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원 홈페이지에 딱히 맞는 게시판 카테고리가 없는 이유로, 일단 얼마 전에 학과 사무실에서 찍은 쿠키 사진부터 올려놓고 멘붕 이야기를 쓰려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한국사람들의 설날 만큼이나 큰 명절이다. 가족 친지는 물론이고 평소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작은 선물을 돌린다.
학기말 채점때문에 정신이 없던 지난 주 어느날, 학과 사무실로 쿠키 배달이 왔다.
사범대 건물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이 쿠키를 구워서 각 학과 사무실마다 돌린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교수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돈을 걷어서 그들에게 현금 선물을 해왔는데, 아마도 그에 대한 보답이었나보다.
망중한 이라고… 채점으로 바쁘긴 하지만, 일단 강의가 끝났고 모두들 바쁜 때라 희의가 뜸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점심 도시락을 먹은 후에 간단한 단어만들기 게임을 하기도 했다. 예쁘고 맛있는 쿠키도 한 개씩 집어먹으면서…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잘생긴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플로리다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것이 야무진 계획이었으나…
신이 대한민국을 저버렸는지, 아니면 사람의 노력이 부족했었는지… 미남 대통령의 꿈은 안타깝게 사라져갔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조만간 미국 시민권 선서를 할 예정이기에, 한국의 정치나 사회문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별 상관이 없는 입장이다. 미남 대통령이 되면 점점 연로해져가시는 양가 부모님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었을 것이, 아마도 내게 가장 근접하게 해당되는 떡고물이라면 떡고물이었으리라. 그것만 빼고는 한국의 복지정책이 어떻든, 입시제도가 어떻게 되든,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쥐든 놓든,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 일 뿐인데, 왜 나의 멘탈은 이리도 붕괴되어버렸을까?
그것은,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 대통령이 되면, 지금까지 어린애라도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유치뽕짝한 수준의 어마어마한 나쁜 짓이 모두 덮여버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공포때문이다.
즉, 엠비씨의 김재철 사장은 뻔뻔한 얼굴을 들고, 내연녀에게 회사공금으로 호텔비를 지급하며 더러운 짓거리를 계속 할 것이고 – 심지어 신이 나서 더욱 심하게 할 것 같기도 하다 – 국가정보원은 더욱더 자기 본연의 임무는 놔버리고 권력을 비호하기 위한 나쁜 짓을 할 것이고, 개독교 목사들은 더욱더 교인들의 헌금을 삥뜯는데 혈안이 될 것이며, 동시에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한 탄압을 받아서 그 생명조차 위협받는 상황이 곧 닥치리라는 생각을 하니, 내 억장이 무너지려 하는 것이다.
그
러
나
어느 누구도 붕괴된 나의 멘탈을 대신 치유해줄 수는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책임질 뿐이다.
안철수가 출마했어야했다, 이정희가 설레발을 쳤다, 문재인은 너무 약했다, 등등… 잘잘못의 책임소재를 가려내느라 안그래도 없는 기운을 더욱 소비하지 말자.
한심한 나라의 한심한 백성이라며 내 동포를 손가락질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지도 말자.
일단, 가장 우선으로는 지친 심신을 조금 쉬게 하자.
여기에 해당하는 나의 행동지침은, 인터넷 포탈싸이트를 당분간 읽지 않을 예정이다. 책장 가득 꽂혀있는 동서양의 고전문학작품을 감상하거나, 미국드라마를 섭렵해볼까 싶다. 디즈니월드에 가서 남편과 아이들과 예쁜 사진도 찍고, 플로리다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기운을 좀 차린 다음에는 지금껏 살아오던 방식대로 똑같이 또 열심히 살면 된다. 나쁜 놈들의 나쁜짓에 분개하고, 그들이 벌을 받도록 하는데 노력하고, 마땅한 야당 후보가 없더라도 여당은 찍으면 안된다고 한국에 계신 친지와 친구들을 설득하고, 인터넷 매체에 그런 나의 생각을 나누는 글을 올리기도 하고, 적어도 나의 삶은, 내 아이들의 삶은,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되도록 노력하고…
설령 그렇게 일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비단 한국 정치계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든, 글로벌 사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쁜 놈들이 득세해서 활개치고 다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내가 포기하고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지속적인 레지스탕스 활동/민주화투쟁/사회교화운동/왓에버유네임잇 은 바로 그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19일
82쿡 자유게시판도 단체멘붕 상태이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서 복사해두었다:
사랑하는 82님들 ,,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어 글 하나 옮깁니다.
외국인선교사가 남긴 일제시대 의병에 관한 일화래요.
“내가 제천에 도착한 것은 이른 가을 더운 날이었다. 눈부신 햇빛이 시가가 내려다뵈는 언덕위에 나부끼는 일장기를 쪼이고 일본군
보초의 총검을 비추었다…해질 무렵 저녁을 짓던 사동이 그릇을 떨어뜨리며 달려와서 소리쳤다. 선생님 의병이 나타났습니다. 여기
군인들이 왔어요.
순간 5,6명의 의병들이 뜰로 들어섰다. 나이는 18세에서 26세 사이였고 그 중 얼굴이 준수하고 훤칠한 한 청년은 구식군대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당신들은 언제 전투를 했습니까? 오늘 아침에 저 아랫마을에서 전투가 있었습니다. 일본군 4명을 사살했고 우리측은 2명이 전사했고 3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
공무원 국사 수험서에 실린 사료입니다.
총선 때도 그랬고 오늘도 저는 멘붕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곱씹어봅니다. 막장같은 구한말, 불과 100년 전 일제시대,
해방되자마자 분단에 전쟁, 이후 30년간 이승만 독재,박정희 독재(이제 이 말도 쓰면 안되겠죠) 전두환 쿠데타 노태우 군부정권
끝난 게 불과 20여년 전..
이런 현대사 속에서 저 의병들은 이름도 흔적도 없이 스러져갔지만 어느시대에나 옳은 가치를 위해 싸우고 때론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우리역사에선 늘 실패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들이 실패는 했어도 가치없다 할 수는 도저히 없네요.
우리가 졌어도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신념 우리의 가치를 버릴 수는 없듯이요.
저도 너무 괴로워서 이제 일베충이나 무뇌아처럼 살아버려야겠다 생각도 잠깐 해보았지만 아니요 저는 더욱 제 정치적 도덕적 역사적
가치관 꿋꿋이 지키며 이 나라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렵니다. 저 의병들처럼 죽을 거 질 거 뻔히 알아도 내 신념 내 가치 지키며
이땅에서 끝까지 버티렵니다. 힘들 내세요 의병의 후예님들.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지켜야 할 사람들을 지켜줘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