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이 바빴던 3월 6일

온가족이 바빴던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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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생일이자 남편의 생일이기도 한 지난 목요일 3월 6일에 가장 바빴던 사람은 둘리양이다. 재주가 많고 하고싶은 일이 많은데다 공교롭게도 여러 가지 행사가 겹쳤기 때문이다.
코난군은 이 날 학기 중간 시점을 앞두고 각 과목의 시험을 봤는데, 무려 하루동안 네 개나 되는 과목의 시험을 치루느라 점심도 못먹고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하교했다. 한국의 아이들에 비하면 고작 시험 네 개가 별 것 아니겠지만, 학원이라고는 없고 대학 입시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코난군에게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점심도 못먹고 하교했지만 뭘 먹을 시간도 없이 바로 바이올린 레슨을 다녀왔다. 그 후에는 바로 다음날 또 다른 과목의 시험이 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다음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대견하다.
남편은 원래 목요일에 강의와 실험이 연달아 있어서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귀가하는 날이다. 생일이지만 출근은 해야 하고, 미역국은 싫어하고, 건강을 위해 케익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에 다음날 저녁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

나는 학생들의 중간 고사를 온라인으로 감독하는 것 밖에 없는 날이어서 집에 머물면서 바쁜 가족들을 챙겼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주었고, 짐이 한 수레는 될 듯한 둘리양을 차로 등교시켜 주었다. 둘리양의 짐은 늘 들고 다니는 책가방 과 밴드 수업을 위한 클라리넷 악기 가방 말고도 콘서트를 위한 드레스와 구두, 육상부 연습을 위한 운동복과 러닝화, 물병 등이 있었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은 정상적으로 받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콘서트 의상으로 갈아입고 블벅고 강당으로 이동해서 올 디스트릭트 밴드 평가 콘서트 연주를 하고, 다시 중학교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기와 허들 연습을 한다. 육상 연습이 마칠 때 쯤 내가 다시 차로 데려오고, 잠시 후 귀가하는 둘리 아범과 다시 차를 몰아 40분 거리에 있는 마을에서 하는 아트 리셉션에 가는 것이 둘리양의 하루 일과였다.

버지니아 주 안에는 130여개의 학군이 있고 그걸 다시 가까운 지역끼리 모아서 8개의 그룹으로 정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몽고메리 학군은 다른 20개의 학군과 함께 6번 지역 Region 6 으로 분류된다. 지난 번 올 디스트릭트 밴드 오디션과 콘서트가 그 21개 학교내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대회였다. 이번에는 그 학교들이 평가를 받는 행사가 있었는데 둘리양이 속한 블벅중 높은 레벨 밴드의 평가 공연이 목요일 낮 2시로 정해졌다. 하루 종일 강의가 꽉 차있는 남편은 못가고 나만 참석해서 비디오를 찍어두었다. 높은 레벨 밴드라서 8학년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7학년 둘리양의 시팅은 맨 앞 줄 – 고학년과 견주어도 가장 높은 수준 이었다.

아트쇼도 인근 여러 학군 내의 학교에서 선발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었는데, 둘리양이 학교 미술 시간에 그린 반쪽 얼굴 초상화가 뽑혔다. 얼굴 반쪽은 사진이고 나머지 반쪽은 연필로 스케치하는 작품이었는데 같은 학교 같은 작품이 두 점 더 선발되었으나 둘리양의 작품이 단연 돋보였다. 비틀즈 멤버인 조지 해리슨의 얼굴인데 어느쪽이 사진이고 어느쪽이 스케치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밀하게 잘 그렸다.

남편은 점심도 대충 떼우고 저녁도 못먹고 아트쇼에 함께 왔는데 전시 첫 날이라 리셉션 파티로 간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림을 보며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자랑스런 딸의 그림 전시회를 놓치기 싫어서이다. 생일날 잘 차린 생일상은 고사하고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먼 거리를 운전해야 했던 남편은 아이들에게 참 좋은 아빠이다.

블벅중학교 다른 아이들의 작품도 구경하고 전시한 아티스트로서 싸인도 남겼다. 3월이 청소년 아트 장려의 달 Youth Art Month 라서 이런 행사가 열린 것이다.

둘리양의 선배인 블벅고 학생들의 도자기 작품도 있었는데 수준이 아주 높았다. 둘리양이 블벅고 학생이 되면 이런 작품을 만들어 이런 자리에서 또 전시를 하게 될 것 같았다.

전시회 구경을 하는 동안에 낮에 있었던 밴드 평가 기록이 나왔는데 음정, 표현력, 등등 모든 평가 항목에서 최우수 점수를 받았다는 소식을 받기도 했다. 그림도 음악도 다 잘하는 둘리양이 자랑스럽고, 마찬가지로 팔방미인 코난군도, 그런 아이들을 열심히 서포트하는 남편도 모두모두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2025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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