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성적처리를 한 지 2주일이 지났고 실질적인 나의 겨울 방학은 3주가 지나고 있다. 성적처리 하기 전 일주일 동안에는 강의가 없고 학생 수가 적어서 채점과 평가를 일찍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둘리양의 스웨터 뜨개질을 하면서 넷플릭스로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보았다. 요즘 넷플릭스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고, 뜨개질을 하느라 화면을 계속 쳐다보지 않아도 한국어 대사를 들으면서 장면을 유추할 수 있어서,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영화를 많이 보게 되었다.
공유와 배두나가 주연을 맡은 우주 좀비 드라마 (내가 명명한 장르이다 :-)) 고요의 바다는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지원한 총 8부작이다. 공유가 작전 지휘 대장이고 그 휘하에 우주선 조종사, 과학자, 등등의 대원이 달에 있는 발해기지로 가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비밀과 위험을 보여주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침대에서 나오기 전에 아이패드로 밤사이 소식을 보려고 미씨유에스에이 페이지를 열었는데 거기에 누군가가 고요의 바다 드라마가 방금 넷플릭스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댓글을 읽어보니 출연자들이 대단한 사람들이고 또 무시무시한 미스터리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어차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 휴일 아침이라서 그 자리에서 드라마를 플레이했다. 한 편이 40-50분 내외이고 전체 분량이 8회라서 부담없이 시청을 시작한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흔히 보던 것인데, 한국 드라마에서 얼마나 실감나게 재현을 했을지 궁금하고 염려가 되기도 했다. 한 편 생각해보면 좀 우습기도 한 것이, 실제로 우주선을 타본 적도 없으면서 “실감나게” “사실적으로” 연출했다는 판단은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아마도 기존 헐리우드 SF 영화속 장면과 비슷해 보이면 그것이 사실적이라고 편견 가득한 평가를 하는 것일게다.
3편까지 보다가 일어나서 가족들 아점을 차려주고, 또 두어 편 보다가 집안일을 좀 하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하루만에 전편 시청을 완료했다. 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달 기지의 장면은 어색하지 않았고 (라기 보다는 않게 느껴졌고 ㅎㅎㅎ),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수도 있는 암울한 지구의 생활상이 충격적이지만 재미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다. 그런데 왜?!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드라마가 망작이다, 연기가 엉망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챙피한 수준이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없다… 등등 끝도 없는 비판의 글이 올라오는 것일까? 그것도 과연 8부작 드라마 전체를 다 시청하기는 했는지 궁금한 시각에 – 부지런히 시청한 나도 거의 하루가 걸렸는데, 드라마가 개봉한 시각으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시간 안에 어찌 그리 비평을 잘도 하는지…
고요의 바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지옥], [오징어게임], 등의 드라마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있었다. 그 때는 이런 풍조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인터넷 게시글을 읽고 정말로 그 드라마가 형편없는 졸작인 줄 알고 시청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속지 않는다. 신작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올라오는 감상후기는 대부분이 악평이고, 제대로 시청한 후에 쓴 후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요의 바다 시청을 마친 다음에는 미국 영화 돈 룩 업을 보았다. 요즘은 넷플릭스 덕분에 집안에서 최신 영화와 지나간 드라마를 간편하게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이 영화도 출연진이 화려하고, 또 우주에서 날아온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이야기가 먼저 본 고요의 바다와 약간 통하는 면이 있어서 이어서 시청하게 되었다.
변두리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이 발견한 혜성이 6개월 후에 지구에 충돌하게 될 것이고, 그 충격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인류가 멸망할거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그 위험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고, 정치가는 자신의 세력 다짐에, 재벌은 자신의 돈벌이에 그 지구의 위기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이 이야기에 혜성 충돌 이야기 대신에 지구 기온 변화나 코로나19 같은 사건을 대입해서 본다면 그것은 SF (Scientific Fiction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라 현실 다큐멘터리가 된다.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가 재미있긴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 문제를 드러낸 다소 무거운 작품이었다면, 다음에 쓸 드라마 두 편의 후기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시골 중학교 배드민턴 팀 아이들이 이루어내는 스포츠 성공 스토리는 이전에 수많은 만화,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식상함을 제거하고 더 큰 재미를 더했다. 주인공 아이들이 우리집 코난군과 비슷한 또래로 나오는데,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한다거나, 울쑥불쑥 화를 내다가도 단순하게 풀어지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모습이 실제 중학생 남자 아이들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갯마을 차차차는 2004년에 김주혁과 엄정화가 주연으로 제작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이라는 무척 긴 제목의 영화를 드라마로 다시 만든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동네 어디서든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홍반장의 로맨스 스토리인데, 드라마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가 영화에서보다 더 잘 어우러져서 조연들의 스토리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의 극중 배경은 강원도 해안 갯마을이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포항시 청하면 이라고 한다. 나의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이 사셨던 송라면에서 가까운 청하면은 내 어릴 때 기억으로는 송라면보다는 번화한 마을이어서 우리 할머니는 송라 5일장 보다도 청하 5일장에 쇼핑가시기를 선호하셨다. 이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얻어서 지금 청하면에는 드라마를 촬영했던 셋트를 그대로 보존하고 투어버스까지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 1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