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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둘리양이 농장 견학을 가서 큰 호박을 한 개 가져왔었다.

이걸 고를까? 저걸 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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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양: 난 이거 두 개가 제일 마음에 드는데, 두 개 가지고 가면 안되나요?

스펜서: 그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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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내가 고른 호박을 차에 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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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 호박이 제법 무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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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이 때부터 벌써 호박에 흠이 나서 오래 가지 못할 징조가 보였다.

좀 더 잘 살펴보고 골라왔어야 하는데, 카메라를 들고, 아이를 안고, 호박을 고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원래는 10월 31일 할로윈 장식용으로 조각해서 현관문 앞에 장식해두었다가 그 다음날 즈음에 음식으로 만들어먹을 요량이었는데, 이 호박이 우리집에 온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흠집이 난 부분이 물렁해지면서 상하려는 조짐이 보였다.

할 수 없이 얼른 조리해서 먹어치워야겠다 결심하고 호박파이 조리법을 찾아보았다.

파이 크러스트 만드는 법

1. 밀가루 1컵에 잘게 썰은 버터 2큰술과 소금, 그리고 얼음물을 뿌리듯이 첨가하면서 반죽을 만든다.

2. 반죽을 너무 오래 치대지 말고, 대략 뭉쳐지는 정도가 되면 밀대로 밀어서 납작하게 만든다.

3. 9인치 파이 팬에 얇고 넓게 파이 크러스트를 깔아준다.

호박파이 속 만드는 법

1. 호박을 씻어서 반으로 갈라 오븐에 넣고 350도에서 한 시간 정도 익힌다.

2. 호박이 다 익으면 스푼으로 쉽게 속을 긁어낼 수 있게 된다.

3. 긁어낸 호박 퓌레 1컵에 사우어크림 1/2컵 (원래는 생크림을 넣으라고 되어있지만, 사우어크림을 넣었더니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좋았다), 설탕 1/4컵, 소금 1/2작은술, 계피가루 약간을 넣고 섞는다.

4. 계란 2개를 거품내어 부풀게 한 후에 다른 재료와 섞는다.

5. 파이 크러스트에 파이 속을 넣고 화씨400도 에서 30분간 익힌다.

6. 오븐에서 꺼낸 파이가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다.

이렇게 해서 만든 파이가 큰 호박 한 개를 다 썼더니 무려 네 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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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다 소비를 할 수 없을 듯 하여 오늘 출근길에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우리 학교 한국인 교수들 중에서 먹을복 있는 자가 이 파이를 얻으리라… 하면서 좋은 가을 날씨를 즐기며 산책삼아 걸어서 캠퍼스 투어를 했다.

주차장에서 내 연구실로 가기 전에 먼저 지나가게 되는 간호학과의 엘 교수님 연구실에 들렀으나, 이 선생님은 화요일에 클리닉 시간이 잡혀 있다고 문 옆 스케줄에 적혀있었다. 아마도 로아녹에 있는 실습 병원에서 학생들의 실습을 지도하는 날인가보다. 먹을 복 없는 엘 교수님은 이만 안녕~ 하고나서 음대 성악과에 있는 케이 교수님의 연구실로 향했다. 이번에 우리 학교에 처음 오게 된 케이 교수는 나와 대학 동문이기도 해서 왠지 친근감이 더 느껴진다.

그런데 연구실 문 안에서 들려오는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피아노 반주와 발성연습 소리… 학생에게 개인 레슨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혼자서 목을 푸는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방해하지 않으려고 파이를 문앞에 내려놓고 쪽지를 써서 남겨두려는 동안에 케이 교수님이 방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발견했다. 혼자 목을 풀고 있다가 문 밖에서 무언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와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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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가서 파이를 건네주려는 내 손길이 끝나기도 전에 내 가방 안에 무언가를 수북이 넣어주는 것이 무언가 하고 봤더니 이렇게 생긴 한국 과자였다. 선배 교수가 직접 자기 방으로 파이 배달을 왔다는 것이 몹시 황송하고 감동적이었던지, “어머머, 어머머”를 연발하면서 파이를 잘 먹겠다고 깎듯하게 인사를 챙기기도 했다.

나는 케이 교수님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음대 구경을 했는데, 연구실 안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고, 피아노 뒷쪽 창문 밖으로 가을 풍경이 아름다웠다. 음대 교수이다보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기기도 있고, 컴퓨터가 놓인 책상앞 벽에는 예쁜 그림도 걸어놓고… 거기에 비하면 내 연구실은 참 밋밋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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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은 한 개의 파이를 들고 컴퓨터학과의 엘 교수님 연구실로 갔으나, 이 선생님도 화요일은 강의가 없어서인지 아예 연구실에 나오질 않으셨다. 예전에 엘 교수님 연구실 구경을 해봤던 기억이 생각나서 혼자 빙긋이 웃었다. 케이 교수님 연구실에 비하면 내 방이 밋밋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엘 교수님 방은 심하게 심플,단촐, 그래서 아주 깨끗해보였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즉, 내 방에는 이런저런 문건도 벽에 붙여놓고, 아이들 그림 작품이며 강의자료로 쓰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들이 놓여있어서 좋게 말하면 아기자기, 나쁘게 말하자면 복잡다단하게 보이는데, 엘 교수님 방은 자로 대고 선을 그은 듯, 반듯하게 놓인 가구와 꼭 필요한 물품만 책상위에 놓여있는 것이, 어쩌면 각자의 전공이 각 교수의 연구실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돌고, 도서관에 가서 내일 강의에 쓸 자료를 빌려서 내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은 파이를 점심으로 먹었다.

가을의 맛이 느껴졌다.

201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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