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문: 프라작(?) 사중주
프라작이 뭔가… 했더니 아마도 ‘프라하의’ 라는 뜻인가보다. 네 명의 연주자 모두가 체코의 프라하 출신인 걸 보니…
여느 때처럼 콘서트 홀에 들어가서, 혹시 아는 사람이 왔나 두리번두리번, 늘 만나는 미스터 & 미세스 컬쳐 (문화인이란 뜻이겠죠?) 들과 인사하고,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조명이 밝아지면서 등장하는 네 명의 아저씨… 파리가 미끄럼 탈만큼 번질번질한 깜장구두, 검정 바지, 검정 셔츠… 독주나 협주자가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 검정색 옷을 입고 연주하는 것이 관례인가보다…
보통 현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예민한 성격이라고들 하고, 또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봐도,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심각하게 연주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오늘의 아저씨들은 웬일인지 여유만만이다. 심각한 부분에선 잠시 엄숙해 보이다가도, 밝게 연주하는 부분에선 봄날의 햇빛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짓는다. 쉰은 족히 되었음직한 아저씨 네 명은 하나같이 인상이 무척 좋아보인다. 특히 첼로를 연주하던 ‘서수남과 하청일’의 서수남과 무척이나 닮았던 아저씨는 (얼굴이 상당히 길었음, ㅋㅋㅋ) 온몸으로 연주를 즐기고 있는 듯 흥겨워 보였다.
처음 곡은 베토벤의 사중주곡 (번호 까먹었음). 첫 악장이 끝나고 연주자들이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시간이 멈추었을 때의 장면처럼 굳어있던 팔을 슬며시 내리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나브로 박수소리… 이런이런… 전 곡이 다 끝났을 때에 박수를 치는 건데, 누군가가 그걸 몰랐나부다. 그런데 제1 바이얼린을 연주하던 아저씨가 박수소리 나는 쪽을 보며 그 밝은 미소를 보낸다. ‘괜찮어… 넘 무안해 하지마…’라고 말하는 듯이… 그 미소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두 번째 곡은… 에공… 심지어 작곡자 이름마저 까먹었음… 현대음악가인 듯 했는데… 현대 음악의 정확한 경계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김박사와 나의 기준은 드뷔시이다. 즉, 드뷔시 이전의 음악은 듣기에 무리가 없지만, 드뷔시의 어떤 곡들과, 그 이후에 작곡된 곡들을 듣고 있으면 뭔가 불편하다. 물론 피아졸라나 사티에 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곡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맘씨좋아 보이는 네 아저씨들의 연주실력은 확연히 느껴졌다. 약한 부분에선 한없이 가늘고 부드럽게… 그렇지만 맥빠지지는 않게… 강한 부분에선 남성미 넘치는 파워를 실어서… 그러나 흥겨움을 잃지 않고…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제 1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가 보다 더 돋보였다. 어쩌면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역할 자체가 멜로디를 리드하기 보다는 제1 바이올린을 받쳐주는 것이거나, 첼로의 음역이 더 넓어서 연주가 두드러지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인터미션에 음반을 사기 위해 로비로 나가서, 나는 그 아저씨들의 여유만만 미소의 비밀을 알았다… 프라작의 연주음반은 무려 스무 개도 넘어서 거의 서른 개는 되는 듯… 이렇게 많이 녹음해서 팔았으니, 돈을 얼매나 많이 벌었을꼬? 그러니 맨날 기분이 아니 좋을까? ㅋㅋㅋ
지갑을 잊고온 김박사 때문에, 연주장에서 만난 보영의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음반 한 개를 샀다. 이렇게 음악회마다 와서 한 개씩 사는 음반이 인터넷에서 사는 것보다 비싸긴 해도,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울 수도 있고, 연주장면을 떠올리면서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마지막 곡은 스메타나. 나는 몰랐는데, 스메타나가 체코 사람이란다. 그리고 앵콜곡으로 드보르작의 ‘어쩌구 (?) 아메리칸’ 이라는 곡의 마지막 악장을 들었는데, 아주 귀에 익은 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