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과는 그 규모에 비해 동료들간에 단합이 참 잘 되는 편이다.
테뉴어 트랙, 즉 정직원 교수만 해도 서른 명이 훌쩍 넘는 숫자이고 거기에 시간제 강사나 비서 등의 인원을 포함하면 쉰 명도 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물론 그 중에는 나와는 성향이 판이하게 달라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에게 친절하다.
오늘 오전에 내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조별 과제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종이를 강의실 게시판에 붙여두려고 압정을 찾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동료 두어 명이 “뭘 찾고 있니?” 하고 묻더니, 자기 책상 서랍을 뒤져서 압정 세 개를 찾아 주었다.
바네사 라고 하는 우리 엄마뻘 되는 마음씨 좋은 특수교육 전공 교수에게 “어머, 정말 고마워. 그런데 한 스무 개가 필요한데, 우리 학과 사무실에 비치된 게 없나봐. 마침 비서도 오늘 결근이라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더 찾아보면 되니까, 암튼 고마워!” 라고 말했더니, 바네사는 자기 차를 우리 건물 바로 앞에 주차해두었으니, 얼른 차를 타고 나가서 가게에서 사다주겠다고까지 했다.
아무리 건강하고 활기넘치는 바네사라고 해도, 우리 엄마 또래의 연세이고, 또 자기 할 일도 있는데 그건 너무 심한 부탁인 듯해서 괜찮다고 여러 번 사양을 했다.
그리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보니 내 연구실 문 손잡이에 노란 비닐봉지가 걸려있고, 그 안에는 압정 한 통이 들어있는게 아닌가!
달러샵에서 구입했으니 돈이야 1달러 밖에 안들었겠지만, 일부러 차를 몰고 나가서 사다준 호의가 마음 뻐근하도록 고마웠다. 바네사는 지금 자기 강의를 하러 들어간 상태라 아직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고맙다며 1달러 지페를 건낸다면 그건 그 큰 호의를 고작 1달러로 깎아내리는 격이 될터이니, 돈이나 물건같은 것 보다도, 진심을 담은 말과 허그 정도로 인사를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씨 좋고, 생각이 바로 박히고, 나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나는 참 복이 많다.
내가 사랑하는 그 어떤 이도 직장에서 이렇게 보람을 느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외눈박이만 가득한 곳에서 두 눈을 붙이고 사는 어려움을… 무슨 방법으로든 얼른 극복하기를 바란다.
2014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