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간은 미국 교육 연합 (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NEA) 이 지정한 온나라 독서 주간이다.
영어로는 Read Across America 라고 하는 이 거국적인 행사는 매년 이맘때 닥터 주스 (Dr. Seuss)의 생일 즈음으로 지정하여 공립학교에서 지키고 있다.
둘리양의 초등학교에서는 이번 주간 동안에 요일별로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는데, 수요일인 오늘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캐릭터처럼 복장을 하고 등교하는 날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둘리양이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무척 많지만, 나는 장롱 속에 있는 활용 가능한 자원을 떠올리며 몇 가지를 제시했다.
그런데 닥터 주스의 유명한 책 모자속의 고양이 (The Cat in the Hat) 모자를 찾아보니 집정리를 하면서 갖다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또 어떤 캐릭터를 고르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둘리양이 주주는 아래의 요정 캐릭터를 골랐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요일에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 복장으로 입고 모여서 교장 선생님을 모셔다가 책을 읽어드리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반에서 가장 모범생인 둘리양과 주주가 가장 먼저 교장 선생님께 책을 읽어줄 차례를 맞이하게 된다고도 했다.
그래?
그렇다면…
집에 있는 것으로 이래저래 재활용해서 떼우고 넘어가려던 계획을 변경했다.
교장 선생님 앞에서 담임 선생님 체면도 세워드리고, 또 교장 선생님도 사진 한 장 멋있게 찍어서 학교 홍보에 사용할 기회도 만들어 드리고, 무엇보다도 둘리양와 주주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노력을 좀 더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
가장 먼저 주주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둘리양과 주주의 캐릭터 복장을 잘 맞추어 입히기로 약속을 했다.
둘리양은 위의 요정 그림에서 요정이 안고 있는 하얀 고양이 복장을 입기로 했기 때문에, 만약에 주주가 마음을 바꾸어 요정 복장을 안입고 온다면 둘리양 혼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마침 원래 면담이 예정되어 있던 학생이 다른 날로 스케줄을 바꾸어서 이 날 오전에 시간이 비는 덕분에 둘리양을 위한 쇼핑을 할 시간도 생겼다.
하얀 고양이처럼 보이는 보들보들한 하얀 윗도리와 흰색 쫄바지를 사는데에 25달러를 쾌척했다!
옷장에서 아무거나 꺼내 입히려던 원래 계획에 비하면 이 얼마나 과감한 투자인가!
ㅋㅋㅋ
세일하는 고양이 귀 모양 머리띠와 꼬리로 사용할 흰색 털 달린 철사는 모두 합해 5달러 정도 지불했으니, 30 달러로 이 모든 복장 준비가 완성되었다.
저녁에 쇼핑한 것을 둘리양에게 입혀보고, 연습삼아 고양이 수염도 그려보았다.
또한, 주주 엄마에게 한 번 더 당부하는 메세지도 보냈다.
오늘밤 주주는 아빠네 집에서 자고 다음날 학교를 가니, 주주 아빠에게 이 사진과 내일 입힐 복장을 당부하는 메세지를 보내겠다는 답이 왔다.
다음날 아침, 둘리양은 깨울 필요도 없이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등교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고양이 얼굴 화장을 지울 화장솜까지 다 챙겨두었다 🙂
고양이 꼬리는 오늘 학교 행사를 마치면 오빠인 코난군에게 양도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우리집 아이들은 둘 다 이렇게 보들보들한 촉감을 무척 좋아해서 봉제 인형은 물론이고, 담요나 장난감도 이런 질감의 것이 많다.
코난군은 털 달린 철사를 가지고 무언가 장난감을 만들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아침 내내 고양이 흉내를 내며 놀던 둘리양…
어항 속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늉을 했다 🙂
고작 30달러 지출해서 아이들이 이렇게나 행복해 하고, 또 아직까지 5월까지는 쌀쌀해서 학교 갈 때 입기 좋은 옷 한 벌이 생겼으니, 이만하면 성공이다!
조금 전에 둘리양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역시나 내 예상대로 이런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 홈페이지에 자기 사진 하나를 그럴싸한 분위기로 올릴 수 있어 좋았고, 메도우스 선생님은 교장에게 체면 한 번 잘 세워서 좋았고, 둘리양과 주주는 단짝 친구끼리 셋트로 코스튬을 맞추어 입어서 행복했고…
모두모두 좋았던 날이었다.
2020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