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개월이 되었다.
코난군을 임신하고 낳아서 4년째 키우고 있는데다, 전공때문에 이것저것 육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어디 게시판에 임신에 관한 글이 올라오면 자연스럽게 열어서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코난군 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임신한 것이 무슨 벼슬이나 중병에 걸린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임신도 하기 전부터 <산전검사> 라는 명목으로 산부인과에 가서 엄한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각종 검사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반적인” 임신이 시작되는가보다.
인터넷 어깨너머로 대략 배워보니, 그 산전검사 라는 것은 고작해야 생리주기가 규칙적인가, 자궁과 기타 임신에 관련된 장기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풍진 등 임신중에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는 병에 대한 항체가 있는지를 보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원숭이 쑈가 끝나면 나오는 약 선전 처럼, 산전검사를 뒤따르는 철분제와 엽산제 처방, 간염이나 풍진 예방접종, 그리고 부록으로 자궁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한약이 정해진 수순이다.
그러다가 임신인 것을 알게되면 그 때부터는 돈벌이에 눈먼 사람들의 쌩쑈와 거기에 놀아나는 한심한 사람들이 아주 박자가 잘 맞게 왈츠를 춘다.
엽산 (폴릭 에시드 라고 하며, 시금치나 케일 등 진녹색 잎채소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성분) 이 신경관 결손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스파이나 비피다 라고 하는 태아 신경관 결손 기형은 1000명 당 한 명 꼴로 발생하는데, 신경관은 임신 초기 – 매우 초기 – 에 발생 형성되는 것이고 엽산은 그 이전에, 즉 임신전에 충분한 섭취가 이루어져야한다. 그런데 임신 5-6개월 된 임산부가 “어젯밤에 깜빡 잊고 엽산제를 안먹고 그냥 잤어요. 우리 아기 기형아 되면 어쩌죠?” 하고 글을 올리고, 그 댓글로 “남편이 꼬박꼬박 챙겨줬어야지… 너무하네요. 오늘 아침 일찍 한 알 먹고 저녁에 한 알 더 드세요.” 하는 조언이 달리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다.
어디 그뿐이랴.
필리핀의 미혼모는 아이를 유산하기 위해 파인애플 심지를 먹는다더라, 그러니까 임산부가 파인애플을 먹으면 안된다, 율무나 팥은 몸을 차게 하므로 태아에게 해롭다, 생선을 먹으면 수은중독이 되니 먹지 마라, 인공조미료가 들어간 라면같은 인스탄트 음식을 먹으면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을 가지고 태어난다, 커피를 마시면 안되는 것은 당연하고 커피우유도 안된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음료 중에 무슨무슨 라떼는 커피가 안들어가니까 마셔도 된다, 무거운 것은 책가방도 들면 안되고, 버스나 택시는 좌우로 흔들림이 심해서 태아에게 해로우니 상하 진동만 있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임산부가 손수운전은 커녕, 안전벨트도 매지 말아라…
이쯤되면 아는 게 병이다.
조심해서 나쁠것은 없지 않느냐고?
알맞게 조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알맞게” 조심하는 정도는 평소에 건강을 챙기는 수준이면 족하다. 즉, 임신여부에 관계없이 술이나 담배는 건강을 해치는 것이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팥이건 율무건 그 어떤 음식이라도 하루 세 끼니 몇 달 내내 그것만 먹으면 좋을 리가 없으니 골고루 먹어야 한다. 산책이나 다른 가벼운 운동은 몸에 좋지만, 과하게 하거나 운동 중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남녀노소 임신여부를 불문하고 당연지사이다.
반면, 지나치게 조심하면 나쁜점이 아주 많다.
조심을 과하게 하면 일단 신경이 쇠약해진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에도 ‘이것 때문에 우리 아이가 어디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고 하늘이 무너지도록 걱정을 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뜻이다. 게다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처럼, 그런 사소한 일상생활에서 온갖 조심을 다 하다가도, 방송에서 혹은 누가 임산부한테 뭐가 좋다더라 하는 말에 혹해서 몸에 치명적으로 해로운 오존세척기를 수십 만 원에 구매하고, 가습기를 소독하려다 폐질환에 걸리고, 대장균이 득실거리는 정수기 물을 마시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사소한 걱정에 소모하는 정신력을 진정으로 중요한 곳에 보태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이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키울 것인가, 아빠와 엄마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고 합의해서 올바른 양육을 할 것인가, 실제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데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으며, 그 앞에서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미리미리 다짐해두는 것이 그깟 음식물 걱정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수십 만원, 혹은 백만 원이 넘어가는 태교동화 전집과 씨디를 판매하고, 데미무어가 유행시킨 임신기념 사진촬영 팩키지라든지, 태아보험 이라고 하는 보험상품, 태교를 위한 해외여행상품, 이런 것들이 활개를 치고 유행하는 것이 나는 매우 심하게 못마땅하다.
2011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