realtor.com/realestateandhomes-search/Blacksburg_VA
이 사이트에서 주택 하나를 골라서 클릭하면 주택에 관한 여러 정보가 나오고 계속 아래로 내려가면 해당 지역 공립 학교의 점수가 나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어차피 하나씩 밖에 없으니 비교의 의미가 없고, 초등학교 점수는 다섯 개 학교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블랙스버그 초등학교 점수를 보여주는 사이트] https://www.greatschools.org/virginia/blacksburg/schools/?distance=5&gradeLevels%5B%5D=e&gradeLevels%5B%5D=m&gradeLevels%5B%5D=h&lat=37.2532&lon=-80.4347&zip=24060
이 사이트에는 아예 우편번호나 도시 이름을 입력하면 그 지역 모든 학교의 점수가 나온다. 10점이 가장 높은 점수이다. 블랙스버그 관내 다섯 개 초등학교가 5점에서 9점 사이에 분포한다.
미국에서 직접 공립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자녀의 교육을 무척 중요한 목표로 삼은 이민자 부모들은 이 점수가 객관적인 지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단순하게 점수가 높은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단정하기 전에 이 점수가 포함한 평가 항목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위의 사이트에서 학교 이름을 클릭하면 세부 항목을 보여주는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시험 성적) 뿐만 아니라 학생의 인종 구성, 교사대 학생의 비율, 저소득층이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의 성적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의 정보를 취합한 것이 10점 만점에 몇 점으로 환산해서 나와 있다.
예를 들면, 전체 학생들이 대부분 공부를 잘 해서 좋은 시험 성적을 기록하고 있어도, 지적 장애를 포함한 장애인 학생들의 시험 점수가 너무 차이나게 뒤쳐지면 종합 점수에 마이너스로 작용해서 총점이 낮아진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양극단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항목은 평가 요인에 추가된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몇 년 전에 코난군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10점 만점에 10점을 기록하다가 다음 해에 6점으로 하락한 것이 바로 이 항목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 하던 아이들의 성적이 갑자기 나빠지거나 학교 전체 평균 성적이 내려간 것이 아니고, 다만 두 그룹 간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이 새로운 평가 항목으로 추가되어 점수를 깎아 먹은 것이다. 이것만으로 이 학교가 하루 아침에 “좋은” 학교에서 “안좋은” 학교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그나마 여러 가지 항목의 점수를 보면서 이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표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이 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이 교사가 잘 가르치고 교장이 잘 이끌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이 학교에 많이 재학하고 있기 때문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지 시험 점수가 높은 것에만 주목해서 내 아이가 이 학교에 다니면 저절로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동네 주택 단지는 둘리양이 졸업한 P초등학교 학군이지만, K초등학교가 거리상으로 더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고, 공교롭게도 학생들의 시험 성적이 더 높다. 그래서 어느 한 집의 아이는 K 초등학교를 몇 년째 다니고 있는데, 공부를 잘 하기는 커녕 오히려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서 교사와 특별 면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가정은 이혼한 엄마가 외할머니와 함께 외동인 아이를 키우는데, 교수로 일하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매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외할머니는 영어를 거의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외할머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이는 아직도 영어가 서투르고 그래서 학교에서 성적이 많이 뒤쳐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아이가 단지 내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학교 버스를 타고 P초등학교를 다녔더라면 매일 아침 버스 정거장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고 버스 안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20명이 넘는 동네 아이들과 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되거나 마주치면서 학교 생활에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부모들과 교류하면서 아이의 엄마나 할머니도 미국 교육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춥거나 뜨거운 날씨에 손주와 왕복 30분 거리를 매일 두 번씩 (등교와 하교) 걸어야 하는 외할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는 것은 물론이다. K학교는 학군 외 지역이어서 학교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반면, 학군인 P학교는 통학 버스가 무료 운행한다. 이 아이는 그 버스가 정차하는 곳 바로 앞에 위치한 주택에 살고 있어서 더더욱 안타깝다.
나와 알고 지내는 또다른 한 가정도 아이의 교육을 고려해서 K초등학교 지역의 주택을 구입했는데, 같은 금액으로 다른 학군의 더 좋은 집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부모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내리는 결정과 그에 따른 희생은 각자의 몫이니 내가 감히 왈가왈부 해서는 안된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기에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래 되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주택을 구입해서 지속적으로 집수리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고르고 골라서 아이를 보낸 학교가 교육 내용이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로부터 직접 들은 일인데, 학급당 20여명의 학생이 있는데 두 반이 합반을 해서 한 명의 교사가 가르치고 있어서 아직 어린 학생들이 교사에게 집중하기 어려워 하고, 교사도 개인적인 지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반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니 의자도 책상도 모자라서 절반은 바닥에 앉아서 비좁게 수업을 들어야 하고 선생님과 칠판이 잘 안보인다고 하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거나 한눈을 팔며 딴짓을 하게 된다.
사실 이 학교의 이런 수업 방식은 내가 십 수년 전에 교생실습 지도를 할 때 이미 보아서 알고 있다. 좋은 점은 두 교사가 각자 다른 과목을 도맡아 가르치니 수업 준비를 더욱 심도깊게 할 수 있고 전문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 너무 큰 그룹으로 수업을 받으면 딴짓하고 한눈파는 아이들을 소홀히 대할 수 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의자도 책상도 없이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들으면 공책에 필기를 하거나 칠판을 보는 것이 힘들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요즘 우리 동네에서 K초등학교가 “가장 좋다”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구심이 들었다. 이 가족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지내는 많은 어린 아이를 둔 아시아계 부모들이 K초등학교를 칭송하고 그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교육감에게 탄원서를 써서 학군 밖에 살면서 그 학교로 통학시키는 것을 보았다. 내가 교생 실습 지도를 하면서 직접 경험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숫자로 표시된 평가 지표만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영향력이 크지 못했다.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학교? 같은 것은 없다.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학교를 고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부동산 사이트에서 이 학교는 몇점! 하고 보여주는 것이나, 이웃집 누군가가 ‘이 학교가 좋대!’ 라고 하는 말은 그저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학교, 우리 가족에게 가장 적합한 학교를 고르기 위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을 엄마로서, 교육학과 교수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적어보려 한다. 또한, 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 동네와 인근 지역의 공립학교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내의 다른 주, 버지니아 주 내에서도 인구 구성이 다르고 생활 기반이 다른 지역, 공립이 아닌 사립학교를 고르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
- 학교를 직접 방문해서 교장, 교사, 다른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둘리양을 P초등학교로 전학시키기 전에 내가 했던 일이다. 인터넷에 고작 한 자리 숫자로 표기된 학교 점수나,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정보만으로는 그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기에 불충분하다. 내가 고려하고 있는 학교가 있다면 직접 연락해서 언제 학교를 방문해서 둘러보아도 되겠는지 물어보고 스케줄을 정하기를 추천한다. 공립학교는 지역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방문 목적이 뚜렷한 외부인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준다.
학교 시설을 돌아보는 동안에 교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업 장면을 창문 너머로 엿볼 수도 있고, 교사를 비롯한 학교 직원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볼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교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데, 교장이 활기차고 온정어린 사람이라면 그 학교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러리라 짐작해도 된다.
반면에 외부인의 방문을 지나치게 꺼리는 분위기 (꿀리는 게 많다는 뜻), 권위적인 교장의 태도 (너따위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어 하는 듯한 태도),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교직원 (강압적으로 소리를 지른다거나 아이와 눈을 맞추지 않고 시종일관 명령조로 말하는 태도 등)을 본다면, 제아무리 점수가 높은 학교라 하더라도 내 아이를 보내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 현재 그 학교의 학부모를 만나 경험을 듣는다.
이 학교에 지금 다니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나 최근에 졸업한 아이의 부모를 만나 입학에서 졸업까지 6년의 경험이 어떠했는지 들어본다. 누구누구가 ‘그랬다더라’ 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이러했다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도록 한다. 그 부모가 좋다고 또는 안좋다고 하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학교의 어떤 점이 이 부모와 아이에게 좋았는지 안좋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가족에게 아무리 좋은 점이라도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리란 보장이 없고, 또 이 가족에게는 안좋았던 점이 우리 가족에게는 오히려 좋은 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학교 점수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높아” 라고 하는 말은 도움이 되는 정보가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애가 알파벳도 모르고 입학했는데 킨더가든 학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어” 라고 하는 말은 그 학교 킨더 학년 교사진이 훌륭하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한 유용한 정보이다.
“이 학교는 부모한테 오라가라 시키는 게 너무 많아” 라는 말은 학부모 교사간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좋은 공동체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맞벌이 엄마인 내게 부담을 주는 학교라는 뜻일 수도 있다.
- 학교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본다.
예를 들면 나처럼 그 학교에 교생을 보내어 실습지도를 하는 교수라든지, 그 학교 교사의 가족이라든지, 누구라도 그 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학교의 평판이나 역사를 들을 수 있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정보 속에서 나에게 결정적인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또한, 적어도 이 학교에 대해서 한 자릿수 점수 보다는 훨씬 더 양질의 실질적인 평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도 내 아이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그것은 좋은 학교가 아니다. 내 아이의 성격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무언가를 배울 때 스스로 하기 좋아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지, 자기관리를 잘 하는 편인지 아닌지, 특정 과목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리고 우리 가족의 특수성에 대해 잘 알아야 어떤 학교가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좋은 학교인지를 알 수 있다.
내 아이가 소위 ‘분위기를 잘 타는’ 아이라면, 전반적으로 시험 성적이 높은 학교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가정에서 예습과 복습을 하는 분위기라면 이 아이도 그런 분위기를 따라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학습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의 아이라면 오히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주눅이 들고, 교사로부터 기초적인 설명이나 상세한 지도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성적이 심하게 뒤처지는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집 둘리양은 소위 ‘덜좋은’ 학교로 전학을 한 뒤에 실력과 자신감을 한껏 펼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새로 옮긴 학교와 둘리양의 성향이 잘 맞았던 덕분인 것 같다. 둘리양은 누가 그러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성격인데, 이전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고 부모의 뒷받침을 잘 받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서 둘리양이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 것 없는 존재였다. One of them 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 점수가 조금 낮고 저소득층 학생 비율은 더 높은 P초등학교로 전학을 오니, 둘리양은 탑 오브 탑 학생이 되어서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주목과 칭찬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런 존재를 top dog 이라고 부른다.
내가 조금만 시간을 내서 학교 행사에 봉사를 하면 학교측에서는 무척 고마워했고 그 고마움은 둘리양에게 호감이 되어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이 봉사에 참여를 덜 하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평가 점수는 낮을지 몰라도 내가 교생실습 지도를 하면서 지켜보니 의욕있고 능력있는 교장 휘하에 교사들도 열심히 가르치는 학교 분위기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덕분에 내 교생들도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을 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동네에서 가장 최신식 건물이어서 화장실에서 냄새가 난다든지 교실에 쥐가 서식하는 걱정도 전혀 없고 학교 구석구석이 깨끗하고 쾌적한 장점도 있다.
이렇듯, 남들이 좋다더라 하는 말에 휩쓸리기 보다는 내가 직접 알아보고 겪은 자료를 바탕으로 다른 집 아이가 아닌,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학교를 고르는 것이 부모가 해야할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남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2024년 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