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분업과 협업 어느 쪽이 바람직한 가정경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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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사회 시간에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세대이다) 분업과 협업에 관해서 배운 것이 기억난다. 농업과 같은 단순 산업 (? 하고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농업이나 어업 같은 1차 산업은 마치 원시인이나 하고 사는 일이고,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2차 산업은 우리나라의 수출양을 늘려서 나라가 잘 살게 되는 산업이고, 더 나아가 선진국이 되려면 이름조차 생소했던 서비스업, 즉 3차 산업에 보다 주력해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보니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암튼!) 에는 모든 사람이 같은 종류의 작업을 하는 협업이 적합하고, 대규모 공장에서 자동차 같은 기술집약적 제품을 생산할 때는 각자 세분화 전문화된 작업만을 하는 분업이 효율적이라고 했다.

즉,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오늘은 개똥이네 모내기를 다 같이 하고, 내일은 쇠똥이네 모내기, 가을이면 모든 사람들이 낫을 들고 논으로 나가 벼베기를 하고, 하는 것이 협업이고,

자동차 공장에서 하루 종일 타이어만 끼우는 사람이 있고,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가면 문짝만 조립해서 달아주는 사람이 있고, 페인트만 칠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분업이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에 있어서는 분업과 협업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 방법일까 생각해보았다.

한국에서 항간에 떠도는 말로, “자녀 교육에 성공하려면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수이다” 라고 한다. 여기서 성공한 자녀 교육이라 함은 명문대 입학을 뜻한다. 그리고, 철저한 분업을 장려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빠는 어설프고 어줍잖은 간섭일랑 말고, 아이를 어느 학원에 보내고 어떤 사교육을 시키고 무슨 전형으로 어느 대학에 지원하는지 등등은 엄마가 부지런히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만치않게 들어가는 돈은 아빠가 벌어오는 것으로 부족하니 유산으로 물려받은 한밑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한 때 분업의 효율성을 좋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내가 더 잘하는 일이니 내가 전담하고, 세탁기를 사용해서 빨래를 하거나 다른 기계 종류를 사용하는 일은 남편이 더 잘하니 남편이 하고, 그렇게 살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분업 보다는 협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정 경영에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공장 생산업 보다는 농업에 더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아이가 자동차 조립처럼 미리 준비된 부품을 정해진 곳에 끼워맞추어 다른 차/아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낸 듯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같은 품종의 씨앗이라도 어떤 토양에 뿌려지고, 기온과 물과 다른 많은 여건에 따라서 다른 품질의 열매가 열리고, 또 운이 좋거나 나쁘면 같은 밭, 같은 조건 하에서도 어떤 것은 쭉정이가, 어떤 것은 튼실한 결실이 맺히곤 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 참으로 아이 키우기와 농업이 비슷하다.

만약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가 철저한 분업만을 고집한다면, 결실이 쭉정이로 맺혔을 때 서로를 비난하거나 최소한 못마땅한 마음이 들 것이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이렇게 잘 했는데, 남편이/아내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좋은 결실을 수확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진심으로 그 좋은 결과를 다 함께 공평하게 누리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업으로 아이를 키우면 어떤 결과를 수확하게 되든 상관없이, 일단 지금 현재 모두가 공평함을 느끼고, 혼자라서 외롭다거나 지칠 염려가 없다. 다같이 모심기를 하면서 구성지게 육자배기 한 자락 함께 부르면 몇 달 후에 풍년이 오든 흉년이 되든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지금 현재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것이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풍년이 오면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자만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함께 도와서 좋은 일이 왔다고 기뻐하고, 흉년을 만나도 특정인을 지목해서 비판할 필요가 없다. 가정경영은 형사사건의 수사가 아니므로, 우리 아이가 잘 컸는지 아닌지를 굳이 따질 일이 아니고, 그게 누구 탓이 더 큰지 일일이 밝혀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사실은 주변에 분업과 협업의 예를 아주 잘 보여주는 두 가정이 있어서 그걸 보고 느낀 바를 쓰려고 한 것인데,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해서 뭉뚱그려 쓰다보니 꽤나 거창한 “육아농업철학”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각설하고…

요즘 우리 부부는 협업의 재미를 느끼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내가 야간 강의로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코난군은 아기를 업은 아빠와 함께 맥도날드 해피밀을 먹으면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갖는다. 해피밀에 따라 나오는 장난감을 가지고 아빠와 함께 놀았던 추억은 나중에 코난군에게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만약 분업을 했다면, 부엌일 전담반인 내가 전날이나 새벽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두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루종일 피곤했을 것이다. 

엄마의 손길을 유난히 좋아하는 코난군을 왠만하면 매일 저녁 내가 씻겨준다. 그와 동시에, 하루종일 엄마 품을 떠나있다가 이제야 겨우 상봉한 둘리양도 엄마가 필요한 상황인데, 그럴 때 코난 아범은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욕실에서 둘리양을 안고, 코난군을 씻기고 있는 내 옆에서 놀아준다. 설사 다음날 강의 준비가 덜 된 상황이라도 말이다. 그러면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온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웃고 이야기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빨리빨리,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이것도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모토이긴 하지만…

가끔은 비효율적으로, 조금 천천히, 그래서 어른도 아이도 한 숨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그렇게 살아가려한다.

2012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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