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가족 생일

2월의 가족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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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가족 생일이 이어지는 시즌이 왔다. 거의 매주 케익을 먹게 되니 내 생일에는 케익을 사지 말고 대신에 맛있는 핏자를 사먹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생일이 되니 케익이 없이는 허전하다며 남편이 우리 동네 고급 빵집에서 치즈케익을 사왔다.

가족 생일의 시작을 알리는 내 생일의 치즈케익

아무래도 우리 가족 생일 시즌을 시작하는 날이라서 케익 없이 넘어가기가 허전한 느낌이었나보다. 나는 생일이 양력으로나 음력으로나 연초에 있어서 세는 나이, 만 나이, 미국 나이, 등등에 구분없이 나이를 세기가 수월하다. 이제 52세가 되었다.

생일 저녁 상

우리 동네 다운타운에는 멜로우 머쉬룸 이라는 핏자 레스토랑이 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사다먹는 냉동 핏자나 배달 픽업 전문점의 대중적인 핏자와 달리, 이 집의 핏자는 반죽부터 남다른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차가 불편하고, 그래봤자 핏자를 비싼 가격에 더해서 세금과 팁까지 내고 사먹는 것이 못마땅해서 거의 가지 않는 곳이다. 몇 년 전에 한 번 먹어본 핏자 맛을 기억하던 둘리양이 ‘우리 언제 그 핏자집에 또 가나요?’ 하고 묻길래, 엄마 생일에 픽업해와서 먹자고 했던 것이다.

둘리양이 만들어준 선물과 카드

평소에 뭘 사달라 해달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둘리양이 그렇게 묻는 것은, 그 집 핏자가 간절히 먹고 싶다는 말이다 🙂 그래서 생일 케익 대신에 비싼 핏자를 먹자고 했던 것인데, 케익까지 먹게 되어 생일 축하가 두 배로 거창해졌다.

버섯이 들어간 핏자를 주문했다.

레스토랑에 가지 않고 집에서 먹으니 팁을 낼 만큼의 돈으로 음료와 샐러드를 사와서 먹을 수도 있고, 케익에 촛불을 불어 끄는 것과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주차비나 운전하는 수고도 없어서 더욱 좋다.

생일 축하 노래 부르는 중

다음 주 목요일 저녁에는 가족끼리 둘리양의 생일을 축하하며 둘리양이 좋아하는 케익을 먹었다. 이제 열 두 살이 된 둘리양은 망고 무스 케익을 좋아한다.

망고 무스 케익에 열 두 개의 촛불을 켰다.

생일 선물은 지난 번에 사준 새 전화기이고, 나는 반팔 스웨터 한 벌을 떠주었다. 그래도 카드는 한 개 사다가 온가족이 축하한다는 말을 써주었다.

촛불을 끄고 있는 둘리양
케익을 먹는 둘리양
가족끼리 생일 축하

생일인 금요일은 둘리양의 학교에서 댄스파티 행사가 있고 코난군과 남편도 각자 일이 있어서 저녁 늦게 모여서 케익을 함께 먹었고, 친구들을 초대하는 파티는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에 시작했다.
우리집 식탁의 수용인원을 고려해서 일곱명의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한 명은 전날부터 아파서 못오고 여섯 명의 손님이 와서 다섯 명이 슬립오버를 하게 되었다.

마트에서 주문한 컵케익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먹을 케익은 동네 마트에서 컵케익으로 주문했다. 열 두 살 생일을 기념해서 숫자 12 모양으로 컵케익을 담아주는데, 24개의 컵케익을 거대한 상자에 담아주었다. 케익 위에 아이싱은 버터 크림 말고 생크림으로 주문했고 색상과 스프링클도 원하는 것으로 주문할 수 있는데 가격은 그냥 컵케익을 사는 것과 똑같았다. 이렇게 해도 전날 사먹은 우리 동네 고급빵집의 망고 무스 케익보다 훨씬 저렴한 값이었다.

연분홍 생크림을 얹은 컵케익

오후 5시에 손님들이 도착해서 저녁을 먹였다. 올해의 파티 음식은 일식으로 정했다. 초밥은 미리 만들어 두어도 식거나 상하지 않아서 좋고, 데리야끼 치킨, 우동 샐러드, 미소숩은 자극적이지 않아서 어느 입맛에도 무난하게 맞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뷔페식으로 차린 저녁 식사

이 날 손님의 대다수는 이미 우리집에서 내가 만든 아시안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어서 안심하고 음식 준비를 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손님의 식성을 고려해서 치즈핏자와 타키토 (치킨과 치즈를 넣고 돌돌 말아 만든 멕시칸 음식)를 준비해두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느라 핏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

맛있게 먹는 아이들
김밥과 유부초밥 위에 예쁘라고 발사믹 소스를 뿌렸다.

게맛살, 장어, 계란말이를 얹은 초밥은 한 사람당 한 개씩 맛볼 수 있게 만들어 담고, 아이들이 맛있어 하는 것을 즉석에서 더 만들어 주었다. 계란말이 초밥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그 다음이 게맛살 초밥이었다.

사람 수대로 만든 초밥

열 한 살 열 두 살 소녀들을 위한 파티이니 음식의 맛 만큼이나 차림새에도 신경을 썼다. 보통은 이렇게 많은 손님을 초대하면 일회용 접시와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격조높은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내려고 사기 접시와 유리잔과 포크 나이프 셋트를 꺼내서 차렸다. 음식을 덜어 담는 집게는 네 개 들이 한 봉지가 1.5달러 밖에 안하길래 두 개를 사와서 음식마다 집기 좋도록 두니 아이들이 “미스 보영의 뷔페 레스토랑” 이라며 칭송을 했다.

김치도 제법 잘 팔렸다 🙂

물도 와인 디캔터에 담아서 내주고 와인잔 비슷하게 생긴 유리잔에 따라서 마시게 하니 식사 하는 동안에 챙그랑 하면서 포크와 식기가 살짝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이 정말 레스토랑같았다. 잔잔한 배경 음악도 당연히 틀어 놓았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내가 소꼽놀이 하는 기분이 들어서 더 즐거웠다.

먹고 마시며 즐거운 소녀들

저녁 식사가 이른 시간이어서 밤에 놀다가 배가 고플 것 같아 한국 과자를 사두었다.
음식을 들고 다니다가 흘리거나 컵을 깰 우려가 있으니 놀기는 지하실에서 놀더라도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모닝룸에 와서 먹고 마시라는 규칙을 말해주었다. 아이들 잔에 마스킹 테잎을 붙여 이름을 써주어 한 번 썼던 컵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니 컵을 헷갈리지도 않고, 마시던 음료를 두고 새로 더 따르는 일이 없어서 설거지도 절약하고 음식 쓰레기도 줄였다.
아이들에게 규칙을 잘 설명하고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되는지를 말해주면,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을 편하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생일 기념 단체 사진

손님 한 명은 저녁 식사 후에 귀가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밤늦도록 지하실에서 놀다가 자고 다음날인 오늘 아침에 브런치를 먹고 돌아갔다. 내년 생일에도 꼭 초대해 달라며, 내가 만든 음식이 살면서 먹어본 중에 가장 맛있었다며, 뜨개질로 만든 컵케익 답례품을 가지고 갔다.
둘리양과 좋은 친구들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대접했는데 그 가치를 알아주고 인사를 챙기니 마음이 흐뭇했다.

2024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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