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그레이 제 2장: 서로 다른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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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과 친구들의 소설 코드 블랙은 40개의 챕터 (우리 말로는 장 이라고 번역함) 로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 챕터는 먼젓번 챕터와는 다른 상황 혹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데, 이는 독자들의 지루함을 없애고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코난군이 글쓰기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은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글쓰기 전략은 순전히 자신이 읽었던 책에서 보고 배운 것이다.

코드 블랙의 제 1장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3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다음인 제 2장은 프란츠 히틀러의 독일 집무실과 그 옆 방의 회의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또한, 처음 일곱 챕터는 코난군이 썼고, 그 다음 두어 챕터는 친구인 다른 아이가 썼는데, 이야기를 서술하는 관점도 바뀐다.

즉, 코난군이 쓴 챕터들은 딜런 이라는 아이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되고, 그 다음 챕터들은 와이엇 이라는 아이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이후에는 또다른 아이가 쓴 챕터들이 이어지는데, 거기에서 화자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사실, 이 저자들의 부모나 아이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각 주인공이 저자들 중 누구를 가리키는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야기의 초반부를 이어나가는 딜런은 여섯 명의 아이들 중에 리더격이고, 그 아이는 바로 우리 코난군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 다음 화자인 와이엇은 아마도 코난군의 친구 타미를 모델로 하는 것 같으며 (타미가 그 부분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그 다음 화자인 어네스트는 코난군의 오랜 친구 소렌이 모델이고, 소렌이 쓴 부분임이 틀림없다.

 

이야기 속에서 와이엇은 캐나다 군인 롭을 구하러 갈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딜런과 갈등을 겪는데,우리를 구해준 고마운 롭을 반드시 구하러 가야 한다는 딜런의 의견과는 달리,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괴물 새에게 공격을 당하는 롭을 구하다가는 우리마저 목숨을 잃을 수 있고, 그것은 결국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준 롭이 원하는 바가 아니므로, 얼른 몸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나중에 와이엇의 관점 챕터 중에서 어느 순간 와이엇은 딜런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다.

평소에 늘 리더격인 딜런이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던 와이엇은, 여러 번의위험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사실은 딜런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딜런이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처럼 전쟁에 처한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고, 롭의 생명을 앗아간 적군에게 화가 난 것이지, 결코 함께 모험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와이엇은 딜런과의 진정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어네스트의 관점이 시작되는 챕터에서는 내 코 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을 받았는데, 어네스트와 딜런이 맨 처음 친구가 된 장면을 묘사한 것이 마치 6-7년 전 코난군과 소렌이 어린이집에서 처음친구가 된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녕? 난 어네스트라고 해"

"난 딜런이야. 우리 파워레인저 놀이할래?"

이건 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 가장 좋은 친구 딜런을 만나던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가장 행복한 추억이다.

(소설 코드 블랙에서 발췌함)

 

코난군과 소렌은 레인보우 라이더스 어린이집 레드룸 에서 처음 만났는데, 두 아이 모두 토이스토리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나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이 모두 토이스토리 캐릭터상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때 코난군은 무척 숫기가 없는 편이었는데 공통 관심사를 가진 친구 소렌과는 마음을 열고 함께 잘 어울렸다.

그 덕분에 소렌의 부모와 우리 부부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얼마 안되어서 버지니아 공대 박사과정을 졸업한 소렌의 엄마가 콜로라도 주로 직장을 잡아 이사가는 바람에, 우리는 코난군의 첫번째 친구와 영영 이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5학년에 올라가는 첫 날에 콜로라도로 이사갔던 바로 그 소렌이 다시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와서 심지어 코난군과 같은 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소렌의 엄마가 버지니아 공대로 직장을 옮겼고, 재택근무 및 전 세계를 돌며 출장 다니는 소렌의 아빠는 어디에 살아도 상관없는 직업이라서 그리 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아이들은 다시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함께 어울려 소설 쓰기 놀이도 시작한 것이었다.

 

이번 일에서 나는 공립학교 교사와 교장의 관점이 학부모의 관점과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느꼈다.

남편과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저자의 부모들은 이제 겨우 5학년인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들이 이렇게 길게 소설을 써내려 간다는 사실이 기특하기만 했다.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도 생각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서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설 첫 장 첫 문단에서 학교 건물이 폭탄에 맞아 다 부서지고 전교생과 선생님까지 다 죽었다는 것을 읽은 그린맨 선생님은, 나중에 털어놓은 말에 의하면, 이런 글이 외부로 유출되었다가는 자신이 교직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꼈다고 한다.

교장인 슬롱카 선생님도, 학교에서 언급조차 하기 껄끄러운 부적절한 주제이므로 절대 학교에서 이 글을 계속해서 쓰는 것을 허락할 수가 없다고 했다.

 

도대체 아이들이 쓴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기는 한 것인지, 한숨이 먼저 나왔다.

장장 32페이지 짜리 문서 중에서 가장 첫 페이지 가장 첫 문단만 읽고서, 거기에 폭탄이나 전쟁 같은 단어가 나온 것만으로 이 문서가 무시무시하고 부적절한 글이라고 판단을 하다니, 유치원생 어린이도 아니고, 너무한 것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아이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전쟁이 났다고 신이 난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문장을 읽고 제대로 해석은 한 것인지…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안네의 일기나 전쟁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문학작품들도 그 안에 사람을 죽이거나 총이나 대포를 쏘는 장면이 나오니 폭력적이라고 평가할 사람들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나눠준 컴퓨터로 이런 폭력적인 소설을 썼다는 것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학교에서 학교 시설물인 컴퓨터와 인터넷망으로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검색을 한다거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주식투자를 한다든지, 누가봐도 부적절하게 야동을 검색해서 보고 있다면, 그것은 절대 허락해서는 안될 일이고 벌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주요 교과목 중의 하나인 쓰기 과목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글쓰기를 권장하고 요구하고 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연습삼아 글쓰기를 더하는 것이 도대체 교육적인 활동이 아니면 무엇일까.

글 속의 배경이 – 내용이 아닌 배경! –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다른 배경으로 바꾸어 보도록 지도해 주지는 못할 망정, 몇 주일 간의 노력의 산물을 그 자리에서 당장 지우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부모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전직이 교사였고, 현재도 직업적 특성상 전현직 교사들과 함께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린맨 선생이나 슬롱카 교장의 호들갑스럽고 경박한 대처가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도 관료주의 층층시하의 하부에 위치한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자신의 직업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애시당초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소지는 깔끔하게 없애버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학생들을 존중하는 사상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대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확인할 것은 확인하고 잘못된 점과 잘못이 아닌 점을 가려낸 다음에 벌을 줄 것은 벌을 주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에서 교사와 교장은 학부모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았고,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아이들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2018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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