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2022년의 11월 22일을 보냈음

Loading

11월 22일은 코난군의 생일이다. 올해로 태어난지 15년이 지난 코난군은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지난 금요일 저녁에 성대하게 마쳤고, 오늘은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받는 급우들 모두에게 생일턱으로 사탕을 나눠주고 싶다고 해서 나혼자 먹으면 십 년을 먹어도 다 못먹을 것 같은 거대용량의 사탕을 학교에 가지고 갔다 🙂 오늘은 코난군과 둘리양의 이번 주 마지막 수업일이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지난 주말부터 일주일간 추수감사절 방학이지만 남편과 아이들의 학교는 오늘까지 수업을 하고 수요일부터 주말까지만 방학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생일 케익에 촛불을 켰다

지난 토요일에 배추 두 박스를 절이고, 일요일에는 배추를 헹구고 양념을 만들어서 버무리는 김장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집에 있는데 주교수님이 커피를 마시러 오겠다고 했다. 안그래도 김장 김치를 나눠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우리집으로 오시라 해서 커피도 함께 마시고, 사우나까지 함께 하며 놀았다. 추수감사절 방학의 첫날을 개운하게 사우나로 시작하니 즐거웠다.

환풍기를 틀어놓고 그 아래서 김치를 버무리니 온집안에 매운 양념 냄새가 스며들지 않아서 좋았다.

올해 나의 무농사는 너무 늦게 씨를 심는 바람에 김장철이 다 되도록 무가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배추 두 박스와 함께 무도 한 박스를 구입했고, 내친 김에 깍두기도 담았다. 총각무와 갓도 조금씩 사오라고 해서 양념을 발라 두었다. 잘 익어서 맛있는 김치가 되기를 빌고 있다.

깍두기와 총각김치도 담았다.

그리고 오늘 화요일 아침, 가족들이 다 등교 출근을 하고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하다가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고 김치 선물셋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 한국인 싱글 교수님들에게 시간 있으면 오늘 들러서 김치를 가지고 가라고 연락을 돌리고, 르완다의 인연으로 알게된 채리 학생과 이번 학기에도 특강을 해준 버지니아 공대의 최교수에게는 오늘 내가 김치 배달을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채리 학생은 아직 차가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시간이 날 때 얼른 김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일부러 오라고 하는 것보다 간편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최교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에 업무를 최대한 많이 해야 하니, 육아로부터 자유로운 내가 김치 배달을 가기로 했다.

김장 3종 선물셋트의 구성: 배추김치
깍두기
돼지고기 수육
이런 모습

우리 학교 싱글 여교수들은 매번 초대해 주어서 고맙고 민망해 하길래, 오늘은 어차피 코난군의 생일이어서 식사는 가족끼리 할 것이니 부담없이 잠시 들러서 김치만 가지고 가라고 말했다. 최교수도 일부러 김치 배달을 해준다고 하니 너무 미안하다고 인사를 해서, 같은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오늘이 코난군 생일이라는 것을 다른 마음을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그런데 이 선생님들이 모두 빈 손으로 오지 않고 코난군의 생일 선물이나 빵과 과일 같은 것을 사가지고 왔다. 이러려고 말한 것은 절대 아닌데… 뭐 그래도 아들 생일 덕분에 나도 뭘 얻어 먹고, 코난군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아 행복했다 🙂

김치 선물 셋트의 옆모습

커피만 한 잔 마시고 가라며 붙잡았다가, 호박죽을 내놓으니 맛있다며 무척 잘 먹었다. 그래서 이럴 때 사용하려고 잘 모아둔 그릇에 호박죽도 담아주고, 코난군 생일 미역국도 담아 주었다. 다들 혼자 사는 싱글이라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을텐데 내가 만든 음식을 입맛에 맞다며 맛있게 먹어주니,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음식 나눌 때 쓰려고 잘 씻어서 모아둔 통

오랜만에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놀다가 우리 학교 교수들은 돌아갔고, 코난군은 아빠와 테니스를 치고 와서 저녁을 먹겠다고 하기에 남는 시간 동안에 김치 선물 배달을 다녀왔다. 채리 학생이 사는 아파트는 옛날 우리집과 가까운 곳인데, 오랜만에 그 동네에 갔더니 빈 터였던 곳에 집을 많이 지어서 도로가 무척 붐비고 낯설어 보였다. 우리가 아직도 옛집에 살고 있었다면 붐비는 도로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을 것 같다. 또한, 새로 지은 집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오래된 우리집은 좋은 값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일을 겪기 전에 새 집으로 이사를 와서 행운이다.

쇠고기 미역국

아직 퇴근하지 않은 최교수네 빈 집 문에 김치 선물을 걸어놓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최교수가 답문자 하기를, 나를 만나면 주려고 빵을 사두었는데 그걸 가져다 주기 위해서 우리집으로 운전해서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술래잡기 하는 것 마냥 두 사람이 서로의 집으로 음식 선물을 들고 쫓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 어린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를 씻기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등등 할 일이 얼마나 많을텐데, 그 와중에 내 김치에 대한 답례로 빵을 사들고 일부러 가져다 주기까지 하다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다음에 김치를 좀 더 나누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물로 들어온 빵

테니스 코트에 나갔던 코난군과 남편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바람이 없어서 테니스 치기에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지만, 기온이 낮아 공이 잘 튕기지 않았다고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기온이 더 올라간다고 하니 학교에 가지 않는 낮 시간에 다시 나가서 테니스를 치기로 했다고 한다. 쇠고기를 듬뿍 넣고 오랫동안 푹 끓인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서 저녁 식사를 하고, 어제 사둔 케익에 촛불을 켰다. 우리 동네 고급 빵집 Our Daily Bread (일용할 양식) 에 가니 독일식 초코렛 케익과 스위스 초코렛 케익 두 가지가 있었다. 코난군이 초코렛 케익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을지 알 수 없었다., 둘 다 겉모습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독일식 케익은 속살이 바닐라 케익이고 스위스식은 속살도 초코렛 맛이 나는 케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스위스 케익으로 주세요!

스위스 초코렛 케익
만 15세가 된 청소년 코난군

친구들과, 가족들과, 즐거운 생일을 보낸 코난군. 마침 내일부터 추수감사절 방학이라 더욱 신이 났다. 이화정 선생님이 주신 거금의 생일 선물 상품권으로 온라인 쇼핑을 할 생각에 즐겁기도 하다.

많이 컸다!
스위스 초코렛 케익의 속살
행복한 생일을 보낸 코난군

2022년 11월 22일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