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모범 임산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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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한 이후 각종 포탈 싸이트의 임신과 출산 관련 정보 게시판을 자주 들러서 읽고 있다. 지금 태아의 평균 크기는 얼마만 한지, 산부인과에서 하는 검진의 종류와 목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기용품은 어떤 것이 필요한지, 등등 궁금하고 알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흘러 넘치는 정보는 양적으로 방대하지만, 질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잘못된 정보라 하더라도 여러 군데에서 보거나 들으면 그것이 사실인 줄 착각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업(task)은 대다수 인간들이 경험하지만, 기껏해야 일생에 한 두 번, 많아야 서너 번 겪는 일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가설도 많고 의견도 분분한 토론 거리가 되곤 한다. 거기에다 현대 의학의 기술과, 오랜 세월 전해오는 풍습이 우스꽝스럽게 뒤범벅되어, 정보를 구하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곤 한다.

나는 다행히도 전공이 유아교육이라 아동발달 분야의 공부를 남들보다 많이 한 데다 유치원 교사 경력도 5년이나 되어서, 올바른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소위 아동발달 “전문가”인 나자신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그릇된 정보에 대해 몇 마디 하려 한다.

모범 임산부가 되려면…

일단 먹는 것부터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커피는 장희빈의 사약 보다도 더 나쁜 음료이므로 절대 안된다. 심지어 커피맛 사탕이나 과자도 피해야 한다. 팥과 녹두, 율무는 몸을 차게 해서 유산을 일으키므로 먹어선 안되고, 인삼은 반대로 몸을 덥게 해서 태아에게 열을 전달하는데, 그러면 아이가 나중에 경기를 하게 되므로 먹으면 안된다.

더운 여름에 팥빙수 생각이 너무 간절해 한 그릇 먹었다든지,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율무차 한 잔이나 인삼맛 캔디 한 알은 임산부를 며칠 동안 죄책감과 공포에 시달리게 한다.

어디 그 뿐이랴. 음식을 데우는 전자렌지는 남편만이 작동할 수 있고, 심지어 부엌에서 렌지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출입조차 자제해야 하는 것을.

생강이 입덧을 가라앉혀 좋다고도 하고, 생강을 먹으면 태아에게 해롭다고도 하니, 먹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그것이 문제인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다음은 일상 생활

운전은 “절대” 어떠한 경우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사고의 위험도 있단다. 임신하지 않은 사람은 교통사고도 비껴 가나보다.

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도 남편이 혹은 누군가가 대신 끌어 주어야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면 안되는데, 그 무겁다는 기준은 전기 청소기를 “밀고” 다니는 것도 안되는 정도이다.

가벼운 운동은 좋지만, 임신 초기 3개월 까지는 절대 금물이다. 화장실 갈 때 말고는 누워있어야 유산을 방지한다고 한다. 참, 잠을 잘 때는 “왼쪽”으로 누워 자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나, 인터넷 게시판에 ‘자다 깨보니 오른쪽으로 (혹은 똑바로) 누워있었어요. 어쩌면 좋죠? 병원에 가야 할까요?’ 하는 질문은 심심찮게 올라온다.

애완동물이 있는 집에서 임산부를 초대하면 몰상식한 사람이 되고, 가까웠던 사람의 초상집도 임산부가 가면 안되는 곳이다. 전설의 고향 같은 티비 드라마를 보면 안되고, 뉴스나 신문에서 끔찍한 사건 사고를 전달할 때도 ‘임산부 주의’ 경고 자막을 내보내지 않아 불만이다.

입덧을 안하면 태아 발달이 비정상이라 그런가 걱정이고, 입덧이 심하면 괴로워 죽는다. 태동이 없으면 사산의 공포가, 태동이 심하면 아기의 불편함이 염려된다.

아는 게 병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모순되어 보이는 말이 있다. 요즘 내가 느낀 바로 해석하자면, “어설프게 주워듣고 아는 건 병이고, 제대로 알면 힘이 된다” 정도가 맞지 않나 싶다.

내맘대로 태교복음 2장 1절 말씀:
뭘 좀 제대로 알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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