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중2병을 위한 변론

중2병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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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되면서 코난군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글로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코난군을 응원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코난군은 한국에서 세는 나이로 열다섯살, 중학교 2학년, 미국 학제로는 7학년이다. 키가 엄마보다 커졌고, 신발은 아빠보다 큰 것을 신게 된지 오래 되었다. 덩치는 어른에 가까워졌지만, 생각과 행동은 귀여운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만큼 성숙하지도 못했다. 이처럼 애매한 나이를 한국에서는 중2병 이라고 부른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기를 청소년기라 정의하고 인정한 것은 이제 고작 100년 정도 밖에 안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덩치만 자랐다고 어른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원시시대라면 사냥이나 전투 활동에 어른과 똑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서도)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나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수준은 넘어섰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나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가지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컴퓨터 게임만 너무 열심히 하고 다른 일은 소홀히 하는 것이 우려되어서 코난아범은 코난군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컴퓨터 게임 말고 다른 무엇이든 즐겁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면, 그 일을 하는 시간 만큼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운동, 독서, 코딩, 악기 연습, 그림그리기, 등등 그 무엇이라도 코난군이 재미를 가지고 열심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코난군은 그 제안을 받은 지 한 달이 되어가도록 아직도 몰두할 그 무엇을 찾지 못했다. 이럴 때 “꼰대” 부모가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요즘 애들은 호강에 겨워서 부족함을 모르고 그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 는 등의 비판일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닌가… ㅎㅎㅎ 우리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온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코난군의 세대를 우리의 시선으로만 보면서 부족함이 없다, 풍요롭다, 호강에 겨웠다, 하는 등의 평가를 쉽게 해서는 안된다. 나는 코난군의 “아돈노~” 현상을 그가 처한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딱히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뭘 물어봐도 “아돈노~” 라고 대답하는 것은 우리집 코난군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풍족한 아이라서가 아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그 새로운 것이 무엇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각각의 새로운 그 어떤 것을 자세히 알아야 내가 그것에 몰두할지 아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아직 어린 아이라면 그런 자세한 부분을 알지 못해도 섣부르게 덤빌 수 있다.

코난군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 단독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가자고 졸랐던 일이 있다. 주택을 소유한다는 의미나 부동산의 가치 같은 것은 전혀 모른 채, 그냥 자기 눈에 커보이는 건물과 멋져 보이는 놀이터를 부러워해서 가졌던 욕망이다. 월세를 내고 사는 아파트보다도 뒷마당이 너른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모르고, 아빠가 정성껏 직접 지어준 트리하우스 보다도 아파트 놀이터가 더 재미있는 곳으로 보이는 유아기 아동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그 정도에 불과하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예는, 부모가 이혼을 한다는 것이 자기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더 많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고 주말마다 놀러갈 집이 있다는 점이 부러워서, 나에게 “엄마랑 아빠는 언제 이혼할거야?” 라고 기대에 찬 질문을 한 적도 있었다.

철모르던 시절에는 갖고싶은 것도, 하고싶은 일도 많았지만, 지금의 코난군은 무작정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적의 목표를 세우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학교라도 갈 수 있었다면 친구들이 하는 일, 가진 것을 보고, ‘나도 갖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은지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 온라인상으로 만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바깥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회생활이다. 그런 와중에 학교에서는 온라인과 대면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동시에 가르치기 힘든 교사가 실수로 과제 채점을 빠뜨리거나 출결 확인을 잘못해서 코난군의 성적 기록에 오점을 남기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자기 잘못도 아니지만 아빠에게 해명을 하고, 아빠와 함께 의논해서 교사에게 연락을 취하고 정정을 요청하는 일을 해야 하는 코난군이 안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컴퓨터 게임을 무한정 허용하거나, 학교 성적이 어떻게 기록되든 상관하지 않고 손놓고 있을 마음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늘 살펴보고 단속하고 실수가 있었다면 바로잡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자세한 지도를 하고, 동시에 이해와 격려의 말도 꾸준히 해주어야겠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지당한 일이라 굳이 말로 표현해야겠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은 그렇다. 아직 전두엽이 발달하고 있는 청소년기 자녀에게는 말로 표현하는 사랑과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귀로 들려오는 말,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 눈으로 보여지는 미소… 그런 통합감각적 자극이 사춘기 아이들의 인지발달과 정서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덩치가 다 컸으니 어른이라 착각하고 어른에게 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자! 라고 늘 다짐한다.

바이올린 대회에서 받은 상장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장이라기 보다는 증명서(certificate) 인데 금은동 중에서 금 레벨의 평가를 받았다는 증명이다. 심사위원의 너그러운 평가였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타인으로부터 ‘너 잘했다’ 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청소년 자아개념 형성에 무척 좋은 일이다.

미국 보건당국이 조만간 12세 이상, 16세 이하의 아동에게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도록 허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둘리양이 해당하는 12세 이하의 어린이 백신도 9월 즈음에는 시작할 수 있을거라는 전망이다. 아이들에게는 안전 문제를 한 번 더 확인한 후에 접종하기 위해서 성인은 인구의 3분의 2가 접종을 받았지만 아이들은 이제서야 접종을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예방주사를 맞고나면 코난군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학생회 임원 일도 하고, 수학 시험에서 일등을 하거나,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지난 1년 간 하향세에 있던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겠지…

2021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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