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명절음식 얻어먹은 이야기

미국식 명절음식 얻어먹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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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여년간 추수감사절 방학은 김장을 하는 나만의 풍습이 있었고, 김장을 한 다음에는 돼지고기 보쌈을 만들어서 갓 담은 김치와 함께 먹는 나만의 추수감사절 디너 파티를 해왔다.

그런데 올해에는 이사를 위해 집단장을 하느라 김장을 담을 처지가 못되어서 김장을 생략하고 김치는 조금씩 때마다 담아먹기로 했다.

 

해마다 코난군의 생일은 보통 추수감사절 하루나 이틀 전후에 들어있어서 (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의 네번째 목요일이다. 12년 전인 2007년의 네 번째 목요일은 11월 22일이었고, 그 날 코난군이 태어났다.) 친구를 초대하는 파티를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대부분 명절을 쇠러 조부모님댁으로 가거나, 집으로 친척 손님들이 오셔서, 파티에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추수감사절이 늦어져서 코난군의 생일이 추수감사절 전 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덕분에 친구들 네 명을 불러서 24시간 파티를 할 수 있었다 🙂

그 날 초대했던 아이 중에 한 명인 조조(집에서 가족간에 부르는 별명임 :-)네 가족이 우리 가족을 오늘 추수감사절 식사에 초대해주었다.

조조네 아빠와 엄마는 버지니아 공대 교수인데, 명절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학생들(주로 외국에서 유학온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서 추수감사절 음식을 나눠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어차피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김에, 코난군 파티에 대한 답례도 할 겸 해서 우리를 부르기로 한 것 같다.

조조의 엄마는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절반의 한국인인데, 텍사스에 살고 계시는 친정 어머니가 김치나 김밥 불고기 등등의 한국 음식을 요리해주곤 하셔서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 다음에 새집을 지어서 이사한 후에 한국음식으로 한 상 차려서 조조네 가족을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수감사절의 대표적인 음식인 칠면조를 두 가지로 요리를 했는데, 하나는 찜통 같은 오븐에 넣고 천천히 익혀서 육질이 아주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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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한 가지는 사과나무 등 향이 강한 나무조각을 넣고 연기를 내어 그을리듯 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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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리는 위의 요리에 비하면 고기가 단단해서 쫄깃한 식감이 있고, 나무 향이 양념과 함께 잘 스며들어 맛과 향이 좋았다.

보다시피 칠면조는 통닭에 비하면 서너배는 될 정도로 큰 크기인데 그걸 두 마리나 요리를 했다!

우리 가족은 칠면조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크기에 압도되어서 저걸 언제 다 먹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한 번도 요리를 직접 만들어본 적이 없는데, 조조네 엄마는 손이 매우 크다 🙂

두 부부의 학생들을 초대하는데다, 그들만의 자녀가 무려 아들만 네 명이니, 칠면조 두 마리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게 요리해서 차려내는 것 같다.

 

스터핑 이라고 부르는 이 요리도 추수감사절 대표 음식인데, 원래는 칠면조를 구울 때 뱃속에 각종야채와 식빵조각 등을 채워넣고 함께 굽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면 속까지 잘 안익을 수도있고, 조리할 때와 먹을 때 번거로우니 아예 따로 요리를 한다.

스터핑 stuffing 이라는 말 자체가 ‘속을 채움’ 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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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는 탄수화물을 든든히 먹어줘야 흐뭇하니 🙂 으깬 감자와 마카로니앤치즈도 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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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빈 캐서롤 위에는 양파튀김을 얹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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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은 달큰하게 양념해서 오븐에 익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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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에 갖가지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넣어 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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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도 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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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은 더 추가하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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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썰어주는 칠면조 고기 덩어리는 크랜베리 소스와 함께 먹는다.

미국식 명절음식 얻어먹은 이야기

 

다른 요리는 간편하게 냉동식품을 데우거나 인스탄트 재료로 조리한 것이어서 어디선가 많이 먹어본 맛이지만 🙂 칠면조 고기는 정말 맛이 좋아서 두 번이나 덜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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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알콜 섭취도 하라고 준비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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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안주 내지는 군것질 거리로 치즈와 크래커도 내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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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도 이렇게나 많이 준비한 조조네 엄마를 우리 동네 큰손으로 임명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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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라고 하다보니 둘리양의 친구 주주와 헷갈리는데, 조조의 본명은 조사이아 이고, 아들 넷 중에 가장 막내둥이라서 애기 부르듯 조조 라고 부른다.

네 명의 아들들이 모두 두 살 터울이어서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는 첫 아이부터 앞으로 십수년간 대학 등록금 대느라 허리가 휘겠다며 조조네 아빠가 엄살 섞인 농담을 했다 🙂

조조네 외할머니는 하나뿐인 딸네 집에 다니러 오실 때 마다 한국음식을 산더미처럼 해주신다고 하니 – 사위까지 장정 다섯 명을 먹이려면 그 정도 분량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 아마도 조조네 엄마의 큰손 기질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나보다.

테이블 구석에 놓인 메모를 보니, 참 많이 준비하고 수고를 많이 했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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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내가 차리지 않고 남의 손으로부터 한 상 거하게 얻어먹으니 참 행복했다.

 

 

 

2019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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