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양이 어렸을 때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낯선 그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어려워했다. 친숙한 사람으로부터 (=아빠나 엄마) 배우더라도 처음부터 자신있게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배우는 것을 꺼려했다. 둘리양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사리판단력이 개선되면서 자신감도 늘어났다. 지난 겨울 방학 무렵부터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원래 보내고 싶었던 곳 (오늘부터 다니게 된 곳)은 빈 자리가 없어서 한 학기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일단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상,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둘리양을 위해 다른 학원을 찾아서 보내게 되었다. 미스 마고가 가르치는 그 학원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학원의 위치가 붐비는 상가 건물의 윗층이어서 주차장이 조금 비좁았다. 게다가 그런 건물의 월세를 감당해야 하니 레슨비도 제법 비싼 편이었다.
지난 5월로 미스 마고의 학원은 마치고, 오늘부터는 우리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교회에서 미스 패트리샤로부터 레슨을 받게 되었다. 패트리샤 선생님은 이 교회의 음악 디렉터인데 (아마도 한국식으로는 성가대 단장/지휘자 정도의 직급인 것 같다), 자기가 봉사하는 교회 건물에서 레슨을 하니 건물세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어서 레슨비가 마음에 들었다. 또한, 이 선생님은 원래 성악 레슨도 하기 때문에 어쩌다 둘리양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성악을 배울 수도 있다.
둘리양의 성량은 태어나던 그 날 부터 신생아실 간호사를 놀래킬 정도로 풍부했고, 주주네 엄마와 할머니가 항상 칭찬하던 목소리이다. 그 또래 여자 아이들의 가늘고 앵앵거리는 목소리에 비하면 둘리양은 무척 깊고 울림이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다른 학교로 옮긴 내 후배이자 우리 학교 성악과 교수였던 김선생도 둘리양의 성량과 음색이 성악을 배우기에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악을 지도하는 패트리샤 선생님을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았던 것인데, 둘리양은 아직도 노래부르기에는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너처럼 목청이 크고 좋은 아이가 성악을 배우지 않는 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를 할 줄 모르는 것과 같은 낭비라고 둘리양에게 농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
오늘은 첫 레슨이라 나도 함께 가서 패트리샤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짧은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마고 선생님 보다 아주 조금은 더 젊고, 활기찬 성품을 가진 것 같았다. 레슨을 받는 교회 건물은 우리집에서 차도로 나가지 않고 산책로만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위치라서, 아마도 다음주 부터는 둘리양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다. 여름 방학 동안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방학이 끝나면 나는 거의 매일 저녁 강의가 있고 남편은 코난군의 뒷바라지로 바빠서 시간을 내기 힘든데 둘리양이 혼자 피아노 레슨을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이 우리 가족에게 아주 큰 장점이다.
시간이 곧 돈이라는 말이 있는데, 2년 전에 이사온 우리집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돈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코난군은 바이올린 레슨을 걸어가니 라이드가 필요없고, 둘리양의 피아노 레슨도 마찬가지이다. 아빠로부터 테니스를 배울 때도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코트가 있어서 두 아이가 동시에 나가서 차례를 기다릴 필요없이, 한 명이 먼저 아빠와 나가고, 나머지 한 명은 아빠한테 지금 오라는 문자를 받으면 코트로 걸어나갈 수 있다. 두 아이들이 다니거나 다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도보 거리 안에 있으니 그것도 부모의 시간을 무척 절약해준다. 그 모든 도보 거리가 차로부터 안전한 산책로인 것도 아주 만족한다.
2022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