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경제교육: 돼지 저금통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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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과 재화, 올바른 소비생활… 이런 주제는 최소한 초등학교에 가서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많은 유치원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장난감 가게 바닥에 드러누워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경험을 한다. 혹은 기껏 원하는 장난감/먹을 것/등을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주었더니 본체만체 해서 난감했던 적도 많을 것이다. 유아기 아동에게 경제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코난군은 작년 제 생일 즈음부터 여기저기서 선물을 받을 일이 많아졌다. 생일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곧 태어날 동생때문에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끼게 될까봐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다른 주위 분들로부터 선물을 자주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둘리양이 태어나던 날에는 갓 태어난 동생으로부터 레고를 선물받기까지 했다. (코난군의 유치원 선생님이 권해준 방법인데, 새로 태어난 동생이 오빠를 만나서 주려고 선물을 준비했다고 해주면 동생에게 더욱 호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둘리양에게 탄생 축하 선물을 주는 사람들 중 반 수 이상이, 코난군에게도 선물을 주곤 해서, 그 결과 코난군의 방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나… 아흔 아홉 가진 사람이 하나 가진 사람보다 더 바란다는 옛말처럼, 장난감이 더 많이 생길수록 코난군에게 “필요한” 장난감은 더 늘어만 갔다. 스타워즈 레고를 받고 보니 다스베이더 액션 피겨가 필요하고, 강아지 인형을 갖고 놀다보니 고양이 인형도 있어야겠고, 커다란 스파이더맨을 갖고 놀다보면 작은 스파이더맨도 있어야 놀이가 더 재미있어지겠고… 하는 식이다.

그 때마다 코난군은 “코난군, 이거 ‘필요해’… 스토어에 가서 사자.” 하고 졸라대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종일 떼부리지 않고 말을 잘 들으면 사주겠다고 정해서 약속을 잘 지키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제 방 장난감을 잘 정리해서 새로산 장난감을 둘 자리를 마련하면 사주겠다고 해서 방 정리를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바로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아서 장난감을 사는 것이었다.

새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엄마 아빠가 돈이 없다는 대답을 하면 “여기 돈 있잖아” 하면서 집안에 굴러다니던 동전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는 코난군에게, 그 돈으로는 네가 원하는 장난감을 살 수 없다고 이야기해주어도 먹혀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거기서 파는 장난감을 사자고 할 때도, 푸드를 살 돈은 있지만 장난감을 살 돈은 없다고 말해봤자, 엄마 아빠가 장난감을 사주기 싫어서 변명하는 것이라고 믿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금통 한 개를 정해놓고, 여기에 돈을 이만큼 모으면 그 돈을 가지고 장난감을 사러 가자 하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아빠나 엄마가 동전이 생길 때마다 “오늘 아빠/엄마가 학교에 가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왔다” 라고 하면서 코난군에게 주어서 직접 저금통에 넣도록 했다.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는데, 아빠 엄마가 집에서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고 있으면 함께 놀아달라고 조르던 녀석이, 이렇게 일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더니, 절대 방해하지 않고 혼자서 잘 놀게 되었고, 심지어 엄마 아빠가 주말에 쉬고 있으면 ‘오늘도 학교에 가서 돈 벌어오라’고 까지 말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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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간 동안 돈을 모으게 하면 지쳐서 포기하게 될까봐, 저 분홍 돼지의 목선까지만 돈이 모이면 장난감을 사러 가자고 정했었다. 투명한 저금통이라서 돈이 얼마만큼 모였는지 확인 가능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버지니아주 교육과정상 (미국은 각 주마다 교육과정을 따로 정하고 공립학교에서 그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킨더학년 에서는 각기 다른 동전의 모양과 이름을 배우고, 1학년이 되면 각각의 동전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코난군은 돼지저금통 프로젝트를 통해서 수학 선행학습을 한 셈이다.

동전더미를 앞에 두고, 모양과 크기를 구별해서 네 개의 무더기로 나누게 했다. 25센트 가치가 있는 은색 가장 큰 싸이즈의 동전인 쿼터, 10센트의 가치이지만 가장 작은 크기의 은색 동전인 다임, 5센트짜리 은색 그러나 다임보다는 큰 크기인 니클, 그리고 갈색의 가장 작은 크기 1센트 짜리 동전인 페니, 이렇게 네 가지의 동전이 미국에서는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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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 니클, 다임은 엄마가 열 개씩 쌓고, 코난군은 쿼터를 네 개씩 쌓아서 일 달러를 만들도록 했다. 코난군에게 열 개까지 세는 것은 아직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개를 세는 것은 매우 잘 한다. 엄지 손가락은 빼고 나머지 손가락이 네 개인 것을 알기 때문에, 저렇게 한 개를 셀 때마다 손가락 한 개씩을 접어나간다.

그렇게 해서 세어보니 모인 돈은 20달러 53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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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가 다녀갔다는 졸업식이 끝난 다음날의 대학촌은 매우 조용하고 한산했다. 그래서 마트도 비교적 한산했기에 저금통에서 꺼낸 돈을 들고 장난감을 사러 갔다. 아이에게 경제교육을 시키는 것이 목적인 쇼핑이라, 다른 것은 사지 않고 오로지 코난군이 원하는 장난감만 골라서 사기로 했다. 장난감을 고를 때, 코난군이 가진 돈의 금액보다 비싼 것을 고르면, 그것은 살 수 없는 값이라고만 이야기해주고, 다른 것은 모두 코난군이 원하는 대로 고르게 해주었다. 이미 집에 여러 개 있는 스파이더맨 장난감을, 단지 싸이즈가 다르고, 거미줄의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9달러 짜리 스파이더맨을 골랐고, 지난 주말에 보았던 어벤져 영화의 영향으로 캡틴 아메리카 의 방패를 골랐다. 이것도 허접해 보이는 것이 9달러가 넘었다. 하지만, 코난군이 모은 돈으로 코난군이 가지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이 가장 교육적 효과가 높을 것이기 때문에 말리지 않았다.

계산을 하기에 앞서 캐쉬어 아줌마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오늘 아이에게 돈을 사용해서 물건 사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동전을 많이 들고왔고, 그래서 돈을 세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더니 마음씨 착해보이는 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얼마든지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사실은, 코난아범이 미리 캐쉬어의 관상을 보고 제일 마음씨 좋아보이는 사람으로 골라서 줄을 선 것이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유아교육 마누라와 십 년 넘게 살더니, 어떨 땐 나보다도 더 유아교육 전문가이다.) 다행히도 우리 뒤에 줄을 선 손님도 없었다. 역시 한산할 때 오길 잘 했다.

계산대에 자기가 고른 장난감을 직접 올려놓고, 미리 세어서 종류별로 분류해서 가지고온 돈통도 직접 건내주었다. 유아기 아동의 인지발달의 특성 중에 하나가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완전집중하기’ 이기 때문에, 돈을 내고 물건을 받아든 다음부터 코난군의 눈과 귀에는 오로지 새로산 장난감 밖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고 또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기가 가진 돈의 액수만큼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이제부터 우리는 텅 빈 돼지저금통을 또다시 채워나갈 것이다. 아이가 더 자라면, 아빠 엄마가 벌어온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직접 번 돈을 모으도록 도울 것이다. 간단하게는 집안일 잔심부름에서부터, 크게는 이웃집 잔디깎기 아르바이트, 등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땀흘려 돈버는 보람을 느끼고,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2012년 5월 14일

에필로그 혹은 사족:

우리집 앞 집에는 네이튼, 에밀리, 크리스토퍼 삼남매와 부모가 사는데, 그 삼남매가 우리 동네 잔디깍기 아르바이트 나와바리(?)를 꽉 잡고 있다. 이미 대학을 간 형과 누나의 뒤를 이어서 크리스토퍼가 동네 잔디를 깎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그간 모은 돈으로 멋진 픽업트럭을 샀다고 한다. 비록 마일리지 높은 중고차이지만, 얼마나 소중하게 씻고 닦았는지 광택이 번쩍번쩍 눈이 부실 정도이다. 

돈이 많아서 고등학생 아들에게 벤츠나 렉서스를 사주는 부모도 있다고 하지만, 저렇게 스스로 번 돈으로 중고차를 사서 몰고 다니도록 가르친 부모가 백 배는 더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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