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주가 개강이라 지난 주부터 거의 매일 출근해서 개강 준비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여러 가지 회의가 많이 잡혀 있어서 지난 주에 연간 보고서를 쓰고 가르칠 과목의 강의계획안을 만드는 등의 일을 했다. 이번 주에도 회의가 없는 시간 동안에 나머지 강의계획안과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15년간 사용하던 연구실을 옆옆방으로 옮겼는데, 정사각형 모양에다, 넓은 홀에서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방이어서 한적하고 정돈된 느낌이 들어 집중해서 일하기에 아주 좋다. 얼마 전에 주주 엄마가 식품 건조기로 직접 말려서 만든 여주차와 벌통 하나를 통째 구입해서 직접 짠 꿀을 나누어 주었는데 연구실에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한 잔씩 타먹으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번 주에는 남편의 학교도 갖가지 종류의 회의가 잡혀있어서 남편 역시 거의 매일 출근해야 한다. 아이들의 학교는 내일 수요일에 개학이기 때문에 오늘은 아이들 끼리만 집에서 지내고 있다.

어제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때 아예 오늘 남편의 도시락과 아이들의 점심을 만들어 두었다. 그래야 아침에 지체없이 일찍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점심을 먹지만, 학교 점심 시간 같은 기분도 느끼고, 플라스틱 랩을 쓰는 것보다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하면 힘들지도 않으니 도시락 통에 점심을 담아 두었다.

두 개의 도시락 통 안에 든 음식이 똑같은 성분, 똑같은 분량이니 아무거나 먹으라고 써두었다. 냄비에 끓여둔 계란국은 전자렌지에 1분간 데워서 함께 먹으라고도 써두었다.

둘리양은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계란국을 무척 좋아하는데, 나는 한국식으로 걸쭉하지 않은 국을 끓였다. 중국식 숩은 녹말을 넣어서 걸쭉한데 그러다보니 너무 뜨거워서 먹기가 힘들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왕이면 한국식 음식을 맛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우리집 팬트리와 냉장고에 어떤 간식이 있는지 잘 알지만, 그래도 눈에 쉽게 띄어서 잘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부엌 아일랜드에 나와있는 간식을 일부러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만하면 아빠 엄마가 일찍 출근하고 없어도 자기들끼리 아침과 점심과 간식을 챙겨 먹고 배곯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직접 라면을 끓여먹거나 오븐에 쿠키를 구울 줄도 알지만, 그건 반드시 집에 어른이 있을 때만 허락하고 있다. 아이들끼리 있을 때는 가능하면 전자렌지나 토스터 같은 간단하고 안전한 기기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누가 벨을 눌러도 마치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고 친구들과 대화 중에는 집에 어른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로 한 것도 우리 가족만의 규칙이다.
아이들끼리 차려먹을 점심을 준비하고 출근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의 둘리양 나이였을 때가 생각났다. 2012년생 둘리양이 지금 2022년을 살고 있는데, 1972년생인 나는 1982년에 지금의 둘리양과 똑같은 나이였다. 그 해에 나의 막내 고모가 결혼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한 분의 형님과 두 분의 누님, 두 분의 여동생이 있(었 – 그 중 몇 분은 돌아가셨으므로)는데 그 중 가장 막내인 고모는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 우리집에서 함께 살았던 적이 있고 또 결혼식이 열리는 곳과 신혼집도 모두 부산이어서, 서울에 사시던 큰아버지댁을 제치고 우리집에서 결혼 준비 및 잔치를 주관하게 되었다. 책임감이 강한 엄마는 막내 시누이를 시집 보내는데 있어서 한치의 실수도 없이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얻으려고 노력하셨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나와 동생을 등교시키고나면 아직 아기였던 막내 동생을 업고 하루 종일 도소매 시장을 다니며 혼수품을 구입하고 결혼식이나 신혼집에 관련된 일을 보러 다니셨고, 저녁 늦게 귀가하면 계산기를 꺼내놓고 오늘 하루 사용한 돈과 남은 돈을 열심히 계산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 나와 동생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캄캄한 밤이 될 때 까지 아이들끼리만 집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막내 동생은 엄마 등에 업혀 잠이 든 채 귀가하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은 하교한 나와 동생에게 막내를 맡겨놓고 엄마 혼자 볼일을 보러 나가는 날도 있었다. 당시에 아빠는 외항선을 타고 계셨기 때문에 집에 계시지 못했다. 맏누나인 나는 엄마가 준비해둔 음식을 차려서 동생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 라면을 끓여서 먹기도 했다. 어느날엔가, 뜨거운 라면을 쏟아서 막내 동생 팔에 화상을 입힌 적도 있었다 (동생, 미안!) 그 날 밤에 엄마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끔씩 코피를 쏟으며 피곤해 하셨던 모습은 기억난다.
지금 엄마가 된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남편도 없이, 아이들끼리 라면 끓여먹으라고 해놓고, 그렇게 몇날 며칠을 코피를 흘려가며 고생을 하신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왜 그리도 고생을 자처하셨는지 안타깝기도 하다. 그 시절에는 누가 시집을 가는데 혼수를 들였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면 온동네 일가친척이 그 집으로 몰려가서 장농의 사이즈가 얼마나 되는지, 이불은 몇 채를 해왔는지, 숟가락이 한 개 모자라지 않는지, 등등 사소한 것을 다 따져보고 품평하는 그런 풍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뒷말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해서, 원래부터 완벽한 일처리를 지향하는 엄마의 성격이 그 고생의 근원이었을 것 같다. 게다가 요즘처럼 모든 물건을 한 군데에서 구입할 수 있는 대형 종합 마트도 없고, 쇼핑한 물건을 왕창 싣고 운반할 수 있는 승용차도 없던 시절, 엄마는 버스를 갈아타며 이불을 사러 부산진시장엘 가고, 그릇을 사러 국제시장엘 가셨을게다. 그깟 살림도구 몇 가지 없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오지에서 사는 것도 아니니 언제라도 필요한 사람이 직접 사러 가면 될 것을…

얼마전에 고모부한테서 옛날 사진을 찍은 사진을 전송받은 아버지가 내게 이 사진들을 보내셨다. 1982년에 꽃같은 신부였던 막내 고모가 2022년 지금은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셨다.
마지막으로, 82쿡 게시판에서 알리슨 님으로부터 배운 전자렌지로 요리하는 꽈리고추찜을 기록한다. 무척이나 뜬금없고 논리가 없는 글의 전개이다 ㅎㅎㅎ 🙂


알리슨 님은 캐나다의 가장 큰 도시인 토론토에 살면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일하는 엄마로서 남매를 키우는 점과 외국 생활을 오래 해온 점, 한국 음식 특히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점 등등 비슷한 점이 많아서 온라인상으로지만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직장 생활하는 주부이다보니, 같은 음식이라도 이렇게 간편한 조리법을 연구해서 활용하게 되는데 온라인 게시판에서 그 비법을 나누어주니 내게도 큰 도움이 된다.
꽈리고추 찜은 여름에 자주 먹었던 반찬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동네 국제시장 마트에서는 꽈리고추를 팔지 않기 때문에 어쩌다 대도시 한국 마트에 가서 사다가 밀가루를 묻혀서 찜솥에 쪄서 양념에 무쳐서 해먹었다. 그런데 알리슨님의 비법은, 꽈리고추가 없으면 이런 껍질이 연한 고추를 썰어서 사용하고, 설거지가 번거로운 찜솥 대신에 전자렌지에 간편하게 익히는 방법이었다. 원래는 3분씩 두 번 전자렌지에 돌리는 것인데, 오아시스 마트에서 사온 고추가 꽈리고추 보다도 겉껍질이 더 연한 것 같아서 2분씩 두 번 돌렸더니 안성마춤으로 잘 익었다.

전자렌지에 고추를 익히는 동안에 발생한 매운 냄새 만으로도 남편은 이미 재채기를 시작했고, 그 정도로 매운 음식은 나밖에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집에는 없다. 고추 겉에 붙은 부침가루가 탄수화물이고, 고추에는 비타민 씨를 포함한 다양한 영양소와 식이섬유가 있으니, 밥 없이 이것만 한 사발을 다 먹으며 한 끼 식사를 했다 ㅎㅎㅎ
2022년 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