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관 앰프를 따라 만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한때 음악 감상을 즐겨해서 오디오에 관심을 좀 갖고 있었고, 우연히 잡지에서 본 ‘쉽게 풀어 쓴 스테레오 기기 제작’ 이란 책도 사서 읽게 되었다.
가난한 대학원생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여유가 생기면 꼭 한번 도전해 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학위를 받고 포스트 닥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마음 먹었던 앰프 만들기에 도전했다. 갖고 있던 책의 오디오 회로는 반도체를 이용한 것인데, 막상 도전하게 된 것은 반도체가 아닌 진공관 앰프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진공관 앰프의 소리가 더 따뜻하고 풍부하게 느껴진다고 하니, 한번도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회로 기판을 빛을 쬐어서 만드는 (감광 기판) 일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전선을 이용해서 납땜을 해서 만드는 진공관 앰프가 훨씬 더 수월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진공관 앰프를 만들자는 결심과 더불어, 인터넷의 여러 곳을 찾아 다녔다.
우연히 ‘한국 진공관 앰프 동호회’ http://tubeamp.net 란 홈페이지를 찾게 되었고, 그 홈페이지에 너무도 상세히 올라와 있는 ‘따라하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 홈페이지의 회장이신 ‘안병원’ 님께서 오랜 경험으로 설계하고 직접 제작방법까지 그림으로 올려 놓은 그 ‘따라하기’ 페이지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회장님은 사실 흔히 말하는 공돌이 (공대 출신)이 아닌 미대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여서, 혼자 독학 하다시피 하여 진공관에 입문했던 분인데,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여서 제작 단계별 그림이 초보들도 아주 쉽게 제작하도록 설명되어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따라하기’의 도면을 보고 모든 부품들을 미국에서 구하기 위해서 목록을 만들고 있었는데, 진공관 앰프에 가장 중요한 트랜스포머(변압기)의 구입이 만만치 않았다. 4개를 모두 구입할려니 적지 않는 비용도 들고, 무엇보다도 ‘따라하기’ 회로의 사양과 다른 것이 마음에 결렸다. 지금에야 사양이 좀 달라도 다른 사양에 맞춰서 다른 부품을 구해서 만들 용기가 있지만, 그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자문도 구할 겸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했다 (전화도 지금에야 아주 저렴하거나 공짜로 할 수 있지만, 그 때의 전화비가 싸지만은 않았다. ). 내가 살고 있는 곳과 트랜스포머 구입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 하니, 회장님께서 직접 세운상가에 있는 트랜스포머를 직접 만드는 곳에 주문해서 보내 주겠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자작용 사양에 맞는 트랜스포머가 배송비를 고려하더라도 훨씬 쌌기에 그렿게 하기로 했다. 다른 부품도 맞춰서 넣어 주시겠다 하시니, 내가 할 일은 미국에서 진공관을 구입하는 것과 샤시(케이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트랜스포머를 감는데 그리고 그것들이 미국으로 배달되는 데 시간이 걸리니, 나는 참나무로 틀을 만들고 학교에서 나뒹구는 알루미늄 판을 이용해서 위 아래 판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진공관 앰프와 트랜스포머가 도착한 후에 그 규격에 맞춰 구멍을 뚫고 조립을 했다. 2002년 크리스마스 즈음인 것 같은데, 저녁 8시에 시작한 조립이 약 2시에 끝나서 드디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완성 후에 들은 ‘사라 장’ (Sarah Chang) 의 ‘ Sweet Sorrow’ 음반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감격은 며칠 동안 계속 되긴 했지만, 좀 예민한 귀를 가진 나에게 잡음에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목조 2층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걸어 다니면 마루가 흔들리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 흔들림이 진공관 앰프에 소음으로 전달된다. 흔히 말하는 ‘마이크로 포닉’ 소음인데, 진공관 내부의 불활성 기체가 열을 받아서 압력이 높아지면 진동에 민감해 져서 ‘텅텅’ 울리는 소리가 음악을 듣는 중간에 나온다. 어떨 때는 아무런 진동이 없더라도 앰프가 소리를 낸다. 이것 때문에 회장님께 전화를 여러번 했고, 회장님이 추천하는 방법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론은 파워 트랜스포머를 한국에서 미국 가정내 전압을 110볼트로 가정하고 만든 것이 문제였다. 진공관 내부에 히터라는 것이 있는데 열을 가해서 열전자를 방출하게 하는 코일이 있다. 110볼트로 가정한 전압인데, 실제 전압이 120볼트이면 히터가 10%가 놓은 전압 갖게 되고, 그 만큼 더 높은 압력 때문에 진동에 더욱 민감하게 된다.
아무튼 이 앰프는 이 문제를 간직한 체, 내가 뉴욕 주의 롱 아일랜드에서 포스트 닥을 하면서 옮겨지게 되었다. 2년 후에는 버지니아를 따라오게 되었다. 다시 뭔가를 만드거나, 앰프를 개조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진공관 앰프 동호회는 가끔씩 찾아갔다. 어느날 안 회장님의 부고도 회장님의 따님께서 쓴 글을 보고 알았고, 명복을 빈다는 간단한 글도 남겼다.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를 통해서 여러번 이야기 한 인연 밖에 없지만, 좀 허망한 느낌도 들었다.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한번 찾아 뵈리라는 다짐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말에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을 때, 파워 트랜스포머를 다시 미국 전압 120볼트에 맞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회장님을언급하니, 안다면서 별 설명도 필요 없이 잘 감아서 택배로 한국에 머무는 곳으로 보내왔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트랜스포머 교체했다. 소음이 좀 주는 듯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냥 그려려니 하면서 간간히 음악을 들었다. 앰프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지직거리는 잡음도 생겨서, 더욱 더 듣지 않게 되었다. 두 아이들을 키우느라, 여력도 없었다. 한가하게 음악을 들을 시간은 더욱 없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의 사무실에 갖다 놓고는, 간간히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내가 직접 만든 앰프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용했다.
2년전에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 집에 공간도 생기고 해서 앰프를 집으로 다시 옮겨왔다. 지난 크리스마스 경엔, 이사 후 처음으로 LP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지가 잔뜩 낀 LP는 세척도 했다. 그리고, 새 집을 지을 때 달아 놓은 천정 스피커가 소리가 작아서, 이 스피커 만을 위한 작은 애프도 기존의 반도체 야마하 앰프와 연동시겼다. 그리고, 다시 진공관 앰프를 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직’ 거리는 잡음은 오랜된 납땜이 느슨해져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젓가락으로 모든 것을 건드려서 확인을 했다. 하지만, 여전이 ‘마이크로 포닉’ 잡음은 해결할 수 없었다. 예전에 없었던 백그라운드 잡음도 생겼다. 그래서, 3월 경에 트랜스포머를 제외한 모든 것을 교체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 만들 때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썼던 회장님꼐서 보내준 싼 부품 (첫 자작이었으니, 남아 도는 부품을 보내주셨다.)을 조금 나은 부품으로 바꾸기로 했다.
마음을 먹은 김에 어떻게 하면, 소음을 최소화 할 수 있는지 고민도 했다. 진공관 앰프 동호회를 찾아서, 좀 더 나은 조립법도 알아냈다. 그러면서, 예전에 아무 생각없이 회장님의 조립설명을 따라 하기만 했던 것에 벗어나 회로를 이해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막상 회로를 들여다 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최적의 설계에 대한 지식은 얻지 못했지만,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40년 전 중학교 때 기술 시간에 배운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에 대한 원리도 기억이 좀 났다. ( 사실 주입식으로 배운 지식이 왜 아직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지, 나도 알지 못한다. 가끔씩 그 때 배운 외국에 대한 기후 등을 기억해서, 미국인과 유럽인들과 대화에 써 먹으면 나도 신기해 진다.).
동호회에서 다른 분이 올린 기판 회로를 보면서 따라하기로 했다. 근데 무작정 따라하는 것보다, 이해를 해서 설계를 하니 훨씬 더 수월했다.
다시 납땜을 할 때는 더욱 쉬웠다. 어떤 선들은 교차를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도 더욱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보니 예전의 조립 방법은 오류의 투성이다. 이러니 잡음이 많이 생길 수 밖에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만일에 부품을 교체할 때에도 전체를 건드리지 않고 간단히 필요한 교체만 쉽게 할 수 있도록 기판을 썼다.
마이트로 포닉 잡음에 관한 문제도 예전에 썼던 진공관이 거의 품절되면서 대체관 (그래도 1980년 초중반에 만들어진) 썼더니 말끔히 해결되었다 ( 6J4 를 8532W 로 교체했다.). 씨디 플레이어의 입력선의 소리의 오염을 막기 위한 쉴드 선도 전자 기타로 사용되는 나른 괜찮은 선으로 교체했다. 볼륨도 나름 괜찮다고 평이 나있는 Alps 로. 부품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고, 싼 곳을 찾다가 보니, 모든 부품들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모든 부품이 도착한 후에 약 이틀에 걸려서 조립을 했다. 볼륨에서, 소리의 크기에 따라 생겼다 없어지만 잡음 (약 80%의 볼륨에서 잡음이 나지만, 더 높은 볼륨과 낮은 볼륨에서는 잡음이 없는 이상한 현상) 을 해결하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다른 사람과 전혀 반대의 상황에서 잡음이 없어 졌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볼륨 바로 다음에 1K옴의 저항을 연결함으로써 해결했지만, 나는 그 저항을 없애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앰프가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겉으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지만 (볼륨과 전원 스위치를 바꾼 것 이외엔. 바뀐 이유는 가능하면 전원부와 입력단의 전선이 교차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내부 구조는 좀 더 말끔하게 정리되었고, 또 나중에 부품 교체가 수월하게 되었다.
아마도 다시 리빌드 (rebuild) 하거나 새로운 앰프를 만들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애들이 다 대학을 가고 나서 좀 한가해 진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본다. 그래도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위에 되도록이면 자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이렇게 20년의 시간을 거치며, 자작 진공관 앰프의 장(Chapter)을 매듭 지었다.
잡음이 거의 없고 풍부한 음향에 아주 만족한다.
우연히 생각치도 못한곳에서 안회장님을 기억하시는 분을 뵈니 새삼 반갑네요..
돌이켜보면 회장님 돌아가신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듯 합니다.
따라하기 앰프도 오랫만에 보네요.. 한때는 참 많이들 만드셨는데…
감사합니다.. 건승하십시오.
안회장님을 아시는 분이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하셔서 글도 남기시니 저의 감회도 새롭네요.
가끔 동호회 홈피를 방문해보면, 여전히 여러분들이 자작하고 질문도 하긴 하던데….
회장님 생전 작업실이 자작 진공관 앰프의 메카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삶이 바쁘다 보니 앰프를 자주 틀지는 못하네요.
열을 많이 발생을 시키니 아무래도 겨울에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구요.
또, 애플의 Homepod 라는, 사람을 아주 게으르게 만드는 스피커 때문에 진공관은 더욱 잘 안 찾게 된다는….
가끔 들러서 안부도 전해 주세요.
제가 어쩌다 한번씩 글을 쓰기도 하지만,
이 홈피는 저의 아내가 주로 글을 남기는 공간이라서 글 읽는 재미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방문해 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