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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할로윈 단상을 읽고 저도 느낀 바 있어서, 글을 쓰려는데 거기 게시판은 관리자 외에는 글을 올릴 수가 없더군요. 나중에 그 쪽으로 옮기던가, 그냥 여기에 두던가, 별 상관은 없겠습니다.

미국 생활 5년 만에, 그것도 딱 한 주에서만 살아본 주제에 감히 미국 문화는 이렇다, 미국 사람들은 어떻다 하고 단정내리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나름대로 제 사고의 틀 안에서 미국을 이해하는 어떤 도식이 생겨났다고 보여집니다.
(어휴… 이젠 한국어로 문장을 만들어 긴 글을 쓰는 것이 버겁기까지 합니다. ‘~라고 보여집니다’ 라니… 완전히 번역문체네요. 근데 저도 이젠 어쩔 수가 없나봐요… 크크…)

남편은 자기도 썼듯이, 미국 문화의 천박함과 야만성을 아주 혐오합니다. 미식축구 시즌이 되면, 거기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열을 받고, 텔레비젼 뉴스에서 부시가 얼핏 보이기만 해도 얼른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버리곤 합니다. 아침 기상 시간에 맞추어 라디오 뉴스를 타이머로 맞추어 두곤 하는데, 보통은 뉴스가 시작되면 그걸 들으면서 잠시 뒤척이다가 일어나지만, ‘부시 대통령이 어쩌구’ 하는 뉴스가 나오면 정말이지 1초도 안되어서 얼른 라디오를 끄고 벌떡 일어나곤 한답니다. 관공서나 상점에서 느려터진 직원들을 만날 때, 신용카드나 은행, 보험 업무에서 실수가 발견될 때, 무례한 식당 종업원을 만났을 때, 간단한 수학 문제도 풀지 못하는 물리학과 대학원생 (물론 미국인)을 만났을 때 등등, 남편을 열받게 하는 일은 많습니다.

그 때마다, 가장 가까운 대화 상대이자 일평생 동지인 저에게 동의를 구하는 어조로 미국문화 내지는 미국 사람들을 비판하곤 하죠. 저역시 그 모든 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하는 편입니다만, 둘이서 입이 아프도록 비판해봤자, 부시가 우리 말을 듣고 반성할 리도 없고, 그 많은 미국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각성할 리도 없으니, 저는 그래도 좀 더 밝은 면을 보며 살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싫든 좋든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갈 우리 부부에게 격려가 되기도 하거니와, 제가 솔직하게 다행이라 느끼기도 하는 것은…

바로 미국 사람들의 단순함입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다행히 주변에 이 글을 독해할 미국인이 없으므로), 미국인들은 아주 많이 어리버리합니다. 무엇이든 매뉴얼 (설명서) 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저보다 조금 윗세대 선배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에프엠 대로 해라, 에프엠 이다, 등의 숙어가 있습니다. 어디서 읽었는데 그 에프엠 이라고 하는 것이 필드 매뉴얼 (field manual), 즉 군인 야전 훈련 수칙 이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한국전쟁때 미군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제가 경험한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이 바로 매뉴얼 문화입니다.
아주 단순한 조립제품에도 설명서가 들어있고, 그 설명서를 누구나 열심히 읽고 그대로 따릅니다. 조금 복잡한 가전제품이나 운동기구에는 비디오 테잎으로 제작한 설명서가 딸려옵니다. 학교 교과서에는 교사용 지침서가 있고, 교사들은 누구나 그 지침서를 펼쳐놓고 그대로 가르칩니다. 어제 본 티브이 광고에서는 컴퓨터 사용법 (윈도우 작동법과 같은 기본적인) 을 녹화한 비디오 테잎을 판다고 하더군요.

미국 요리책을 한 번 들여다 볼까요? 밀가루 몇 온스, 우유 몇 컵, 소금 몇 스푼… 등등의 재료를 순서에 맞게 넣고 섞어서 굽거나 끓인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 요리책도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생활에서 우리 어머님들은 그렇게 요리하시지 않지요. 된장찌개 끓일 때, 큰 멸치 다섯 마리로 우린 국물에 된장 1과 1/2 테이블 스푼을 넣고, 0.5 센티미터 두께로 썬 감자와 두부를 넣어서 15분 동안 끓이시지 않습니다. 어떤 날은 멸치로 국물을 내고, 어떤 날은 멸치 다시다를 쓰기도 합니다. 된장은 간을 봐가면서 어떤 날은 국물이 적어서 자작하게 끓이고 어떤 날은 슴슴한 국처럼 끓이기도 합니다. 감자와 두부 대신에 해물과 버섯을 넣기도 하죠.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엌에다 요리책 혹은 레서피 (책은 아니고 간단히 메모한 조리법) 를 펼쳐놓고 그 순서대로 그 재료대로 요리를 하죠.

고지식할 정도로 원래 정해진대로 따르는 미국사람들…
찬미주의자들은 그걸 ‘선진국의 높은 의식수준’ 이라며 높이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미국인들은 너무나 단순하고 겁이 많아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따르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어쨌건 간에, 외국인인 제게는 그들의 단순함과 매뉴얼에 충실함이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측이 가능하거든요. 요랬다 조랬다 하는 변화무쌍함이 드문 사회이기에, 그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쉽게 배울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외국어 배울 때, 동사의 어미 변화가 다양하고 묵음이 많은 프랑스어 보다는, 규칙적이고 철자 그대로 발음하는 독일어가 더 쉽다고 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단순함과 지나친 충실함 때문에, 저 나쁜 부시가 대통령이 되어버렸다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기도 합니다만… 쩝…
* 양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2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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