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영어 1: 창 밖이 뿌옇게 보이는 건 안경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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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은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단어를 혼동해서 쓰는 일이 있다. 그런데 그 실수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의 생각하는 방식이 보여서 무척 재미있다.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모아보려 한다.

오늘 아침에 차를 타고 어린이집으로 가고 있는데, 초여름으로 다가서는 날씨와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우리 마을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안개가 짙게 끼어있었다.

그런데 코난군은 처음에 그걸 바깥에 끼인 안개인 줄 모르고, 차창에 무언가 묻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엄마, 밖에가 잘 안보여. 뭐가 묻어서.”

라고 하는 코난군에게 내가 설명해 주었다.

“그건 뭐가 묻은 게 아니고, 바깥에 안개, 포그(fog)가 끼어서 그래.”

그리고 ‘안개’ 와 ‘fog’ 라는 단어를 좀 더 이해시키고자 부연설명을 열심히 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안개가 많이 끼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멀리 있는 것이 잘 안보여. 오늘도 그런 날씨네? 저기 멀리 있는 집이 잘 안보이지? 안개가 끼어서 그래. 포그가 많은 날은 운전할 때 조심해야 돼. 블라블라블라…”

나의 설명에 “응 맞어” 하고 맞장구를 쳐주던 코난군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It is all because of glasses!”

나는 코난군이 여전히 안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창이 뿌옇게 오염되어서 바깥이 잘 안보인다고 생각하는 줄 알고, “아니야, 안개 때문이야” 하고 다시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코난군 하는 말,

“안경 때문이야. glasses!”

아하! 내가 ‘안개’ 라고 하는 말을 ‘안경’ 이라는 말로 들은 것이었다.

아동인지발달 연구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피아제 에 의하면, 어린이가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에는,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 중에 가장 유사한 컨셉 혹은 카테고리를 사용한다고 한다. (전문 용어로 스키마, scheme 라고 한다)

그러니까, 코난군은 ‘안개’ 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기가 이미 아는 한국어 단어 중에서 발음이 비슷하고 무언가 의미도 통할 것 같은 말, ‘안경’ 을 갖다붙인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스키마를 이용해서 (가끔은 잘못되게) 받아들인 개념은, 반복해서 사용하다보면 저절로 수정되고 세분화되어서 마침내 올바른 개념으로 축적된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가 틀린 단어를 사용하거나, 무언가를 엉터리로 이해하고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거나 즉석에서 고쳐주려 하지 말고, 반복해서 같은 단어/개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내일 아침, 모레 아침, 이 여름이 다 갈 때 까지 어린이집 등원 길에 안개가 끼는 날이면 코난군과 나는 안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아침 안개 이야기만 억지로 하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그냥 간단하게 “오늘도 안개가 많이 끼었네” 한 마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아이가 이끄는대로, 혹은 내가 해주고픈 이야기 주제를 따라서 아이와 함께 ‘대화’ 를 나눌 것이다.

오늘 친구 누구는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왔을까? 오늘 바깥놀이 시간에는 무슨 놀이를 하고 놀까? 놀이가 끝나고 정리정돈 시간에 딴짓 하지 말고 열심히 치워야 한다. 써클 타임에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오늘 저녁에는 아빠가 데리러 갈 것이다… 등등…

아침마다 차 안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2012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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