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3> 대면대면한 듯 보이는 우리 부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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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임신성 당뇨 검사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다녀왔다. 어젯밤부터 굶은 상태로 한 시간 간격으로 피를 서너 번 뽑아야 하는 검사라서 아침 7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집에서 병원까지는 운전해서 30분 거리 이니까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다 해서 집을 나섰다.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 코난군은 오늘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병원 검사실에 일등으로 도착해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나만큼 배가 부른 임산부 한 명이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코난군을 임신했을 때는 두어번 정도는 나도 남편과 함께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었던 것 같다. 그런데 병원엘 함께 가면 남편은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소중한 하루 시간을 뺏기기만 하고, 의사가 뭐라뭐라 산부인과 관련 용어를 써서 설명을 해주면 오히려 아동발달 강의를 하는 내가 더 잘 알아듣고 남편에게 설명을 해주곤 하는 기이한 현상만 생길 뿐이었다 (미국 생활 20년이 다 되어가는 남편은, 원래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번에는 임신 7개월차, 열 번 정도 되는 정기검진과 각종 검사를 받기위해 병원에 드나드는 길을 나혼자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피를 한 번 뽑고 다음 채혈을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 준비해간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내일 치를 학기말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일을 했다. 작년에 출제했던 문제를 조금씩만 고쳐서 편집하면 되는 단순한 일인데, 이걸 연구실에 앉아서 하자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능률이 오르지 않았겠지만, 병원 대기실에서 죽치고 앉아서 하기에는 안성마춤인 작업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줄 모르도록 재미나게 일을 하고있노라니, 다리가 아파서 수술을 받으려 하는데 미리 피검사를 받으러 오신 할아버지, 유방암 검사를 받으러 오신 할머니,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딸을 데리고 온 엄마,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실에 들락날락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하이” “하우 아 유?” “내가 아임 파인이면 여기 왜 왔겠니?” 이런 농담까지 하면서 참으로 상냥들 하다.

한 할머니가 아까부터 나처럼 다음 피뽑기를 기다리던 부부에게 “산달이 언제유?” 하고 묻는다. “2월이요” 하니까 “첫 애긴가부네?” 하고 계속 말을 붙인다. 일에 집중하는 척 하면서 대화를 엿들어보니, 그 임산부도 나랑 비슷한 시기에 둘째 아이를 낳게 되나보다. 오늘 검사도 딱히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나처럼 임신성 당뇨여부 검사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그러면 첫째 아이는 누구에게 맡기고 새벽같이 부부가 함께 병원엘 왔을까? 초등학생 연령의 어린이라도 집에 혼자 두는 것은 위험한 일로 간주하고 아동보호국에서 감독하는 미국에서 큰 애를 혼자 두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 이른 시간에 문을 연 학교나 어린이집이 있지도 않을테니, 아마도 가족이나 친지에게 맡기고 왔나보다.

마누라가 피를 뽑으러 들어간 사이에 아저씨는 빈둥빈둥 잡지꽂이를 뒤지거나 티브이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곤 한다. 조금 후에 마누라가 나오니 둘이서 손을 꼭 붙잡고 뽀뽀를 쪽쪽 해대면서 지루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다. 두 사람의 차림새로 보아 어디 정시 출퇴근 하는 직업을 가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농사를 짓거나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듯, 심하게 자유로운 – 혹은 남루한 – 복장이다. 두 부부가 심심함을 타파하기 위해 이번에는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탐색하는데 그 눈초리가 나한테도 꽂힌다. 가만히 살펴보니 저 동양인 여자도 임산부이고 당뇨검사를 받으러 왔나본데, 남편이나 다른 가족은 안보이고 혼자 무얼 저렇게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나…? 하고 궁금해 하면서 관찰을 하는가보다.

나는 다시 한 번 오늘 혼자 병원에 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따라왔더라면 나는 내 일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고, 남편은 오전 시간을 다 허비했을 것이고, 코난군은 남의 손에 맡겨졌다가 어린이집엘 가야 했을 것이다. 남편이 옆에 있다고 해서 피를 덜뽑을 것도 아니고, 혈관을 찌르는 바늘이 덜 아픈 것도 아닌데 뭐하러 굳이 따라와서 대기실 복잡하게 만들고 둘이 함께 지루해 해야하는가 말이다.

그러고보면 우리 부부는 남이 보기에 참으로 대면대면 하는 사이일 것이다. 마누라가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노산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단 한 번도 병원에 따라가주기는 커녕 한 시간씩 걸리는 운전을 마누라가 혼자 해서 검사를 받으러 다니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이랴. 임신한 배를 쓰다듬으면서 아기에게 해준다는 “태담” 같은 낯뜨거운 짓은 전에도, 앞으로도, 전혀 해볼 생각이 없다. “사랑” 이니, “꼬물이” 라느니, 하는 강아지 이름같은 “태명” 을 지어서 부르는 일도 참으로 민망해서 못할 짓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누가 말했던가.

내가 미처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세 개나 되는 화장실이 청소가 되어있고, 갈아입을 속옷이 다해갈 즈음이면 보송보송하게 건조한 빨래 바구니가 안방에 도착하고, 자고 일어나보면 어젯밤에 미처 치우지 못한 설거지가 깨끗하게 되어있고, 늦잠이나 낮잠을 자는 동안에 절대로 깨우지 않는 나의 남편이 병원에 하릴없이 따라와서 뽀뽀나 쭉쭉 해대는 남의 집 아저씨보다 백 배 천 배 사랑스럽다. 좀스럽게 마누라한테 사탕발림이나 하는 남자보다는, 묵묵히 그림자처럼 염려해주고 배려해주는 남자가 훨씬 더 아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2011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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