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을 전공해서인지, 아이 잘 키우는 법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 여기서 아이 잘 키우는 법의 대다수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말한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놀라운 교육열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미국인 부모들도 심심찮게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미국 티브이에서 광고하는 Your Baby Can Read 가 정말로 효과가 있느냐, 아니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과외로 Kumon (한국에서 구몬 수학으로 유명한 바로 그 구몬이다) 학습지를 하는데 그걸 신청해볼까 한다든지, 등의 질문을 미국인 친구로부터 종종 받는다. 심지어 며칠 전에 만났던 가족은 이제 만 여섯 살이 되는 아들에게 물리학 이론을 쉽게 설명해서 가르쳐주는 비디오나 시청각 자료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우리 아이 공부 잘 하게 만드는 법 보다도 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바로, “댁의 아이가 자라서 무슨 전공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하는 것이다.
내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이십 년도 더 지난 이후에 내 아들 코난군의 취향과 적성이 어떠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가 자라서 꼭 가졌으면 하는 특정직업에 대한 바램이 전혀 없다.
나는 내 아이가 세상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그저 행복한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라고 말하면 아직 뭘 잘 모르는 새내기 부모 취급을 받거나, 아니면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음흉한 사람으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다.
사람의 재능을 수치화해서 백점부터 빵점까지 한 줄로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 이 세상 사람들을 줄을 한 번 세워보자.
그 줄 맨 앞에 서있는 사람은 말하자면 초일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일 것이다. 과학고다 외국어고다 하는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나 하버드 법대에 수석입학 수석졸업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병원의 심장전문의가 되어있거나 연봉을 백만 달러 이상 받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 능력의 댓가로 바다가 보이는 저택에 살면서 벤틀리 정도 되는 차를 타고 명품 옷과 신과 가방으로 차려입었을 것이다. 그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오늘의 트위터를 달구고, 그가 즐겨 가는 곳이 전세계 블로거들에게 뉴스처럼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초일류 엘리트의 삶이 반드시 행복하기만 할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재벌가의 아들 딸이 자살을 하거나 유력한 사회 저명인사가 가정불화나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대학 동기 중에 어머님이 개인병원을 운영하시는 친구가 있었다. 그룹과제 때문에 그 친구네 집 – 병원에 딸려있는 – 에서 밤을 새워 과제를 준비하고 다음날 아침을 그 집에서 얻어먹게 되었다. 일찌감치 외국 문화를 체험한 집이라 그랬는지 아침식사는 국과 밥 대신에 토스트와 베이컨 등의 양식이었는데, 친구의 어머님이 빵 한조각을 입에 넣고 삼키기도 전에 간호사가 달려와서 응급환자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친구의 어머님은 우리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할 때까지 응급환자 – 아마도 열상 환자의 상처를 봉합하는 처치였던 것 같다 – 를 돌보시느라 식사를 중단하신 채 분주하셨다. 그 때 덩그렇게 혼자 남은 어머님의 접시에 차갑게 식어서 굳어가던 베이컨의 잔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의사가 되기까지 십 여 년은 족히 되는 기간동안 어려운 공부를 해야하고, 의사가 된 다음에도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통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무거울 것이다. 가족들과 단란한 식사 한 끼 함께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걸맞는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의사 개인의 인생을 본다면 마냥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내 남편의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판사나 변호사 등의 법조계 인사가 많다. 그런데, 서울대 법대 졸업에 사법고시 출신이라는, 누가 뭐래도 일류 엘리트 그룹 아저씨들의 삶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월급을 쪼개서 생활하고, 곧 대학에 들어갈 아이들 학비마련에 고심하고, 부인을 도와서 집안일을 거들기도 하고… 그들이 직장에서 하는 일은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흘륭한 일이겠지만, 직장 밖에서의 모습은 그냥 보통의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업무의 어려움과 그 자격증을 따기까지의 공부량에 비하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비리나 뇌물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을 받으려하는 일부 불량 법조인도 있겠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존경하는 판검사 변호사님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자라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도 좋고, 선생님이나 농부가 되어도 좋고, 자동차 정비공이나 목수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아이의 적성에 맞고 거기서 보람을 느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몸이 자라서 무엇이 될꼬하니 (원문은 ‘이 몸이 죽어가서’ 이다)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성삼문-
2011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