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군의 선행학습? 그리고 학교를 즐거워하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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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고등학생때 측정한 아이큐가 145점이었다.

100점을 표준 평균 점수로 삼는 아이큐, 즉 지능지수는 통계와 측정상의 오차범위를 고려해서 85점에서 115점 사이를 가장 평균적이고 보통의 정도라고 정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5점씩 높거나 낮은 범위를 표준편차 (Standard Deviation) 라고 부르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아이큐가 115에서 130 사이에 드는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큐 131인 사람과 144인 사람은 실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이 비슷한 정도로 똑똑하다는 뜻이다.

각설하고, 나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한글 읽기를 깨쳐서 초등학교는 커녕 유치원도 다니기 전부터 혼자서 글을 줄줄 읽었더라……………………………여기까지만 쓰면 마치 위인전의 서문같지만, 비극은 그 다음에 시작된다……

너무 똘똘한 어린이라 유치원을 2년이나 다니고나서야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어린 “빠른 2월생” 자격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에는 요즘보다 교육열이 덜했는지 아니면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는지, 1학년에 입학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한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고, 1학년 교과과정의 주요 부분은 기역 니은을 배우는 것이었다. 이미 쉬운 한자를 포함해서 신문을 읽을 줄 알던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그래서 선따라 글쓰기 같은 것을 성의없이 대충 해내곤 했었다.

1학년의 지루한 학교 경험은 2학년 3학년에도 이어졌고, 내 성적표에 선생님의 코멘트는 항상 “머리는 좋으나 노력이 부족합니다” “학업은 잘 하지만 주의가 산만합니다” 라고 써있었다.

반면,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국민학교를 입학할 때 아직도 자기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못했다. 물론 그의 이름 철자가 조금 복잡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측정해본 그의 아이큐는 115에서 130 의 범위 안에 들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보다 낮은 지능이라는 것.

그런데 내 동생은 초중고등학교 내내 반에서 일등은 물론이고, 전교에서도 항상 일등만 하던 학생이되었다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집 코난군을 보니 잘 알겠다.

코난군은 초등학교 킨더 학년을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윌리스 선생님이 자상하게 대해주시기도 하고, 엄마가 매주 교실 자원봉사를 해서 의기양양해진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매일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즐거움을 터득한 것이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날 배운 것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주의집중을 잘 해서 들었는지, 아는 것이 제법 많고 정확하다. 예를 들면 지난 주에는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에 대해서 배웠는데, 내가 미쳐 몰랐던 디테일한 내용까지도 알려주었다.

어느날엔가는 내게 무언가 과학적인 원리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를 들자면 왜 컵 속의 빨대는 더 크게 보이는가? 하는 류의 질문이었다 – 엄마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설명해주는 것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하는 말이,

“나중에 학교에서 윌리스 선생님이 이것도 가르쳐주시겠지?” 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집 코난군의 선행학습은 “지금 잘 모르는 것은 언젠가 학교에서 배울 것이다” 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게 무슨 선행학습이냐고 얕잡아볼 것이 아니다. 코난군은 학이시습지열호아 (한자는 나중에 찾아넣으려함) 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새로이 배우는 것이 재미있으니 한눈 팔거나 딴짓을 하지 않고 선생님께 주의를 총집중하고, 그러니 선생님들이 모두 코난군을 칭찬하고, 그래서 코난군은 학교가 더욱 좋아지는 선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옆 방의 데비 교수네 딸은 코난군과 동갑인데, 얘가 나처럼 영특한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읽고 쓰기도 잘 하고, 킨더가든에 입학하고 바로 치른 테스트에서 코난군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난 요즘은 학교에 가는 것을 무척 지루해하고,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울기까지 한다고 한다. 심지어 오늘은 배가 아파서 학교에 못가고 출근하는 엄마를 따라 왔는데, 데비 교수의 표정에서 “그것은 꾀병” 이라는 메세지가 전달된다.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인지, 엄마 오피스에서 혼자 놀고 있는 올리비아가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제 입으로 “학교에 보내지말고 집에서 엄마가 가르쳐주는 홈스쿨을 하고 싶다”고 했다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즐거울 나이에 학교가 오죽 끔찍하게 여겨졌으면 그런 부탁을 다 했을까 싶다.

이런 것도 모르고 한국의 일부 (혹은 다수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선행학습에 돈을 쓰고 정보를 모으고 이웃과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학년을 시작하고 몇 주 간은 다른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으쓱함이 생기겠지만, 실상은 학교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박탈당한 것에 불과하다. 즐거움이 없는 학교 생활 –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십 수년간 지속해야 하는 – 이란 얼마나 큰 괴로움인지… 엄마 아빠들은 알아야 한다.

2014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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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아마 컵속에 빨대를 넣으면 빨대가 꺽어지면서 보이는 것일 가능성이 높을 거에요. 상황에 따라서 크기는 달라질 수 잇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