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에서 다이닝룸은 그저 음식을 먹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살림의 규모를 과시하는 장소인 것 같다.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나, 집 좀 꾸미고 산다는 미국인들의 집 구경을 해보면, 간소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 (브렉퍼스트 구역 이라고 부른다)이 부엌과 아주 가깝게 있어서 실제로 가족이 식사를 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다이닝룸은 아주 넓은 공간을 따로 정해서 그릇장과 멋진 식탁 셋트를 놓고 조명도 화려한 것을 설치해둔다. 위의 사진처럼 웅장하고 멋진 다이닝룸 가구 셋트를 장만하려면 최소한 몇 천 달러에서 만 달러도 넘게 든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지을 때, 다이닝룸으로 할애된 공간을 서재 공간에 덧붙여서 아주 큰 서재를 만들고 다이닝룸 대신에 그보다 규모가 작은 모닝룸 (아침밥을 먹는 공간이라는 뜻인 것 같다) 을 따로 만들었다. 서재가 커야지만 남편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공부를 시킬 수도 있고, 아이들의 친구들까지 모아놓고 코딩을 가르치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갖가지 물건과 남편이 소장한 수많은 책도 한 방에 있는 것이 꺼내 쓰고 관리하기 편해서이기도 하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남편의 물건이 부엌 수납장에 들어있기도 하고 다른 여러 개 방의 벽장 안에 분산되어 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기억하고 꺼내 쓰는 일이 아주 불편했다. 책도 이 방 저 방 책장안에 들어있던 것을 지금 집에서는 한 방에 다 넣어두니 집이 잘 정리된 느낌이어서 무척 좋다.
우리집 모닝룸은 다이닝룸 보다 작아서 8인용 식탁을 놓고나면 멋진 그릇장 같은 것은 둘래야 둘 자리가 없다. 그리고 수천 달러짜리 멋진 장 안에 고이 전시해둘 비싼 그릇도 없다 🙂 중고로 구입한 식탁에다 친구로부터 얻어온 의자이지만 색상이나 질감이 비슷해서 (우연히도 같은 상표의 가구이기 때문이다) 소박하지만 보기 흉하지는 않다. 우리 가족 끼리 식사를 할 때는 모닝룸 보다도 키친 아일랜드에 앉아서 먹는 것이 더 가깝고 편해서 모닝룸 조차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요즘들어 둘리양 친구들과 코딩 레슨을 시작하고부터 모닝룸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공짜 레슨에 대한 보답으로 친구 엄마들이 번갈아가며 음식을 사와서 레슨을 마친 다음 모두 함께 먹기 때문이다.
공짜 의자에 몇십만원 짜리 식탁을 놓으니, 아이들이 앉아서 떠들며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만약에 거금을 들여서 수백만원, 천만원이 넘어가는 식탁 셋트를 놓았더라면 아마도 아이들이 앉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앉으면 식탁에 흠집이 생길까, 음식을 흘려서 얼룩이 생길까 조바심을 내며 지켜보았을 것이다. 비싸고 좋은 가구를 멋지게 배치해두고, 정작 내 가족과 친구들은 그 자리를 피해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그건 주객이 전도되는 우스꽝스러운 비극이다.
멋지고 화려한 다이닝룸보다, 소박하지만 내 가족과 손님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모닝룸이 나는 참 좋다!
아이들 여름 옷과 모자를 뜨고 남은 실로 식탁의 흠집을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고 또 모닝룸에 아주 약간의 활기를 더할 수 있는 테이블 러너를 만들었다. 실이 모자라기도 했지만, 식탁의 길이를 다 덮을 만큼 뜨는 일이 지루할 것 같기도 해서 그저 테이블 한가운데를 덮을 만한 미니 사이즈로 만들었다.
좋은 집과 좋은 차, 좋은 가구… 그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온전히 누리고 즐길 수 있어야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