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늘 내 생일 즈음부터 남편의 생일을 지나가기까지 한 달여 동안은 학교 일로 바쁘다. 개강을 한지 한 달이 지나가면서 강의와 연구에 발동이 걸려서 바빠지는데다 가족의 생일을 챙겨야 하니 더 바쁜 것이다. 이번 주말부터 일주일간 우리 학교 봄방학이 시작되어서 한숨을 돌리고 묵은 사진을 꺼내서 올리려고 한다.

내 생일은 저녁 강의까지 있는 바쁜 날이어서 그 전 주말에 미리 동네 멕시칸 음식점에 가서 모처럼 온가족 외식을 했다. 그래서 생일 당일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저녁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니 남편과 아이들이 케익과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케익은 우리 동네 맛집에서 남편이 구입했고, 카드와 선물은 둘리양이 진두지휘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향초를 올려놓을 받침대는 둘리양이 직접 뜨개질해서 만든 것이고 생일 카드도 직접 그리고 색칠한 다음 스카치테잎으로 코팅까지 했다. 글씨와 그림에 색을 입히고 입체감이 나도록 명암 효과를 넣은 것이, 돈을 내고 사온 카드 못지않게 멋지다. 저 컵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미녀와 야수 만화 영화 중에서 마법의 저주를 받아 컵이 되어버린 소년 칩 이다. 미세스 팟의 아들이기도 한데, 자세히 보면 컵 둘레에 이가 빠져서 (칩이 생겨서) 이름이 칩이다. 엄마가 디즈니를 좋아하는 취향을 잘 알고 고른 선물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주말에는 한국인 가족을 초대했다. 남편이 코난군을 데리고 테니스코트에 나가면 가끔 마주치는 버지니아 공대의 젊은 교수인데, 우리 부부처럼, 이 부부도 둘 다 조지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동문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이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작년에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았고 부인은 이번 여름 졸업을 목표로 열심히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 부부보다 15년쯤 젊지 않을까 짐작한다. 작년 여름에 교수 임용이 되어 이사를 온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터라, 이 동네에 대해 안내도 해줄 겸 해서 초대했다.

조지아 대학교는 한인타운이 큰 아틀란타에서 가깝기 때문에 한국 음식이 아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런 곳에 살다가 명왕성과도 같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으니 한국음식이 그리울 것이라 판단하고 한국음식으로 백반정식 상차림을 했다. 쌀밥에 매운 쇠고기국을 끓이고, 여러 가지 밑반찬을 쫙 깔았다. 나역시 평소에는 일품요리 위주로 해먹고 사는데 손님 대접을 기회로 해서 오랜만에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보았다.


이 가족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있는데, 우리집 갤러리를 돌아보더니 다음달 부터는 아트 레슨에 동참하기로 했다.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며 꽃다발과 케익을 사왔는데, 며칠 전 내 생일 케익을 샀던 그 가게에서 종류만 살짝 다른 치즈케익을 사왔다. 남편 말에 의하면, 그 가게에 치즈 케익이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내 생일에 먹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가 이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두 가지 케익을 다 맛보았다.

2023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