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정기검진을 갔을 때, 의사가 유도분만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유도분만이란, 자연적으로 진통과 자궁수축이 와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고, 양수를 임의로 터뜨린다든지, 자궁수축촉진제를 주사로 맞아서 아이가 빨리 태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전에 코난군을 낳을 때에 원래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양수가 터져서 감염의 위험이 있다며 분만촉진제를 수액과 함께 맞으면서 인위적으로 자궁수축을 유도해서 낳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코난군이 임신 37주라서 태어난 다음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거나, 특별한 주의를 따로 기울이지 않아도 될만큼 자란 상태였고, 내 몸 상태도 분만촉진제에 잘 반응해서 결국 두어시간 만에 순산을 했었다.
이번에는 노산에다 임신성당뇨 (이 두 가지 카테고리는 병원 검진때마다 지겹도록 의사가 상기시켜주고 있다) 때문에 출산예정일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임신 39주와 40주 사이에 날을 잡아서 미리 작정하고 유도분만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골반뼈가 이미 많이 벌어졌고, 자궁경부가 얇고 부드러워져서, 의사가 보기에 99.9 퍼센트 자연분만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 즉, 진통을 몇 시간씩 하며 고생하다가 결국엔 제왕절개를 하는 일이 절대 없을거란 뜻이다.
안그래도 일주일에 병원을 바꿔가며 세 번씩 다니자니 여간 신경쓰이고 바쁘지 않았는데, 하루라도 먼저 아이를 낳자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의사가 자기 스케줄을 확인하러 잠시 나간 사이에 코난아범과 통화를 하면서 다음 주 중에 무슨 요일이 가장 우리 일정에 편리할지를 의논했다. 월요일엔 저녁 강의가 있고, 화목요일엔 오후 강의가 있으니까… 하며 손가락을 꼽고 있는 나에 비해, 낑낑대며 팔자걸음을 걷고, 한밤중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등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온 코난아범은, 이런 저런 상황 따질 것없이, 그냥 하루라도 빨리 가능한 날에 아이를 낳자고 했다. 내가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어지간히 괴로웠나보다.
결국 2월 23일 목요일 아침일찍 병원에 입원해서 출산을 하기로 정해졌다. 가능하면 아침 일찍 시작해야 그 날 안에 출산이 끝나고, 의사의 회진과 겹치거나 야근까지 해야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고, 나와 아기도 지치지 않아 좋으니, 아침 6시까지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분만장이 있는 병원은 우리집에서 30분 거리에 있으니, 그 날 아침에 나혼자 일찍 일어나서 병원으로 운전해서 가고, 코난아범은 코난군의 아침 채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다음에 병원으로 따로 와야 한다. 차 두 대를 따로 가지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코난아범은 일단 온가족이 다함께 병원에 갔다가 나를 내려놓고 코난군을 다시 30분 되돌아 운전해와서 어린이집에 맡기고 또다시 병원으로 오겠다는 제안을 하는데… 그건 공연히 번거롭기만 할 것 같다. 게다가 코난군이 아침잠도 제대로 다 못자고 얼떨떨한 상태에서 엄마가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 남겨지는 것을 보고 – 게다가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코난아범도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 뻔하다 –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하루종일 불안해 할 것 같아서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섬세한 코난군의 성격을 고려하면 이웃사람이나 친구에게 코난군을 맡겨서 어린이집 등원을 부탁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래서 결론은, 자동차 두 대로 각자 병원으로 이동하고, 친하게 지내는 주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차 한 대는 코난아범이 나중에 집에 가져다놓기로 했다. 버스나 택시가 귀한 시골 동네에 살다보니, 가끔 이렇게 자동차를 누가 운전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사전에 계획하고 시뮬레이션을 해야하는 일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다음주의 강의 계획을 조정했다. 원래 계획했던 강의 순서를 이래저래 바꾸고 조정해서 이번 주 화요일에 내가 세 시간 연속으로 강의를 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목요일은 케티가 세 시간 강의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케티의 강의만 화목요일에 계속하고, 봄방학이 끝나면 내가 화목요일 이틀을 세시간 연강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보니, 빠지는 시간이 전혀 없이 두 과목의 강의가 채워질 것 같다. 아무리 두 사람 모두 더하거나 덜하는 경우없이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해도, 케티의 너그러운 이해와 적극적인 지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정 조정이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그 때 마다 케티의 대답은, “당연한 거야. 만일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똑같이 나를 도와줄거잖니? 무엇보다도 너와 아이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걱정하지말고 아이 잘 낳고 건강하게 회복해서 돌아와.” 하는 상냥한 말뿐이다.
유도분만 날짜가 잡혀서 앞으로의 각종 희의와 학과내 일에 당분간 빠지게 되어서 양해를 구한다는 이메일을 동료들에게 보냈더니, 여기저기서 출산을 미리 축하단다는 이메일 답장이 쇄도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인들의 문화는 남의 일에 돈안드는 예쁜 말 한 마디를 절대로 아끼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처음 보는 사이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웃으며 말을 건네고, 절대로 마음에 상처를 남기거나 들어서 기분나쁠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뒤돌아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든, 아니면 남몰래 뒷다마를 까든, 거기까지야 모르겠지만, 일단 면전에서는 웃으며 친절한 미국사람들의 문화가 예의바르다고 생각한다.
미국문화 덕분이든, 좋은 동료를 만난 내 행운이든, 아니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성실성과 신뢰감(후훗)의 산물이든 간에, 하여간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운을 빌어주니 기분이 좋다.
주말인 오늘은 새식구 맞을 준비로 차와 집을 청소했다. 아래층과 윗층 방마다 골고루 흩어져있는 코난군의 장난감을 모두 코난군 방으로 갖다넣느라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골반이 한층 더 뻐근한 것이, 이러다 목요일이 되기 전에 아이가 태어날 것만 같더니, 좀 쉬고난 후에는 또 멀쩡해졌다.
코난아범은 자동차 안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바닥 매트까지 세탁을 했다. 바깥부분도 세차를 하면 더욱 좋았겠지만, 다음날 눈이 올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참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집에 손님이 온다, 하면 열심히 집안팎을 청소하는 습성이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라기 보다는, 우리집에 오실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으로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며칠 묵어갈 손님이 아니라, 몇 십 년 함께 살 가족이 오는 경우이니, 더욱 정성껏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김수민 양의 생일은 과연 2월 23일이 될 것인가?
(내 생일이었던 2월 15일에 가진통이 와서, 엄마와 같은 날에 태어나려나 했지만, 요 녀석은 자기만의 생일을 원하나보다 🙂
기다려보자.
2012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