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2016년 5월 4일 수요일
뜨아~~~~~~~~~~~~~~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드럼통 같은 걸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옆방 데비가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말로 다 설명하기조차 너무 복잡해서 엄두가 안나고 큰 숨만 내쉬고 있으니, 스트레스 볼을 건내준다.
스트레스 볼을 주물러 비틀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 하다보니 조금 진정이 되는 듯 했다.
그리고 복잡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아니 수류탄을 맞아 두뇌가 폭파된 듯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소연할 수 있었다.
30분 정도 되는 시간을 할애해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눈물 콧물을 닦을 휴지를 건내주고, 마지막으로 위로의 말과 허그를 해준 고마운 데비…
자기도 채점할 일이 산더미 같아서 바쁜 시기인데 내가 그 소중한 시간을 뺐었다.
언제고 신세를 갚을 기회가 오겠지.
일단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여러 가지 일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1. 지난 1월부터 올 가을 학기 3, 4, 5학년 학생들의 강의 스케줄을 정해왔다.
2. 작년 가을 수요일에 1-4시, 5-8시, 이렇게 세 시간짜리 강의를 연달아 듣게 했더니 학생들에게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3. 유아교육 인턴과 유아특수교육 인턴을 하는 두 그룹의 학생들이 그 두 수업을 공통으로 함께 듣는데, 그 사이에 알력이 생기고 불리 (=집단 괴롭힘)가 생기고, 수업 태도가 불성실하다며 강사에게서 컴플레인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4. 그 두 그룹은 다음 학기에는 순번을 바꿔서 각자 유아특수교육과 유아교육 인턴을 하고, 그 다음 대학원 학년에서는 다 함께 유아특수교육 교생실습, 유아교육 교생실습을 함께 하고 강의도 함께 들어야 하는 그룹이다. 따라서 불리 같은 것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5. 수요일은 한 주간의 한 복판이다보니 인턴쉽과 강의를 들으며 지친 학생들의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는 날이다.
6. 그 두 수업을 가르치는 강사는 풀타임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라서 학생들의 전반적인 프로그레스나 프로그램의 요구조건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단지 자기 수업에만 충실하다보니, 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과제물을 요구하거나, 전반적인 그룹내의 동료의식 조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7. 게다가, 1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듣자니 유아특수교육 인턴을 하는 학생들은 시간에 맞춰 캠퍼스에 도착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유아교육 인턴은 인근 초등학교의 규칙적인 스케줄에 따라 정시에 인턴쉽을 마치고 대학교로 돌아올 수 있지만 유아특수교육 인턴은 1-2세 미만의 아기들의 가정으로 찾아가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시에 어디서 그 날의 인턴쉽이 끝나는지 알 수 없다.
8. 그 다사다난했던 갈등과 불리 문제를 수 차례의 그룹 카운셀링 또는 토론 활동을 거쳐 어느 정도 수습해 두었고, 수요일의 수업을 분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9. 그래서 다음 가을 학기에는 1-4시 수업이었던 과목을 3-6시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10. 수요일 5-8시 수업은 화목요일 이틀에 걸쳐 3:15-5:00 아니면 5:00-6:15의 섹션으로 바꿔달라고도 요청했다.
11. 9번의 수업 스케줄 조정으로 새로운 강사를 구해야만 했다.
12. 4번 부터 8번 까지의 상황을 임시 학과장인 제니퍼와 비서인 케라에게 말로도 설명하고, 이메일로도 보내고, 액셀 파일을 교환하면 가을 학기 스케줄을 확정할 때에도 말했다.
13. 그 때 마다 제니퍼와 케라는 잘 알았다며, 우리가 요청한 조정사항을 다 고려해서 시간표를 변경했다고 말해주었다.
14.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했다.
15. 3주 전, 유아특수교육 인턴쉽을 감독하고 또 유아특수교육 전공 과목을 세 개 더 가르치기로 했던 동료 섀런이 갑자기 내년에도 다시 부학과장을 역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16. 아참, 섀런은 지난 2년간 부학과장이어서 그녀가 원래 가르치던 전공과목을 시간 강사가 가르쳐왔다.
17. 시간 강사들은 낮에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므로 (학교 교사라든지) 저녁 시간, 그것도 세 시간 연강인 수업이 아니면 가르칠 수가 없다.
18. 하지만 섀런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나누어서 가르치는 수업을 원했다.
19. 그래서 지난 2년간 유지해오던 시간표를 버리고, 섀런의 세 과목을 화목요일로 나누어 새로 짰다.
20. 19번의 과정에서 섀런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듣는 다른 수업과 겹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그렇다고 섀런이 동시에 두 학년의 수업을 하도록 만드는 실수가 생겨서도 안되었다.
21. 시간 강사 선생님 열 분과 나를 포함한 우리 전공 교수 세 명의 스케줄을 3개 학년에 걸친 학생들의 실습 시간과 강의 시간에 맞게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2. 최근에 우리 대학교는 다섯 개 건물의 리노베이션을 시작했고, 캠퍼스를 통털어서 강의실이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 이른 아침이나 금요일 시간이 아니면 강의실이 없어서 시간표를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23. 우리 전공 학생들은 실습 때문에 도저히 이른 아침 수업을 들을 수가 없고, 시간 강사가 가르치는 과목은 저녁에 3시간 연강이 아니면 개설할 수가 없다.
24. 그 와중에 15번 으로 인해서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시간표를 왕창 다시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 생긴거다.
25. 어찌저찌 두뇌를 짜내고 섀런과 숱하게 이야기를 나눈 결과 – 각자 실습생을 지도하고 각자 행정직을 맡은 상황이라 얼굴보고 이야기할 시간 내기도 어려웠지만 – 어느 정도 새로운 시간표가 만들어졌다 ——– 고 생각했다.
26. 오늘 학과 비서인 케라의 이메일을 받고보니 수요일의 수업이 여전히 1-4시와 5-8시로 되어있고 학생들은 이미 수강신청이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7. 자초지종을 수차례 이메일로 알아보니 제니퍼가 몇 가지를 빠트렸고, 케라가 수 차례 변경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잘못 입력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28. 25번의 과정에서 시간 강사를 새로 구하는데, 역시나 강의실 부족 문제로 섭외한 강사가 오지못하게 되고, 그래서 섀런이 안가르치려던 과목을 가르치는 대신에 실습 지도를 안하기로 한 극적인 문제 해결 상황도 있었다.
29. 그런데 27번 때문에 28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시간강사도 없고, 강의실도 없고, 학생들은 실습때문에 들어올 수 없는 수업에 등록이 떡하니 되어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30. 비서인 케라에게 달려가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시간표를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바꿔보았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이쪽 구멍을 메우면 저쪽에 구멍이 나고, 저쪽을 메우면 다시 이쪽이 벌어지고…
31. 내 책상 위에는 채점해야 할 과제물이 쌓여있다. 오는 월요일 아침이 성적처리 마감시한이다.
32. 내일은 코난군 학교 견학을 따라가기로 되어있어서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오늘과 금요일에 걸쳐 모든 기말 성적 처리를 마쳐야만 한다.
33. 오늘은 오후 2시에 다음학년도 교과과정 통일을 위해서 초등교육 전공 교수들과 만나서 상의를 해야 한다.
34. 그 다음 오후 3시에는 대학원 학생의 강의철회 문제로 부학장과 만나서 중대한 의논을 해야 한다. – 이 이야기는 아래에 더 쓰기로 한다.
35. 34번이 끝나면 우리 프로그램 브로셔를 위한 사진촬영을 해야 하는데, 사진사가 어젯밤에 부친상을 당해서 다른 사진사가 대신 올 수 있는지 아닌지 알아봐야 한다.
36. 35번을 위해서 남편이 우리 아이들을 일찍 하교 하원시키고 우리 학교로 데려오기로 했는데 대타 사진사 여부에 따라 실행 여부가 정해진다.
37. 사진 촬영에 필요한 아이들 옷도 미리 챙겨왔고, 내 머리와 화장도 신경을 썼건만, 데비 앞에서 울고짜고 하느라 엉망이 되어버렸다.
38. 이번 기말부터 교생평가를 온라인 시스템으로 하게 되었는데, 내 것은 무사히 마쳤으나 시간강사인 케롤 선생님은 연세가 울아부지랑 동갑이시라 컴퓨터 보다도 종이에 써서 하는 평가가 훨씬 더 익숙하시다. 그런 분께 느려터진 컴퓨터로 수 십 페이지 수 백개 문항에 달하는 평가를 하는 방법을 알려드려야만 했다.
39. 38번은 교생을 데리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 분들께도 이메일과 직접 방문해서평가를 각별하게 부탁드려야만 했다.
40. 38번과 39번의 평가 방식은 대학평가 인증제에는 유리하지만, 학생 개개인에게는 적절한 피드백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행정관료주의의 산물에 불과하다. 반면에 학교와 학생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막대하게 지우는 부작용이 있다.
41. 40번의 불평불만을 수많은 현직 교사와 케롤 선생님으로부터 접수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혹은 설명을 하는 것도 내 주요 업무였다.
42. 이 와중에 어제까지 급하게 써내야 했던 보고서가 하나, 5월 11일까지 하나, 15일까지 또 하나를 써내야 한다. 프로그램 리더라서 해야 하는 일이다.
43. 42번의 보고서는 나혼자 쓰면 되는게 아니라, 동료인 케티와 섀련에세 여러 가지 물어보고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 필요한 작업이다.
44. 학기가 완전히 끝나서 동료를 만나기가 어렵고, 만나도 일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되기 전에 43번의 일을 해야 한다. 즉 시간에 쫓기는 일이다.
45. 34번의 학생은 시간강사인 줄리아 선생님이 감독을 했는데, 담임 교사가 아파서 제대로 지도를 못하고, 또 눈으로 인한 잦은 휴교 때문에도 대그룹 레슨을 맡아서 가르칠 기회가 없었다.
46. 이 학생은 노력은 열심히 했으나 결국에 초등학교 2학년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소질과 적성에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줄리아와 내가 주고 받은 이메일이 여러 차례, 부학장인 태미와 만나고 이메일 한 것이 수 차례이다.
47. 결국 지난 금요일에 이 학생은 부학장과 만나서 지금 하고 있는 교생실습을 철회하고 1년간 휴학을 하기로 정했다고 한다 – 이 날 나는 집에서 피크닉을 주최하느라 이 마팅에 참석할 수 없었다.
48. 45, 46, 47번의 모든 상황은 사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이 아니라 줄리아 선생님으로부터전해듣거나 부학장과 상의해서 알게 되는 내용일 뿐이다. 내가 직접 실습지도를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우리 전공 교수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49. 대학원 본부에서 연락이 와서 47번의 학생의 철회 신청을 기각한다고 했다. 이미 학기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너무 늦어서 안되다는 이유이다.
50. 49번의 상황을 우리단과대 부학장인 태미에게 알렸다.
51. 49번의 문제 때문에 태미는 학장과 면담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서 의논을 한 결과 다시 나와 줄리아를 만나야 한다고 한다.
52. 49번과 50번을 동료인 섀런과 케티에세 설명하느라 이메일 깨나 썼다. 나도 직접 알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자니, 이 바쁜 와중에, 영어가 꼬인다.
53. 인터넷 접속이 여의치 않은 줄리아와 이메일로 오늘 미팅 스케줄을 잡기 위해서 어제는 아이들 저녁을 먹이다 말고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수차례 주고 받아야만 했다.
54. 44번과 같은 이유로 오늘 2시에 있는 미팅도 참석하고, 또 레이아나 다른 교수들과도 긴급하고 긴밀하게 의논할 일들이 산적해있다.
55. 학기말이라고 학교에 한국인 교수들과 식사를 하다보니 8월에 있을 컴퍼런스 문제도 의논하게 되고, 이웃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우리 전공에 관심이 많다는 한인 학생을 소개받기도 했고, 기타등등 중대하지는 않지만 다소 신경을 쓰고 기억하고 다음을 약속해야 할 업무들이 생겼다.
56. 이번 토요일은 졸업식에 참석해야 한다. 아이들은 남편이 돌보아야 한다.
57. 오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학교에서 연수가 있고 수요일은 보험 갱신을 위한 약관 설명회에 참석하기로 되어있고 목요일은 아너스 펠로우쉽 회의가 있고 토요일에는 손님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주가 지나면 남편의 여름학기 강의가 시작된다.
58. 남편의 여름 학기 기간 동안에 두 아이들은 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남편의 도시락을 싸주고 아이들과 집에서 지내면서 전업주부 놀이를 하기는 커녕! 그 와중에 몇 가지 회의에 참석하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둘리양을 데리고 출근해야 하는 날이 있다.
59. 이건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내 두뇌의 일부분을 복잡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는다: 7월 초에 한국에서 골드미스 친구 둘이 놀러오기로 했는데 함께 캐나다 여행을 하자고 이야기가 되어서 여행의 일정과 숙박과 렌트카 등등을 미리 계획하고 예약해야 한다.
60. 두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 동안에 교육적이고 재미있게 지낼 계획을 세우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한아름 빌려다 놓았는데 이것도 좀 읽고 쓰고 공부할 것이 있다.
61. 그 밖의 장기적인 고민들: 케티는 1년 반 후에 은퇴하기로 공식 발표를 했다. 지금도 바바라 선생님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해 시간강사를 구하느라 허덕이고 있는데 케티마저 떠나면 우리 전공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지시와 요구가 작년부터 있었는데 지금도 정신을 못차리겠는 판국에 새로운 전공이라니! 가을 학기에 새로 생긴 어린이집에 인턴 실습을 보낼 의논을 해야 하는데 올해 졸업생들이 그 어린이집에 대거 취직을 했다. 신참 교사들에게 실습생을 보내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하하하…
이렇게 쓰고 보니 고작 60여개 밖에 안되는 문제로 그렇게 난리를 치고 화를 냈던가 싶다.
조금 전에 섀런이 와서 함께 스케줄을 다시 조정할 의논을 하고, 점심 시간이 끝나면 케라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비서들은 출퇴근 시간과 점심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이렇게 급한 일이 터졌을 때에는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시간 동안 나도 점심이나 먹어야겠다.
다음세대 원고는 언제 쓸 수 있으려나? 이번 주 안으로는 보내주어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피크닉에서 찍은 사진도 학생들에게 보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