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명왕성

봄이 오는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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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5년의 4월은 고작 하루만 남았다. 한 해의 3분의 1이 지나간 것이다. 우리 학교는 다음 주가 기말고사 기간이고 그 이후부터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남편의 학교는 그보다 일주일이 더 있어야 하고, 아이들 방학은 또 그로부터 한 주일 뒤이다. 어느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봄 풍경이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창 밖의 아침 풍경

고등학교 테니스는 봄학기가 시즌인데, 올해는 참 좋은 코치를 섭외했고 코난군은 팀의 캡틴이 되었다. 그래서 남편도 학부모 자원봉사 코치로 열심히 돕고 있다. 며칠 전에는 테니스팀 모든 아이들과 코치들을 불러서 우리집 마당에서 햄버거를 구워먹었다. 열 대여섯 명의 고등학생 운동 선수들이 먹성이 좋아서 아주 잘 먹었다.

블벅고 테니스팀 회식

코치 데이비드는 커피를 좋아해서 남편이 직접 구운 커피를 나눠준 적이 있는데, 이 날은 아이들 햄버거를 다 구워준 다음 커피 로스팅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작년의 테니스에 관해 일자무식하고 못되빠진 코치와 달리, 코치 데이비드는 온화한 성품으로 아이들을 잘 지도할 뿐만 아니라 선수의 기량과 경기 운용을 매우 잘 분석한다고 한다. 나는 테니스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
부코치로 뽑힌 이 청년은 내가 가르치는 래드포드 대학교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테니스를 잘 한다거나 운동을 잘 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고등학생 선수들을 잘 다독이며 연습을 시키고 코치를 보조하는 역할은 잘 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서 코난 아범까지 합세해서 팀을 이끌어나가니 블벅고 테니스팀은 올해에도 승승장구 하는 중이다. 인근 고등학교 팀들과 하는 시합은 지금껏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지역 대회와 주 대회에 올해에도 출전할 것 같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코치 데이비드, 학부모 코치 양수, 부코치 하민

봄학기는 육상 경기 시즌이기도 해서 둘리양은 매일 방과후 달리기 연습을 하고, 대회마다 출전하고 있다. 작년에는 중학교 1학년이어서 블벅중에서 하는 홈경기에만 참가할 수 있었는데, 올해에는 한 학년 더 올라간데다 기량도 더 좋아져서 그런지 외부 대회에 매번 선발되고 있다. 둘리양의 주종목은 100미터와 200미터 단거리 달리기였는데, 올해에는 허들 경기를 처음 시작했고 아주 뛰어난 기록을 보이고 있어서 이번 주말에 하는 지역 대회 (인근 학교와 하는 경기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은 대회) 에도 학교 대표 허들 선수로 뽑혔다.

100미터 허들 경기

그러고보니 허들 경기가 둘리양에게 참 잘 맞는 운동인 것 같다. 그냥 달리기는 빠르기만 하면 되는데 반해, 허들은 어느 시점에서 뛰어넘을 준비를 해야 하는지 타이밍을 잘 계산해야 하는데, 매사에 계획을 세우고 미세한 조정을 잘 하는 둘리양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몸이 근육질이어서 순간 속도를 내는 것도 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근육으로 몸이 가볍지 않아서 장거리는 뛰지 않는 것 같다. 400미터나 800미터 선수들을 보면 다들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ㅎㅎㅎ

허들 경기 시작전 둘리양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이 대회에는 인근 14개 중학교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그 중에서 100미터 허들은 3등, 300미터 허들은 4등을 했다. 같은 학교 선배 한 명은 다른 모든 선수들보다 넘사벽으로 잘 뛰어서 거의 모든 경기에서 일등이고, 다른 학교 선수 한 두 명이 그 다음, 그리고 둘리양이 바로 다음 순위를 기록한 것이어서, 정말 잘 했다.
운동을 잘하고 좋아하는 남편은 둘리양의 매번 경기에서의 기록을 따로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저장하고 있다.

300미터 허들 경기

100미터 허들은 허들이 10미터 간격으로 촘촘하게 있고, 300미터는 띄엄띄엄 있어서 뛰는 방식이 조금 다를 것 같다. 촘촘한 허들은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서 뛰어넘는 것이 중요하고, 300미터는 전속력으로 빨리 달리는 것에 더해서 허들을 효율적으로 뛰어넘는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어릴때나 지금이나 달리기를 무척 못하는 사람이어서, 둘리양이 뛰는 것을 보기만 해도 숨이 찬다 ㅎㅎㅎ 숨차고 다리 아프게 왜 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들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게 되어서 고맙다.

출발선에 있는 선수들

마지막으로 2주일 전에 있었던 후덜덜한 우리 학교 소식이다.
저녁 강의가 있는 목요일이어서 오전에는 집에서 일하다가 오후에 느지막히 출근을 해서 최종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와 휴대폰과 문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면서 경고를 보냈다. 우리 학교와 인접한 다운타운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고 아직 용의자를 쫓는 중이니 교내 모든 건물의 출입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지시였다. 내가 있는 사범대 건물도 외부로 향한 문은 모두 잠겨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고, 강의실 문을 안으로 잠근채 하던 강의를 계속하는 교실이 몇 개 보였다. 내 강의 시작 까지는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태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학과장에게 문의하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학과장 역시 나만큼이나 정신없고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의 전화나 이메일을 받고 있는지 답장이 없었다. 일단 학생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상태이고, 총격 용의자가 아직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수업을 받기 위해 길거리로 나오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내 수업에는 온라인으로 수강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들은 학교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총격 사건의 위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면 이 강의를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한참 고민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용의자는 계속 잡히고 있지 않아서 모든 저녁 강의를 취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한참 후에 용의자가 잡혔고 더이상의 위험은 없다며 출입금지령이 해제되어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18년 전 이맘때 버지니아 공대에서 있었던 총격사건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이후 후덜덜했던 사건이었다.

뉴스에 나온 우리 학교 주변 사건

2025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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