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은 남편의 56번째 생일이었다. 2월 15일 내 생일을 시작으로 연달아 둘리양의 생일, 그리고 남편의 생일이 이어진다. 그 전후로 발렌타인스 데이도 있고 나의 아버지 생신도 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내 남편 생일을 끝으로 생일 계절을 마치게 된다. 올해에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그 자못 흥분되고 기쁘지만 다소 스트레스까지 포함되는 기간이 며칠 더 길어졌다.
올해 남편의 생일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한국에서 잊지 않고 축하해주시는 부모 형제들과 짧은 통화도 하고, 마트에서 사온 치즈케익에 촛불을 켜서 아이들과 함께 축하 이벤트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물리도록 먹었던 나쁜 기억 때문에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 미역국 끓이기는 생략했다. 생일 선물 고르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물건을 고르고 구입하는 데에 무척이나 까다로운 사람이어서 그의 마음에 흡족하게 드는 선물을 고르기가 어려웠고,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지불하는 일을 남편 모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집 온라인 쇼핑은 남편의 아마존 아이디로만 할 수 있다) 아이들도 아빠의 성향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쇼핑의 한계를 잘 알아서, 우리는 (남편 빼고 아이들과 나) 틈나는대로 의논을 했다.
전자제품이나 운동용품은 아빠가 직접 성능과 가격을 검색해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소비이니, 선물 후보에서 제외시켰다. 아빠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사는 것이 좋겠다고 의논을 모았다. 그리고 운동할 때 입을 수 있는 티셔츠를 직접 꾸며서 선물하기로 했다. 선물의 내용이 부실하니 포장이라도 근사하게 하자고 했고 집안에 있던 빈 상자에 선물을 넣고 포장지를 멋지게 휘둘렀다.
즐거운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해처럼 떠돌았지만, 이례적으로 높았던 사전투표율과 재외국민 투표율에 기대어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리라 믿었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에도 남편은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민주당의 승리를 믿었다. 그러나… 박빙으로 승부를 다투던 개표 상황이 마침내 끔찍하게 싫은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사리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표를 주지 않을 것 같았던, 무당의 말이나 듣고, 자신보다 더 한심한 마누라(라기엔 너무나 수상한 그녀)와 장모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며, 공약이랍시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어대던… 그 자가 어떻게 투표에서 이길 수 있었는지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지지한 국민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도 뒤통수를 가격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9년 전 박근혜의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
허망하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박근혜 당선 경험으로 미루어 부정개표 투표 조작 같은 일을 의심해봤자 소용없는 일이고 마음의 상처만 더 깊어질 뿐이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처럼, 나는 어차피 미국 시민이지 한국 국민이 아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안락하면 그뿐이다, 윤석열이 그 어떤 엉터리 대통령질을 해도 내가 직접 받을 피해는 없다… 이런 생각을 계속해서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면 할수록, 이제 곧 정치판에서 다시 보게 될 장제원, 나경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신났다고 좋아할 진중권, 기레기,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부끄러움 없이 나쁜 짓을 할 정치검사들, 후쿠시마 농산물을 신나게 팔아먹을 일본놈들… 퇴임후의 명예를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된 문재인 대통령, 일가족이 풍비박산이 났지만 앞으로가 더 힘들 조국… 이런 얼굴들이 더욱 떠오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절반의 사람들은 왜, 무슨 근거로 윤석열에게 표를 주었을까? 혹자는 세대차이라고 하고 혹자는 지역차이가 여전히 남아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 지역과 나이와 사회계층 – 차이를 아우르는 그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다. 극소수의 상류계층 사람들은 국힘당과 윤석열의 정책으로부터 직접적인 이득을 얻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지지한다. 예를 들면 종합부동산세금을 낼 정도로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나 사학법을 개선하지 않고 악법으로 남겨두어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사학재단을 소유한 사람들 (나경원과 장제원도 사학재벌), 검사와 기레기 등이 국힘당을 지지하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지만 납득은 충분히 된다.
그렇다면 이익이라고는 하나도 얻지 못하는 대다수의 국힘당 지지자들은 왜 지난 수십년 동안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하고 있을까?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마약중독이나 도박중독 알콜중독자들의 행태와 비슷한 양상으로 사고판단을 하는 것 같다. 한국 드라마든 미국 영화든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각종 중독자들은 주인공을 무척이나 괴롭힌다. 잠시 제정신이 돌아오면 막심하게 후회를 하고 주인공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과 화해를 하지만, 얼마못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마약/도박/술에 손을 뻗어 주인공과 시청자가 한숨 말고는 뱉을 것이 없는 상황을 만들곤 한다. 그들이 다시 마약/도박/술로 돌아가는 순간에는 그 어떤 정보나 조언도 먹히질 않는다. 오히려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곤 한다.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술을 안마실 수가 없다든지, 마지막으로 도박을 한 탕 해서 큰 돈을 따면 도박빚도 갚고 더이상 도박을 하지 않을 수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재명이 부도덕하고 부족하다고 했다. 악의적으로 편집된 녹음본을 가리키며 가족에게 쌍욕을 하는 나쁜 놈이라고 하고, 공익을 위해 일하다가 얻은 죄명 세 개와 음주운전 한 개를 가지고 전과4범의 범죄자라고 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조카를 변호한 사람이어서 살인자와 다름없다고도 하고, 공금으로 샌드위치를 사먹고 공관을 불법개조해서 사용하는 부인을 둔 남편이라고도 했다. 샌드위치와 불법개조는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지만, 중독자들은 “그래도 어쨌든” 이재명은 나쁘다고 한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마누라와 장모가 수백억을 사기친 것이 십팔만원 샌드위치 사먹은 것보다 가벼운 죄인가. 공정하게 수사해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윤석열 당시 담당 검사) 수사는 커녕 커피까지 타주면서 죄를 눈감아주는 것은 공공의료원 설립을 위한 시위(특수공무집행방해)에 비해 잘 한 짓인가.
힐빌리 엘레지 영화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마약에 빠져서 명문대 로스쿨을 고학으로 다니는 아들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로펌 입사 면접을 가야 하는 날에 밤샘운전을 해서 엄마를 시설로 옮기는 일을 하게 만든다. 제정신일 때는 아들에게 장하다 미안하다 말하지만 잠시 후에 아들이 먹을 것을 사러 나간 사이에 화장실에서 주사기를 자기 팔뚝에 꽂으려다 아들의 만류에 몸싸움을 한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마약중독자는 대견한 아들의 앞날을 자기가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약물을 주사한다. 속이 터질 노릇이다.
6월 민주항쟁 이후에 기껏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였다. 이명박의 지주머니 채우기를 그렇게 당하고도 다음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나라의 국격을 얼마나 높혔고, 코로나19로부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지켰는지, 얼마나 큰 경제 성장을 이루었는지, 기레기 때문에 아무리 잘 안알려져서 몰랐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윤석열을 뽑을 수가 있을까… 싶지만, 그들은 마약 중독자 도박중독자와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설명이 된다.
그저 내가 마약중독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내 아이들은 어리석은 중독자가 되지 않도록, 깊이 사고하고 현명하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겠다.
2022년 3월 10일
한명* 선생님이 내게 보내주신 자작시를 올린다.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엄청나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엄마는 뜬금없이 상여 노래를 들으신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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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20220309 (폭력 오늘, 민주의 폭력)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은 일
원하지 않는 외부 세계
담고 또 담으며 동행할 수밖에 없어
피의 응시로 얼룩이던 경험 그림자 드리워도
민주의 의식으로 큰 물결의 숨길에 끄덕여도
절반의 미국에 충격과 억지였던 도널드 오리처럼
2022년 한반도 뽑기의 진흙탕 끝 바람이 내게는 정신세계 가격해 온 어퍼컷 아픔 폭력이라고
민주의 꽃 잔치 축제가 빨갛게 철철 아렸다고
호올로 가만히 적어 둔다.
‘쿨’ 하지 못하여 위로받고 싶은 한숨
쓰잘머리 없이 나부껴 까닭 모를 심력 소모
고귀하고 위대할 수 없을까?
막막한 물음이
포오옥 다독여지고 펼쳐 열 위안의 날로 가서
물길 깨끗해지고 공기 맑아져
민중 숨결 거칠고 까매지는 괴롬 없이
이 통증 헛것이었다고 5년의 깃발 나부낄
예순다섯의 시공으로 휘달리고픈
지푸라기 희망이라도 품어야 숨 쉬어질
고통이다.
2022년 3월 10일 목요일
원하지 않은 대통령의 당선,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겼던 인간을 우리 국민은 대통령으로 뽑았다.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수용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게 민주주의요, 성숙한 민주 의식이다. 이를 알면서도 이 대통령을 받아들이는 게 폭력과도 같다. 원치 않는 외부 세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폭력이 나를 타격하는 느낌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내게는 폭력이라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