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일하게 된 김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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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대학에서의 3년 포스닥을 마치고, 김박사는 뉴욕 브룩헤븐에 있는 국립연구소에서 다시 2년간 포스닥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임시직이 아닌 좀 더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싶었으나, 미국내 경기침체와 외국인이라는 점때문에 대기업에 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이 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립연구소에서의 연구 경험이 이 다음에 직장을 구할 때 큰 경력으로 보탬이 될 것이고, 또 연구소를 그만 둘 무렵이면 영주권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리라 예상되므로 이번 일은 축하받을만한 것이지요.

한국인 미국인을 불문하고, 물리학 전공자든 아니든 간에, 모든 이들이 그렇게 ‘폼나는’ 직장에 다니게 된 것을 축하해주고 있습니다만, 김박사는 원래 겸손하기도 하고, 또 저와 당분간 별거생활을 해야하는 것 때문에 그다지 펄쩍 뛰며 기뻐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저역시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일단, 명성있는 곳에서 일하게 된 것, 그쪽 사람들이 김박사의 실력을 존중해 준다는 것, 그리고 덕분에 저도 난생처음 뉴욕 구경을 하게 된 것, 등등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죠. 하지만, 결혼하고나서 3년, 그전에 한동네 살면서 연애한 것 1년, 도합 4년 동안을 항상 붙어다니며 서로 의지했던 사람이, 이젠 자동차로 하루만에 갈 수 없을만큼 머나먼 곳으로 떠나간다는 건, 실감조차 나지 않는 큰 사건이죠. 부모형제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온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이자 동지이며 보호자였으니까요.

암튼, 복잡한 감정은 감정이고, 현실은 김박사가 8월 30일부터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연구소로 출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날짜가 잡히고부터는 “별거”를 위한 “재산분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유학생활을 했던 터라, 살림살이를 둘로 나누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전기밥솥 두 개, 오디오 두 개, 차 두 대, 등등…

김박사가 조지아에서 지낸 세월이 자그마치 10년. 그러다보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적지 않고, 그들과 송별회를 하자니, 지난 3주 동안 집에서 밥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점심과 저녁은 송별회에서 먹고, 밤으로는 짐을 싸고, 그 와중에도 짬나는대로 고별 테니스를 치러 나가는 김박사… 좌우지간 무진장 바빴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마침내, 어제 (28일 토요일) 김박사는 뉴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책과 옷을 비롯한 살림살이는 박스 50여 개에 담아서 트럭으로 부쳤고, 컴퓨터와 귀중품은 캠리에 싣고서 대장정을 떠난 것이지요. 커플 휴대폰을 미리 장만해 두었기에, 운전하며 올라가는 동안,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고, 저역시 사우스/노스 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메릴랜드 주로 들어갈 때마다 전화로 알려주는 덕분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일단 아홉 시간여를 달려서 메릴랜드에 어젯밤에 도착했고, 거기서 어릴적 친구인 안종국씨 댁에서 하룻밤 머물고, 오늘 낮에 다시 출발해서 저녁 무렵이면 뉴욕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뉴욕 소식 자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양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9-1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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