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잘 하려면 역시 장비가 좋아야

요리를 잘 하려면 역시 장비가 좋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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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으로 이사한 후에 깨달았다. 손쉽게 다양한 요리를 잘 하려면 장비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하고 (속칭 “장비빨”), 그 장비를 늘어놓고 사용할 수 있는 충분히 넓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주방 조리도구들은 대부분 전에 살던 집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물론 몇 가지는 새로 구입했거나 쓰던 것을 처분하고 더 나은 성능을 가진 것으로 교체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에 살던 집에서 도구가 부족해서 요리를 못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새 집으로 이사를 오니 부엌 공간이 넓어져서 – 라기 보다는 집의 다른 공간이 충분히 넓어서 부엌을 오로지 음식 만들고 먹는 곳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 살던 집도 부엌장이 결코 적은 수납 공간이 아니었지만, 그 중에 상당 부분은 작은 공구, 전구, 전선, 등등 요리와 상관없는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조리 도구가 주방과 식당에 분산되어 보관되고 있어서 꺼내서 사용하는 것이 지금 집에 비하면 동선이 조금 복잡했다.

지금은 남편의 서재가 넓어서 그의 물건이 부엌에 보관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또한 넓게 배치된 부엌 수납장 안에 모든 주방기구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부엌을 떠나 식당으로 들어가 비좁은 식탁 사이로 돌아가서 수납장 문을 열고 조리도구를 꺼내는 번잡함이 사라졌다.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문짝 두어개만 열어보면 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요리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게 꽤나 큰 차이로 느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모든 조리 도구들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작업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전에도 가지고 있던 도구들이지만, 그걸 하나씩 꺼내오는 것도 번거로운데다, 한 가지 도구를 사용하고나면 그걸 치워야 다음 도구를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었는데 반해 지금은 필요한 모든 도구를 다 꺼내놓고 사용해도 충분한 공간이 있다. 심지어 요리를 하느라 번잡한 와중에도 다른 가족이 한 켠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공간이다.

전기밥솥 보다도 더 큰 인스탄트 팟

지난 주말에 초대한 아트 선생님 부부를 대접하려고 팥양갱을 만들었다. 한국 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의 남편에게 한국 디저트를 맛보게 하고 싶었고, 또 코난아범이 팥양갱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자면 팥을 충분히 불린 다음 오래오래 삶아야 하고 거피를 해야 하는 등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좋은 주방 도구를 잘 활용하니 무척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팥껍질도 분해하는 칼날을 갖춘 바이타믹스 블렌더

팥은 불릴 필요없이 인스탄트 팟에 조리하고, 삶은 팥은 거피 같은 것 할 필요없이 바이타믹스 블렌더에 갈았더니 간편하게 팥앙금이 만들어졌다. 인스탄트 팟은 고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질긴 고기를 연하게 만들고 팥처럼 단단한 곡물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바이타믹스는 블렌더의 상표인데, 강력한 모터와 품질 좋은 칼날 덕분에 사과껍질이나 콩이나 팥의 껍질을 흔적도 없이 갈아버린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덕분에 팥앙금이나 콩국을 아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팥앙금만 있으면 양갱을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한천 가루를 물에 불렸다가 끓인 다음에 앙금을 넣고 섞어서 굳히면 된다. 맛을 더하려고 까서 익혀서 포장된 밤을 추가했다.

양갱을 굳힐 때 큰 사각통에 담아서 나중에 작게 썰어도 되지만, 보관하고 있던 초코렛을 담았던 포장재가 있어서 갖가지 모양을 내려고 활용해 보았다.

원래 담겨있던 초코렛 만큼 예쁜 모양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의 다양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보고 배운 것은, 설탕을 생각보다 아주 많이 넣어야 가게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단맛을 낼 수 있다는 점과, 팥을 너무 많이 넣기 보다는 한천의 비율이 높아야 탱글탱글한 식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요약하자면, 공장에서 만든 양갱맛에 익숙해진 우리 입맛을 만족시키려면 좋은 재료인 팥은 적게 넣고, 비교적 저렴한 재료인 한천과 설탕을 많이 사용해야 한다 🙂

양갱은 디저트였고 메인과 사이드 요리로는 샤브샤브, 앙념치킨, 떡볶이 등을 만들었는데 부엌이 넓어서 그 모든 요리에 필요한 주방기구를 꺼내서 사용하기 위해 작업대를 치울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시간도 절약되고 심리적으로 번거롭지 않아 노동력도 절감되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를 잘 하려면 장비빨 더하기 장비를 운용할 넓은 공간이 필수이다.

2021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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