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끝나가는 방학의 끝무렵이다.
방학동안 얼굴 한 번 보고, 밥 한 번 같이 먹자던 엘 교수님이 어쩐지 연락이 안되어서 궁금해 했더니, 그간의 피로가 긴장이 풀어지는 방학동안에 한꺼번에 몰려와서 꼼짝도 못하고 집에서 쉬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면 잠시 들러서 김장김치만이라도 가져가시라 했더니, 그건 염치없어서 못하겠고, 몸이 조금 나아지면 들르겠다고 했지만, 토요일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잠시 길건너 집으로 마실나올 기력조차 없는 듯 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식구들 먹을 밑반찬을 만들면서 엘교수님을 위한 위문품 꾸러미도 챙겼다.
엄마가 부엌에서 분주한 동안에 덩달아 요리하느라 바쁜 둘리양.
둘리양이 아침에 기분좋게 소꼽놀이는 잘 하는 덕분에 부엌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유를 가지고 하는 부엌일이라, 이렇게 밑준비를 잘 해놓고 시작을 했다.
맨 왼쪽은 두부 으깬 것에 참치캔과 파를 넣고 동그랑땡을 빚어서 부칠 재료이다.
가운데 오징어일미채는 맨 뒷쪽의 빨간 고추장 베이스 양념으로 무칠 예정이고, 오른쪽의 어묵과 양파는 가운데의 간장 베이스 양념으로 조릴 계획이다.
이렇게 양념장을 미리 배합해놓고, 동그랑땡 재료도 잘 섞어서 잠시 두었다가 부치면 음식의 맛이 조금 더 깊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든다. 요리 채널에서 전문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때 저렇게 양념장을 미리 만들어두고 쓰는 것을 자주 보는데, 그게 꼭 보기에 좋으라고만 하는 일은 아닌 듯 하다.
간간이 둘리양 입에 어묵을 넣어주기도 하고, 소꼽놀이를 봐주기도 하면서 아침 나절을 보낸 결과, 위의 재료들은 이런 결과물이 되었다.
엘교수를 위한 위문품 접시에도 세 가지 반찬을 담고…
아파서 누워있는 혼자 사는 사람이 밥이라고 부지런히 지어먹으랴 싶어서 쌀밥도 한 그릇 담고…
이번에 담근 무김치와 배추김치도 조금씩 담았다.
사실, 김장으로 만든 배추김치는 손으로 길게 죽죽 찢어먹어야 제 맛이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줌마 스타일이고, 독신의 깔끔한 엘교수가 혼자 먹기에는 불편할 듯 싶어 일부러 썰어서 담았다.
엘교수님 집으로 위문밥상을 전달하러 갔더니, 그러지 않아도 우리집엘 온다고 해놓고 계속 들르지 못한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고 있었다며, 우리를 주려고 일부러 사놓은 노니 쥬스를 한 병 선물로 주었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온다더니, 건강에 좋다는 (비싸 보이는 🙂 노니 쥬스를 선물로 받아가지고 오게 된 것이다.
집에서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고 몸과 마음에 기운을 얼른 회복하시란 인사를 남기고 돌아오니 내 마음이 훈훈해진 느낌이다.
2013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