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한 달 동안, 교수채용 공고를 검색하고, 내 연구 분야와 비슷한 사람을 원하는 학교를 고르고, 지원서를 머리에 쥐나도록 쓰고 고치고,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부탁드리고, 추천서 쓰기에 좋도록 내 이력서와 관련 자료들을 다 챙겨드리고, 다 쓰셨는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예의바르게 닥달(!)도 하고, 레이블에 주소 인쇄해서 마침내 발송 완료…
그리고 11월 말인 지금 또 열 한 군데 학교를 찾아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이미 써둔 지원서를 출력만 하면 되고, 추천서 부탁하고 받는 것도 요령이 붙었고, 우편봉투에 체계적으로 정리해 넣는 것도 별로 힘든 일이 아닙니다. 경험이 가장 큰 스승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오늘 하루 내내 빗속을 뚫고 추천서를 수거해오고, 학과 사무실에서 꿍쳐온 멋진 편지지 (학과 이름과 학교 마크가 인쇄된) 에 지원서를 인쇄해서 다른 각종 서류들과 함께 봉투에 넣었습니다. 제 강의 경력과 연구 경력, 퍼블리쉬 경력 등이 소상히 적힌 이력서, 가르쳤던 과목의 강의계획안, 강의평가내용, 학회지에 실렸던 논문, 추천서… 등등이 지원서 이외에 봉투에 들어갈 서류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적표만 우송받아서 넣으면 우체국에 몇 십 달러를 지불하고 보내는 것으로 11월의 2차 지원도 마무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흐뭇했습니다. 이젠 교수 지원 하는 일 정도는 더이상 힘겹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도착한 이메일을 열어보니…
지난 달에 지원한 학교 중 한 군데에서 전화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메일을 받는 사람이 저혼자가 아니라, 그 학교 교수들 네 분이 더 계신 것과, 인터뷰할 날짜와 시간을 명기한 것으로 보아, 교수채용위원회 멤버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스피커 폰으로 저와 인터뷰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오직 언어로만 나를 나타내고, 좋은 인상과 유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니… 손짓과 표정은 아무 소용없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눈마주침이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떤 질문을 받게 될지… 어떤 식의 대답이 좋은 것일지… 긴장하면 모국어도 더듬거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영어가 제대로 나와줄지…
남편은, 그래도 인터뷰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하냐고 격려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많이 두렵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이 또 제 앞에 하나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학교 스포츠센터 조깅트랙을 한 시간 반 동안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파도처럼 끊임없이 내 앞에 새로운 일들이 몰려오는 것이 축복인 것 같습니다. 고여있는 물은 썪지만, 흘러가는 물은 절대로 썪지 않을 뿐 아니라, 큰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면서 자정작용까지 하게 된다지요. 저를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게 하고, 도전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 분이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운명이든, 그 누구이든 간에 감사드립니다.
혼자 이력서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가소로와 보일지 몰라도) ‘참 일도 많이도 했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회 발표를 난생 처음 하던 날… 손에 땀이 나서 바지춤에 문지르고, 두 시간 동안 발표할 내용을 전부 글로 써서 몇 번씩이나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강의를 하지 않으면 더이상 조교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학과 방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강의를 하던 첫 학기… 우리 부모님이 아주 부자였다면 그 고생을 하는 대신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를 하며 손을 벌렸겠지요…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열 시간은 읽고, 다섯 시간은 정리하고 그러느라 정작 제 공부 할 시간은 늘 부족했으니까요.
돌이켜보니 그 모든 일의 처음은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감당해내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 다음 번에는 훨씬 수월했고, 그 경험들이 모여서 여덟 페이지나 되는 이력서를 만들어냈습니다. 언젠가 삼 십 년 이상 연구하고 가르쳐오신 노교수님의 이력서를 보았는데 거의 책 한 권 두께의 분량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자면 앞으로도 수많은 ‘처음의 억장 무너짐’ 을 겪어야겠지요… 감사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제게 격려를 보내주시는 여러분께도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