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쓰는 글은 남편과 둘이서 이야기할 주제이지만, 글로 쓰면서 내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필요도 있고, 남편도 한 번 듣고 지나쳐버리기 보다는 가끔씩 다시 읽어보며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할 필요가 있을 듯 해서 이 곳에 기록으로 남긴다.
물론, 유아기에서 아동기로 접어드는 자녀를 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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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평소처럼 둘리양은 아빠와 함께 먼저 어린이집으로 등원했고, 나는 늦게 일어난 코난군을 준비시켜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고 하던 참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코난군은 오늘 어린이집에 가지고갈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는데, 배낭에 인형 몇 개, 그리고 작은 비닐봉지에 레고 사람을 골라 담고 있었다.
코난군 엄지손가락 크기인 레고 사람들
나는 나대로 아침 먹은 접시를 치우고 차에 시동을 켜고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친 코난군이 슬그머니 손에 든 비닐봉지를 탁자 아래로 내리며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레고 사람을 골라 담기 전에 내가 먼저 총이나 칼, 헬멧, 등 쉽게 분리되는 조각은 잃어버리기 쉬우니 가지고가지 말라고 이야기했고, 코난군은 알겠다고 대답을 했더랬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도 그런 것은 담지 않은 것 같은데, 굳이 비닐봉지를 숨기는 것을 보니, 아마도 서너 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은 갯수를 담았기에, 엄마가 보고 도로 빼라고 할까봐 그러는 듯 했다.
“코난군, 왜 봉지를 숨겨?”
하고 물어도 코난군은 더더욱 봉지를 감추려고만 했다.
“왜? 엄마가 보면 못가지고가게 할까봐 그래? 안그럴께. 그냥 궁금해서 그러니까 한 번 보여줘봐”
하고 안심시켜도 마찬가지 반응이라, 더이상 조르지 않고, 먼저 차고로 나갔다. 내가 안보는 사이에 레고 사람이 담긴 봉지를 배낭에 넣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제 만 다섯 살이 된 코난군은 생각하는 능력이 많이 자라서 스스로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자기에게 허락된 일과, 하면 안되는 일의 경계선도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다. 아마 오늘 아침의 일도, 제 판단에, 엄마가 보면 반대할 것이기에 무언가를 엄마로부터 숨기려했을 것이다.
이제 이만큼 자란 코난군에게 우리 부부의 행동지침도 업데이트해서 적용시켜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마냥 아기로 여기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부모가 판단해서 따르도록 할 것이 아니라, 통제는 조금 느슨하게 하고, 동시에 코난군이 모든 상황과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고, 그에 맞는 결정을 하도록 하며, 따르는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예전보다 더 미리 더 세심한 통제가 필요한 때가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냥 코난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난군의 역량으로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아예 코난군의 손에 남겨지지 않도록 하고, 코난군의 잘못된 판단이 초래할 피해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코난군의 손에 의사결정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관찰했던 일화를 예로 들자면, 오븐에서 갓 나온 뜨거운 접시에 코난군이 다칠까봐 코난아범은 코난군이 팔을 테이블 위로 올리기만 해도 “어엇, 조심해! 뜨거워!” 하고 연신 주의를 주었다. 코난군의 접시에 덜어준 새우를 먹을 때도, 아빠는 하나하나 순서를 정해주면서 “이것부터 먹고, 그 다음에 이걸 먹어” 하고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제는 그렇게 꼭 잡은 손을 조금은 느슨하게 놔줄 때가 왔다.
음식이 나왔을 때 코난군과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이건 오븐에서 방금 나온 접시라서 아주 뜨거우니까, 절대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하고 알려주고, 접시를 코난군이 무심코 움직여서 닿을 범위 밖에다 놓고, 그 다음에는 코난군이 알아서 조심하도록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는 것이 코난군의 자율성을 돕는 방법이라 하겠다.
코난군 입장에서 보자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데도 그 때마다 “조심해” “어엇!” 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꽤나 성가시게 여겨져서, 아빠의 보호와 배려가 고맙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패턴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정말로 꼭 들어야할 조언을 해주어도 습관처럼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마치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말이다.
만에 하나, 코난군이 부주의해서 뜨거운 접시에 손이 닿는다해도 그 피해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살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정도일 것이고, 그 상처가 아물때까지 코난군은 다음번에는 뜨거운 접시를 꼭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릭슨의 발달 단계에 의하면, 현재 코난군은 제 3 단계인 주도성 대 죄책감 형성 단계에서 제 4 단계인 근면성 대 열등감 단계로 옮겨 가고 있는 과정이다. 모든 일에 자신의 의지와 계획대로 하고자 하는 주도성을 잘 살려주지 않으면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게 되기 쉬운 단계가 제 3단계이고, 그 다음은 내적 동기로 인해 무엇이든 스스로 열심히 해보려하는데, 거기에 부모나 주변인이 찬물을 끼얹으면 ‘역시 나는 안돼’ 하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시기이다.
조금 더 쉽게 해석하자면, 공연히 이것저것 못하게 하는 것을 늘려서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고, 또 혼자서 한 일의 결과가 시덥지 않아 보여도 그 기획 의도와 쏟은 노력에 대한 칭찬을 해주어서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오늘 아침에 코난군이 감추려했던 비닐봉지를 내가 굳이 뺏어서라도 확인하려 하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며 눈감아준 것은 코난군이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물론, 나쁜 짓을 했을 때는 잘못된 것을 알려주고 죄책감도 당연히 느껴야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겠지만, 남에게 크나큰 피해나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주도하에 실행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하면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많은 장난감을 어린이집에 가지고 갔다가 한 두 개 잃어버려서 속상했다면 다음번에는 엄마가 주의를 주기 전에 자기 스스로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만 챙길 것이다. 잃어버린 장난감이 아깝기는 하겠지만, 그 장난감 몇 개 대신에, 코난군이 평생 가지고갈 교훈을 얻었다면, 그건 좋은 교육비 지출이라 믿는다. 어른이 되어서 더 크고 비싼 물건을 흘리고 잃어버리는 것보다 싸게 먹히니까 말이다.
그리고 코난군이 매일 아침 장난감을 골라서 가지고 가는 것은 근면성에서 기인한다. 즉, 무언가 나름 계획이 있어서 특정 장난감을 특정 갯수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타워즈 놀이를 하려면 소렌도 한 개, 크렉도 한 개, 에이든도 한 개씩 나눠줘야 하고, 자기는 두 개가 필요하니 총 다섯 개의 케릭터를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하면 근면성의 반대 정서인 열등감을 갖기가 쉽다는 것이 에릭슨의 설명이다.
그러면, 그렇다고 무엇이든 코난군이 하고픈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그렇게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 하는 식으로 쉬운 것이 유아교육이 아니다.
어린이가 주도성이나 근면성을 실천하려할 때, 부모는 아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일깨워주거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즉, 코난군이 너무 많은 장난감을 챙기고 있다면, ‘너무 많이 가지고 가면 한 두 개 바닥에 떨어뜨려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못챙겨올 수 있다’, ‘모두 몇 개를 가지고 가는지 세어보자’, ‘집에 오기 전에 갯수를 다시 세어서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확인해라’ 등등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약에 잃어버렸을 때는 ‘그것봐, 내가 뭐랬니’ 하고 비난하는 어조로 나무라면 절대 안된다. 열등감이 생기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장난감을 잃어버려서 정말 속상하겠구나’, 엄마도 속상해. 그 장난감을 다시 사려면 또 돈을 내야 하니까 말이야.’ 혹은 ‘엄마가 돈이 없어서 똑같은 것으로 다시 사줄 수 없어서 속상해’ 등의 말로서, 아이가 스스로 초래한 나쁜 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속상해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어느새 훌쩍 자라서 곧 초등학생이 될 코난군…
이렇게 조금씩 잡은 손을 느슨하게 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게 될 늠름한 청년이 되어있겠지…
2013년 3월 12일
안녕하세요.
올해로 미국생활 3년차에 접어든 유학생입니다.
지난 달 아내가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 박사과정학생인데, 아빠게 된다는게 기쁘기도 하지만, 사실 걱정도 됩니다. 이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웹서핑을 하던중 지금 이 사이트를 알게되었는데 이것이 개인 사이트인가요? 아님 포탈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인가요..?
아무튼 초보 아빠가 되는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저를 따라 선뜻 미국을 따라온 아내에게 이 사이트를 통해 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이 사이트는 개인 사이트입니다.
좀 정신이 없어 보이는 광고들이 즐비한 포털 사이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별도의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게 됐네요.
자주 들러주세요.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근데 university of Virginia에 계시는 군요. 저도 작년 여름까지는 버지니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Baltimore)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북쪽 저멀리 Connecticut으로 이사왔습니다. 저도 미국와서 우여곡절 끝에 이곳으로 왔는데, 처음 대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동네로 오니깐 처음에 삭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조용하니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글 마니마니 올려주세요^^
저희가 있는 곳은 UVA 는 아니구요, 비밀입니다.
82cook.com 을 통해서 오셨나요? 아니면 우연히 다른 경로로 찾으셨나요?
저희들 삶이 너무 바빠서, 마니마니는 불가능하겠지만 자주 올릴려고 항상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공유하고 싶으신 글이 있으시면, 별도의 방문자 페이지를 개설해 보겠습니다.
우연히 웹서핑중에 알게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아빠가 되는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던중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저 역시 미국에서 직업을 가지려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 ^^
공부하시는 가운데 좋은 아빠가 되려 노력하시는 모습이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검색하다가 찾으신 사이트가 http://www.apiacere.net 인지 http://www.apiacere.net/boypark/ 인지 궁금하네요.
이거… 참 이렇게 많은 댓글이 한 개의 게시물에 달리기는 처음인 듯…
Min 님, 아빠가 되시는 것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직은 보잘것 없는 제 블로그를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곳에 글을 올리는 것은 저이지만 기술적인 관리는 제 남편 (Papageno)이 주로 하기 때문에, 이 싸이트가 어떤 경로로 검색이 되어지는지 궁금해 하고 있나봐요.
자주 찾아와주시고, 또 이렇게 댓글로 자주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