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빌려 읽은 책을 돌려드릴 때 아트 선생님은 이 책을 권하며 빌려주었다. 에이치 마트에서 울다 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고 했다. 이제는 겨울 방학이 끝났고 개강으로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나려나 싶었지만 천천히 돌려주어도 된다는 말에 책을 빌려왔다.
역시나 개강후 첫 주간은 새로운 학기가 정착하느라 여러 가지 회의와 이메일을 처리해야 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거기에다 짬짬이 이 책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책 한 권을 시작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만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개강후 2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니 책을 읽을 통시간이 생겼다. 인터넷에서 읽은 평가처럼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쉬운 문체로 씌어져 있어서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이 책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원래 추리소설을 주로 쓰는 유명한 소설가인데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서 30년 전의 사람과 2012년 현재의 사람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기는 판타지 소설이다. 추리소설 작가 답게 등장 인물들이 묘하게 얽히고 설키는 장치를 마련해서 더욱 흥미진진했다.
2012년에 출판된 책이 10년이 넘게 계속해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르고,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일본과 중국에서 각기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지금이 2024년이니 나는 무려 12년 전에 나온 책을 읽은 셈이다. 그러다보니 소설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얽힌 이야기를 12년 후인 지금에 읽으면서 머릿속에 시간 순서가 마구 헷갈렸다.
대략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기억해 보자면, 1960년대와 70년대에 나미야 유지 상이 토쿄에서 두 시간 거리의 작은 마을에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장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익명으로 받은 고민 편지를 상담하고 답장을 써주었다. 일본어로 고민 이라는 단어가 ‘야나미’ 인데, 잡화점 주인의 이름과 가게 이름이 ‘나미야’로 비슷한 발음이어서 동네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으로 고민 편지를 보내는 것에서 편지 상담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교 시험에서 백점을 받게 해달라는 등의 장난스런 상담이었지만 점차 소문이 나자, 사업이 망해서 야반도주를 하게 된 사람의 고민, 유부남과 사이에서 가진 아이를 낳아야할지 고민하는 미혼모, 자신이 하고픈 음악과 생선가게를 물려주려는 부모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음악가… 등등 심각하고 다양한 고민이 상담 신청으로 들어왔다.
1980년 9월 13일에 모든 고민 상담에 정성껏 답장을 해주던 나미야 유지 상이 노환으로 돌아가신다. 나미야 상이 돌아가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민 편지를 나미야 잡화점 우편함에 넣기도 했다.
2012년 9월이 될 때 까지 일본은 유례없던 부동산 호황과 증권 투자 열풍이 폭삭 꺼지는 일을 겪고, 그 세월 동안에 고민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은 열심히 각자의 인생을 산다. 그 중에는 나미야 상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또 어떤 불행한 사람은 젊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2012년 9월 12일과 13일 동안에 (그러니까 이 책의 시점에서는 현재,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게는 벌써 12년 전의 과거) 세 명의 좀도둑이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들었다가 과거로부터 오는 고민 상담 편지를 받고 거기에 답장을 해준다. 잡화점 안에서의 시간은 건물 바깥과는 다르게 흘러갔기 때문에 고작 하룻밤 동안에 좀도둑은 여러 통의 편지를 받고 여러 번의 답장을 보내주었다. 이 편지 왕래의 내용이 윗 문단의 일본 현대사가 엮여있는 부분이다.
2012년의 일자무식한 좀도둑이 나미야 유지 상을 가장하여 1980년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터넷 이라든지 휴대폰 같은 말을 사용하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를 하라거나, 1990년이 되기 전에 모든 부동산과 주식을 정리해서 폭탄돌리기와도 같은 버블 경제의 위험을 피하라는 등의 조언을 해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시간적 배경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오기 때문에 정말이지 한 번 시작한 읽기를 중간에 멈추기가 어려웠다. 한 번 손에서 책을 내려 놓으면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시점이 언제였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작가라서 독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등장인물 모두가 환광원 이라고 하는 고아원과 관련이 있고, 자신들은 모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에 영향을 주는 그런 관계였다…는 점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밝혀진다. 마치 복잡한 사건을 추리해서 범인을 잡고나면 사건의 전말이 명쾌하게 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2024년 1월 27일
교수님 한참전에 본 책이라 솔직히 재미있는 책 으로만 기억 하는게 다였는데, 작가와 책에대한 부연설명과 함께 요약해서 올리신 글을보니 다시금 스토리 전개가 떠올라서 너무 좋아요. 올리신 글 잘 읽고 갑니다 ^^
어머나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격려 말씀도 감사해요 자주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