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둘리양의 정밀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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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후에 둘리양 치과진료와 회의가 있어서 아침에는 꼭 원고를 써야지! 마음먹고 있지만, 그 전에 이 글을 먼저 써야겠다, 잊어먹기 전에…

어제 점심 식사 후에 우리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름 아트 레슨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아크릴화를 주로 지도하시지만, 가끔씩 콜라쥬나 오일파스텔 색연필화 등의 새로운 기법이나 새로운 도구를 이용한 작품을 지도하기도 한다. 올 여름에는 연필로 그리는 드로잉 (한국어로는 소묘 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물건을 앞에 두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정밀하게 그려내는 일이 아이들의 관찰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코난군이 학교 미술 시간에 그린 작품
코난군의 자화상

방학을 하면서 학교 미술 시간에 그렸던 그림을 코난군이 집에 가지고 왔는데, 아트 레슨 3년 덕분인지 제법 잘 그렸다. 이번 드로잉 수업을 마치면 더 잘 그릴 수 있겠지.

그런데 사실은, 코난군 보다도 둘리양이 이런 세밀한 묘사에 더욱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이 녀석은 관찰력이 아주 뛰어나서 그 어떤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재주가 있다. 지난 봄, 정기 학부모 상담을 위해 둘리양의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교실로 가는 복도에 4학년 아이들의 작품을 모두 전시해둔 벽에서 둘리양의 그림을 발견했다.

다른 아이들의 그림은 이런 수준이다. 4학년 아이들의 그림이 다들 훌륭하다.
그 중에서 발견한 둘리양의 그림 – 소름이 끼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그림의 주제가 아마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것인 것 같은데, 손으로 동물을 쓰다듬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는 표현이 많았다. 그리고 둘리양의 그림은 유튜브 비디오를 보면서 바늘 대신에 손가락을 사용해서 뜨개질하는 법을 배웠다고 쓰고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 저 손가락 뜨개질 하는 법은 예전에 둘리양이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 손가락에 감긴 실의 모양이 저것과 똑같았다. 손가락 마디의 주름과, 각 손가락 길이의 비례, 털실이 감긴 모양, 그 뒤의 하얀 창틀의 잠금 장치는 둘리양 방의 책상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협찬으로 그렇게 자주 나온다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

며칠 전에는 집으로 쿠폰이 날아와서 그걸 이용해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먹은 일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종류의 빵을 고르고,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원하는 것만 골라서 넣고 소스와 치즈 종류도 직접 고르는 방식의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맥도날드 햄버거에 비해 건강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인기가 많다.

원하는 재료를 골라서 넣을 수 있다.

샌드위치 한 개를 사먹으면 한 개를 공짜로 준다는 쿠폰이 왔길래 어느 바빴던 날 저녁에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서 저녁식사로 사주었다. 숫기없던 아이들이 이제는 의젓하게 자라서 직접 직원에게 자기가 원하는 빵과 재료를 말하며 주문을 했다. 이것만 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대단한 성장이다 🙂 주문 과정 중에는 빵에 치즈를 얹은 다음에 치즈가 적당하게 녹도록 빵을 오븐에 넣어줄까? 하는 항목도 있는데, 두 아이 모두 그렇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서브웨이 레스토랑의 오븐

정식 오븐 보다는 작고, 가정용 토스트 오븐 보다는 큰 크기의 오븐이 서너대 나란히 있고, 각 손님이 주문한 빵을 서랍처럼 손잡이가 달린 트레이에 놓고 집어넣는 방식이다. 빵이 알맞게 데워지면 알람이 울리고, 직원은 그 빵을 꺼내서 원하는 재료를 더 넣고 샌드위치를 완성한다. 주문하는 손님은 그 앞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리게 된다.

둘리양이 만든 오븐

그리고 그 날 저녁, 둘리양이 이런 것을 만들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평소에 늘 이것저것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는 얼마전에 쓰던 점토가 다 떨어졌으니 새로 한 통 사달라고 했다. 평소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달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둘리양이라, 그녀가 사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아낌없이 점토 한 통을 새로 사다주었는데, 헌 박스를 이용해서 이런 걸 만들었다.

서랍식 오븐에서 굽고 있는 빵

요즘 아빠와 수학 공부 시간에 도형에 대해서 배우더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르기 어려운 골판지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이어붙여 완벽한 직육면체를 만들었다. 서랍이 부드럽게 들어가고 빠지게 하려면 각 변의 길이도 정확하게 계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빵은… 흰 반죽에 칼집을 내고 윤기를 더하기 위해 계란물까지 바른 것이 정말로 실제 빵 반죽과 똑같이 생겼다. 다음 날에는 이 빵을 갈색으로 칠해서 다 익은 빵으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ㅎㅎㅎ

서브웨이 오븐처럼 서랍을 빼서 기계 위에 올려놓았다.

샌드위치 한 개를 사먹이고 점토 한 통 사준것이 전부인데 이런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열 살 둘리양… 장하다! 그녀의 드로잉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제부터 진짜고 원고를 써야지! ㅎㅎㅎ)

2022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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