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열풍을 만들어낸 김어준이 쓴 책, 닥치고 정치 를 읽었다. 간간이 한겨레 신문이나 딴지일보 등의 매체에서 그가 쓴 글을 읽으면서 깊은 사고와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한 적이 많았으나, 이번에 읽은 이 책은 그 무엇보다도 내가 궁금해하고 답답하게 여겼던 문제들을 꼭 집어주는 훌륭한 책이다.
총 6개 챕터는 각각
1. 좌, 우. 무서우니까
2. 불법은 성실하다
3. 재벌 자본주의 아니다
4. 정치는 연애다
5. 공주와 동물원
6. 가능, 하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 4장, 정치는 연애다 챕터가 가장 내게 – 그리고 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 큰 가르침을 주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청렴하고 무결한 도덕성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을 하고 보다 나은 이론으로 무장하기를 꺼리지 않지만, 그것을 일반 대중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데에는 영 잼병이라, 번번이 각종 선거 –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등등 – 에서 참패하고 권력을 잡지 못하기에,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데에 전혀 그 힘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1991학년도에 대학에 입학을 했고, 3학년이던 1993년에는 과학생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어서 학생회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과학생회장이던 최모양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이나, 민주화 운동, 의식화 교육, 각종 교내외 집회와 시위 같은 것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매월 정기적으로 열리는 사범대 학생회에 참석하는 것이 의무적인 일 중에 하나였는데, 담배연기 매캐한 사대학회실에서 오가는 진지하고 치열한 대화에 전혀 끼지 못하고 그저 눈치만 살피다가, 다음번 회의 전까지 해야할 행동지침을 받아적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미군사병에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해된 윤금이 사건에 대한 대자보를 만든다든지, 등록금 인상 반대 서명을 받는다든지, 하는 일은 왜 해야하고, 어떻게 해야하며, 과 내의 학우들로부터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민중이 으뜸되는 참세상 만들기 라든지, 민족통일, 노동해방, 그런 말은 일단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나자신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대학회장 선배나 총학생회 지도부의 무진장 어렵고 긴 연설 끝에는 오는 주말에 어디 대학에서 하는 집회에 참석하라는 지시 혹은 권유가 이어지는데, 몇 번 참석해본 집회장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중가요를 여러 곡 부르고, 참석한 학교별로 구호를 외치고, 초대 인사 – 백기완 선생이라든지, 문익환 목사라든지 – 의 연설을 듣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그 노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연설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가 참 어려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그 의미를 잘 모를 뿐더러, PD 계열과 NL 계열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서로 다른 정당인 줄도 몰랐고, 유시민이 국민참여당이라는 신당을 만들고 이끌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명색이 대학교 다니면서 학생회 일도 좀 해봤고, 그보다 조금 더 심한 운동권이었던 – 하기야 386 세대에 민주화 운동, 즉 데모 몇 번씩 안해본 사람은 없다고도 한다 – 남편과 10년 넘게 살면서 의식화 교육도 늘 받고 있는 내가 이렇게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정치에 관해 잘 모른다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도 못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중은 정치를 머리로 이해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 김어준의 해석이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중 앞에 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연설하는 저 사람이 뭔 소리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간간이 귀에 들어오는 키워드를 내 생각으로 대충 끼워맞추는 것이 이해의 전부이다. 그 다음으로는 감성이 작용한다. 저 사람은 왠지 청렴할 것 같고, 좋은 사람일 것 같으니 표를 주자. 저 사람은 왠지 믿음이 안가니 찍어주지 말자. 누가 그러는데 저 사람은 겉보기에는 별로지만 사실은 참 좋은 사람이라더라. 그러니 한 표 찍어주자.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그 놈이 그 놈인데 뭐하러 귀찮게 투표를 하나. 정치하는 것들은 다 지 잇속이나 권력이나 챙기는 놈들이지. 하는 정치에 대한 무조건적 환멸을 자랑스레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메가 (라 쓰고 나쁜 놈이라 읽는다) 덕분에 그나마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투표 한 번 잘못했다가 이렇게 큰 화를 입을 수도 있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고, 그 배움에 큰 참고서적이 된 것이 김어준 일당의 나는 꼼수다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큰 교훈을 헛되이 떠내려보내지 않고, 그 힘을 하나로 몰아서 정권을 바꾸려면 이론과 청렴 강박증에 걸린 진보진영이 각성하고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2011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