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싸면서 지하실에 있던 냉동고를 비워보니 국물내기 멸치가 여러 봉지 나왔다.
한국에서 우리집으로 오는 손님들이 마른 미역, 김, 다시마와 더불어 가져다준 품목이다.
예전에는 멸치와 말린 다시마를 사용해서 육수를 만들어 국물요리를 하는데 썼지만, 최근에는 엠에스지 (즉, 다시다 및 비슷한 종류의 조미료) 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연구 발표를 본 이후로 간편하게 쇠고기 다시다와 멸치 다시다를 사용하고 있어서 멸치가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마른 멸치로 육수를 내고나면 국물이 빠져버린 멸치 건더기는 버리게 되는데 그것도 어쩐지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멸치를 통째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찾다가 82쿡 히트 레서피 게시판에서 멸치무침 반찬 만드는 법을 발견했다.
이 요리의 최대 난관은 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떼어내는 손질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입 안에서 껄끄러운 느낌을 지우기 위해 멸치의 가시도 일일이 떼어냈는데, 시간은 오래 걸려도 힘든 작업은 아니어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멸치를 손질하니 500그램 한 봉지를 힘들지 않게 손질할 수 있었다.
양념은 오징어진미채 무침과 흡사한데, 고추장에 설탕, 마늘-대신에 마늘가루, 참기름을 섞어서 만든다.
82쿡에 나온 분량대로 양념을 만들었더니 맛이 좀 강한 것 같아서 멸치를 두 배로 더 넣었다.
우리 가족 중에 멸치를 잘 먹는 사람은 나 뿐이고, 둘리양이 생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고추장 양념이 매워서 못먹을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이건 모두 내 반찬이다 🙂
양이 많으니 조금 덜어서 아이들 미술 선생님께 나누어 드렸다.
흰밥 한 숟가락 뜨고 멸치무침 몇 점을 얹어서 먹으니 무척 맛이 좋았다.
미술 선생님도 맛있다며 고마워했다.
냉동고에 아직 남아 있는 멸치도 이렇게 반찬으로 만들어 먹으면 낭비없이 잘 소비할 것 같다.
다음 냉장고 정리 반찬은 엉터리 마파두부이다 🙂
냉동실에서 꺼낸 다진 돼지고기 반 팩 – 아마도 예전에 만두속에 넣고 남은 것인가보다.
그리고 냉장고 문간에서 오래오래 서있었던 매운돼지갈비 양념 반의 반의 반 병…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주주엄마가 한아름 가져다준 파…
그 모두를 섞어서 하루 정도 재운 다음 후라이팬에 볶다가…
두부 한 모를 깍둑썰기해서 투척하고 조렸다.
밥 위에 얹으니 생김새는 마파두부와 무척 비슷해 보이지만, 맛은 떡볶이 맛에 더 가깝다.
혀를 아리게 만드는 마라(=산초)가 들어가지 않아서 남편과 아이들이 잘 먹었다.
며칠 전에는 주주 아빠가 뒷마당에서 직접 기른 주키니를 두 개나 따다 주었다.
그런데 어찌나 큰지, 찌개에 넣으면 어쩐지 좀 질길 것 같기도 하고, 두 개나 되는 것을 언제 다 먹나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주키니를 한꺼번에 많이 사용하는 요리를 찾아내었다.
주키니 브레드는 직역하면 주키니 빵이지만, 사실상 빵보다는 달달한 케익이라 불러야 맞는 것 같다.
주키니는 잘게 썰어서 두 컵이 들어간다.
계란 3개, 설탕 2컵, 식용유 1컵, 바닐라 엑기스 1숟갈을 넣고 섞는다.
밀가루 3컵, 베이킹파우더 1숟갈, 베이킹소다 1숟갈, 소금 1숟갈을 넣고 섞는데, 집에 있는 통밀가루를 넣었더니 갈색 반죽이 되었다.
다소 딱딱한 반죽이지만, 주키니의 수분이 더해지면 케익반죽 정도의 점도가 된다.
잘게 썬 주키니 2컵, 잘게 부순 호두 1컵을 넣고 섞어서 파운드케익 틀에 부으면 두 개가 나온다.
화씨 325도에서 40분간 굽고 이쑤시개로 찔러보니 아직도 묻어나와서 10분을 더 구웠다.
총 50분간 구운 것이다.
식힌 다음 썰어보니 주키니의 초록색이 아직도 파릇파릇 보인다.
호두의 고소한 맛과 주키니의 수분이 촉촉하게 어우러져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오늘 이사를 해서 공식적, 물리적 이웃이 된 에스군네 가족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
2020년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