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일년 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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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우리 엄마는1947년 돼지해 칠월 칠석날 저녁에 태어나셨고, 오는 2007년에 환갑을 맞이하시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근사한 음식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열기도 하고,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막 기나긴 공부를 마치고 겨우 자리잡기 시작한 나, 그리고 나만큼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맏사위, 사회적 경험으로나, 실제 나이로나, 아직 어린 동생들… 우리들은 그런 거창한 환갑 기념 행사를 치루어 낼 능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늘 해외에서 <생일없는 소년> 으로 지내시는 아버지의 환갑은 이미 민망하게 그냥 대충 넘어간 뒤인지라, 맏딸인 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드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처럼 해외 여행을 근사한 곳으로 모셔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으로 오셔서 내가 차린 생신상을 받으시라고 했다가, 지난 번 처럼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느라 고생하시는 건 아닐까?

가진 건 없어도 안목은 높으신 엄마 마음에 들만한 선물은 뭐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새삼 가벼운 내 주머니가 한스럽고, 이런 못난 딸에게 그저 무엇 하나라도 챙겨주시려고만 하는 엄마에게 죄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천하의 울랄라 공주가, 이 정도 고민에 무릎을 꿇지 않는 법이다.

그래, 돈이 없어도 축하하는 마음만 충분히 전달되면 되지. 그러면 그 마음을 어떻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그리하여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 엄마 환갑 기념 프로젝트>

지금부터 일 년 동안, 육십 개의 선물을 준비하고, 하나 하나에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기로 한다. 내 형편상 크고 좋은 선물은 못하더라도, 작은 것일망정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하나씩 장만할 때마다 편지를 써서, 선물은 큰 상자에 담고, 편지는 제본해서 드리면,  우리 엄마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씨-레이션 박스같아 좋고, 두고두고 내 마음을 읽으실 수 있을테니 뜻깊은 선물이 되리라.

남편에게도 내 생각을 설명하고,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육십 개 선물 중에서 절반 정도는 남편이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우실 때에 그러셨던 것처럼, 돈이 모자라면 그만큼 사랑으로 더 채울 수 있고, 부유하지 않아서 더욱 마음깊은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오늘부터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2006년 7월 20일
엄마의 쉰 아홉번 째 생신 카드를 막 쓰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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