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어김없이 프롬 꽃장식을 만드는 때가 왔다. 올해의 컬러 코드는 브라운이라고 했다. 화사한 색이 아닌 점잖은 브라운 톤에 어울리는 꽃장식이라니…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드레스 색깔은 무시하고 그냥 예쁜 꽃 아무거나 사와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마트에서 발견한 매우 잘 어울릴 듯한 꽃, 갈색빛이 도는 프리지어가 한 다발에 고작 5달러였다.

내 꽃장식 만들기 역사가 벌써 3년째이고, 매년 가을의 홈커밍, 봄의 프롬을 지나고보니 이제 제법 경력자가 되었다. 이번에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같은 분위기의 장식을 할 필요없이 코난군과 코난군의 파트너 것만 만들면 된다고 해서 더욱 간편한 작업이었다.

코난군의 파트너는 이 날만 파트너를 하기로 한 것인지, 현재 사귀고 있는 여친인지 잘 모르겠다. 둘이서, 또는 다른 아이들과 무리지어 자주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한데, 이제 코난군도 나도 심드렁해져서 여친이든 아니든 별 상관하지 않고 있다.

꽃장식을 만드는 동안, 갈색 드레스와 색이 잘 어울릴지 반신반의 했는데 코난군이 보내준 사진을 보니 색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것 같다. 갈색 드레스와 넥타이, 그보다 밝은 톤의 꽃, 그리고 그보다 더 밝지만 비슷한 톤의 금색과 크림색 리본의 그라데이션이 아주 만족스럽다. 마침 소녀의 머리카락 색도 밝은 갈색이어서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가을의 홈커밍보다 더 격식을 차리는 봄의 프롬 파티는 길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여자 아이들은 이 날을 위해 일찌감치 드레스를 골라 주문을 하고 화장과 머리와 손발톱까지 멋지게 차려입는 날이다.

파트너가 없어도 차려입고 파티를 즐기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코난군이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은 그룹에서도 여자 아이 두 명은 파트너 없이 자기들끼리 잘 차려입고 부케까지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파트너끼리는 미리 색깔을 정해서 옷을 맞추어 입는데, 아래 사진에서 코난군 커플은 브라운, 그 옆의 커플은 블랙, 가장 오른쪽 커플은 강렬한 레드와 블랙으로 정했다. 오른쪽 소년의 신발이 눈길을 끈다. 운동화가 아닌 가죽 구두를 이렇게 붉은색으로 구입하면 이걸 언제 다시 신을 기회가 있을까? 오직 프롬 하루만을 위해 많은 비용을 쓴 것 같다.

코난군은 늘 입던 검정색 셔츠 말고 흰 색 셔츠를 입겠다고 했다. 검정 셔츠는 오케스트라 연주회마다 입던 것인데, 생각해보니 흰색 드레스셔츠도 한 벌 가지고 있으면 연주회나 다른 행사에 입을 수 있는 기본 아이템이라 한 벌 사주었다. 그런데 쇼핑 후 집에 와서 코난군이 자기 용돈에서 셔츠값으로 내게 돈을 주었다. 자기딴에는 불필요한 지출이어서 가족의 예산을 쓰지 않고 자기 용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코난군은 평소 백인과 동양인의 혼혈이라 오해받을 정도로 외모가 서양인처럼 생겼다. 백인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니 더욱 그렇게 보인다. 같은 학년 친구 중에는 한국인 아이가 있는데, 보통 한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소년들은 각기 미국과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과 영국인 (국적) 이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너희 둘이 한국인이니까 K-드라마나 K-팝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포즈를 취해보라고 해서 이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제 코난군은 홈커밍과 프롬을 한 번씩만 더 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둘리양의 차례가 온다 ㅎㅎㅎ
2025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