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생방실의 클레오파트라
어머님은 자외선이 싫다고 하셨어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인터넷에서 자주 보게되면서 복면가왕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목만 들어봐도 대략 출연자가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르는 포맷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고, 몇 년전에 재미있게 봤던 복면달호 라는 한국영화도 떠올랐지만, 막상 그 프로그램을 볼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었다. 요즘 각 방송사마다 출연자에게 경쟁을 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기도 하고, 또 한국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 되어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노래라든지 유명 연예인을 잘 알지 못하니까 가요를 부르는 예능프로그램이 재미없을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나보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우연히 복면가왕의 자리를 4회차 동안 (방송 기간으로는 8주)이나 차지했다는 김연우 라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는데, 어찌나 노래를 잘 하던지, 감동을 받은 김에 복면가왕을 1회부터 시청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24회 방송을 했다는데 나는 지금 13회차를 보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어차피 출연자가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하기 때문에 화면을 열심히 보지 않아도 되어서 단순한 문서작성 작업을 할 때 틀어놓고 보면 지루하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점이다. 게다가 출연자들이 자신의 노래실력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노래를 고르다보니, 현란한 댄스가요나 각종 기계음이 가득한 요즘 노래가 아니라 나도 알고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다.
가면을 벗은 출연자는 내가 잘 모르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기도 하고, 탤런트나 개그맨일 때도 있다. 아는 사람이 나오면 반가워서 좋고, 잘 모르는 사람이 나오면 저런 사람도 있었네 하고 최신 연예계 공부를 하기도 한다 🙂
한 가지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돌 그룹에서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섹시를 넘어서서 민망한 옷차림과 춤으로 뭇사람들의 눈을 현란하게 만들던 가수가, 복면을 씌우고 목소리만 들어보니 정말 뛰어난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된다는 것이다. 저렇게나 노래 잘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열심히 노래나 하게 할 것이지, 춤 연습 시키고 미용성형 수술을 시키고 심한 화장과 의상을 입혀놓고, 노래라는 것은 잔뜩 비트와 기계음을 집어넣어서 정작 가수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게 만드는 것이 요즘 연예기획사가 하는 일인가보다.
무더운 여름 어느날,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식힌 수박 한 통을 식칼로 쫙~ 소리가 나게 썰어서 한 입 먹어보니 달기가 설탕보다 더하고 물이 많아 갈증과 더위를 순식간에 날려주는, 그런 수박이 한 통 있다고 치자. 거기에다 생크림을 얹고 초코렛 시럽을 뿌리고 이태리 치즈를 갈아얹고 프랑스 와인을 끼얹어서 유기농 견과류를 뿌렸다면, 크리스탈 접시에 담아 은으로 만든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하게 썰어먹도록 한다면, 그건 수박을 발굴해서 성공을 시키는 일이 아니라, 수박에 대한 모독에 더 가까운 일일게다. 수박이 달고 시원할수록 더 큰 모독이 될 것이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은 가수가 되고,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은 배우가 되고, 재치가 많은 사람은 개그맨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2015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